탬버린만 잘 쳐도
박형권
옆방 젊은 여자하고는 이사 첫날부터 찌그려졌다
이삿짐 다 옮겨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보니
출입문이 두 개 있는데 어느 문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문이나 열긴 열었는데
꽃 같은 장롱에 복어 주둥이 같은 살림살이들
아, 이 문이 아니었다
얼른 닫고 옆문을 여니 마누라 같은 두루마리 화장지
딸 같은 시집詩集
그래 여기가 내 집이지 한시름 놓는데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야, 너 뭐하는 놈이야? 여자들만 사는 집을 왜 들여다봐?
그렇게 꼬이기 시작한 인연은 일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과 여자와 여자의 어린 딸이 사는 것 같은데
모두
가을바람 앞의 코스모스 같았다
이슬만 먹고 사는지 그 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며칠째 옆방에서 탬버린 소리가 났다
딸 운동회에 응원단장을 맡은 것일까
내 딸의 운동회에서 이인삼각 경주를 할 때
꼴찌인 우리 식구를 함박웃음으로 반기던 저녁달을 떠올리고 있는데
옆집 여자가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밤 열두 시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래방 도우미로 가면 탬버린만 잘 쳐도 월 300이라는데
새벽에 눈 화장이 흘러내리도록 울면서 돌아온들 어떠리
다음 날부터
사람 살지 않는 것 같은 그 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현대문학 2014년 7월호』
*시와시와
2014. 11. 01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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