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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의 별난 식탐/ 이선영

향기로운 재스민 2015. 1. 27. 11:23

 

 

 

 

당신의 별난 식탐/ 이선영

 

 

당신이 내 곁에 없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당신을 찾으려 괜한 잠에도 들어보고
바르트의 책장을 넘기며 낡았어도 늘 새로운 사랑의 단상들을 뒤지고
당신이 써놓고 간 편지를 되풀이 읽으며 행간에 눈길이 멎고
젖가락이 집어 올리는 밥알들을 헤어보고
흘러가는 시간이 간간 띄워 보내는 버들잎사귀 추억들을 건져 올린다
그렇게 당신을 찾아 한동안 뒤지다보면
당신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내게서 멀리 가버렸던 것이 아니다
내가 손을 넣어 뒤지고 있는 것은 아으 나의 몸이다
나의 속 너무 깊숙이 집어넣어 잘 보이지 않는 당신을 찾아내겠다고
五臟六腑 내 속주머니들이 다 뒤집어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내 안에 있으나 내 곁에 없다
내 곁에 없으면서 당신은 내 안에서
나의 내장들을 갉아먹고 내 피를 데워 마신다

 

- 시집『일찍 늙으매 꽃꿈』(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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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루한 일상에 스며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해왔던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시다. 시인은 '간결하면서도 할 말을 던지는 시를 쓰고 싶다'고 피력한 바 있다. 새삼스러운 다짐은 아니다. 같은 시집의 <전야>라는 시에서 그는 "모든 전날 밤은/ 마지막 밤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의 몸을 안타까이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밤도/ 이 사랑의 마지막 밤,/ 우리 헤어짐의 찬 새벽이 동터오는/ 전날 밤이 아니던가!" 착하지도 쉽게 읽히지도 않은 시편들이 없진 않지만 사랑을 보는 예리한 이성적 시선과 편안한 언어에서 어여쁜 섬광들을 본다.

 

 마치 사랑에 관한 섬세한 사유를 기술한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의 어느 대목을 읽는 듯하다. 바르트는 ‘모든 연인은 독사에 물린 사람과 흡사하다. 너무나 아픈 나머지 그런 일을 겪은 사람 말고는 아무에게도 들려주기를 꺼린다.’라고 하였다. 사랑의 합일 순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 있는 경험 중의 하나일 것이나, 그 달콤함의 이면에는 고통, 질투, 연민 등 여러 감정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은 안다. 현대인들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랑이란 감정의 오역때문은 아닐까.  

 

 그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고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불길함을 상상하고 증폭시키며 그 사람이 다른 이와 웃고 있는 걸 보기만 해도 질투를 느끼는 따위의 세부적인 사건들은 대부분의 연애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징후들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타인의 관여 없이 오로지 나 혼자서만 감당해야하는 아주 긴 시간이므로 늘 개별적이다. <사랑의 단상>에서 언급된 사랑의 주체는 연인의 한 마디에 스스로를 부정하는 고통을 겪는 한편, 자신의 감정에 미친 듯이 빠져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신뢰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의 과정을 견디는 자라고 하였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실망감, 권태감으로 인해서 사랑의 원형은 깨어지고 마는데, 이럴 때 꼭 필요한 절차가 내 곁에는 없지만 내 안에 있으면서 피를 졸아들게 하고 내장들을 갉아먹으며 심장에 발길질을 해대는 그를 찾아내어 다독이는 일이다. 사랑을 지속하는 힘은 결코 사랑에 있지 않다.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늘 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나 사랑하고 있는 동안 언제나 가장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안에서 내 피를 데워마시는 그도 나 자신이다.

 

 

권순진

 


Julienne Taylor ㅡ All Out Of Love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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