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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조정권

향기로운 재스민 2015. 2. 12. 07:02

 

 

 

독락당(獨樂堂) / 조정권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

 

- 시집『산정묘지』(민음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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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안강읍에 소재한 옥산서원에서 안쪽 계곡으로 좀 더 들어가면 회재 이언적의 고택 사랑채를 만날 수 있는데 이를 독락당이라 한다. 독락당은 이름 그대로 홀로 즐기는 집이다. 소인배 김안로의 미움을 사서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향리로 들어와 독락당을 일으켜 산과 물을 벗 삼아 즐겼다. 선생의 고매한 학문과 정신을 받들어 지금도 성균관 대성전에는 동방오현의 이름으로 그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런데 주인이 홀로 즐기는 집은 벼랑꼭대기에 있고 오르내리는 길이 없으며, 대월루는 세상이 아닌 하늘의 달을 마주 보고 있다. 게다가 주인은 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렸다. 이를테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가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형국이다. 은둔자를 자처한 셈인데 ‘까마득한 벼랑 끝에’ 고절의 날을 세워 수직의 정신만을 품고 달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락당은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치 못하고 스스로도 부수지 못할 마음의 누각이다.

 

 은둔은 얼핏 일상을 회피하고 세상을 피해서 도망치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많은 오류와 위선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 깊고 명징한 삶의 예지를 키우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요즘은 ‘잠수’라고 이름 붙여 더러 조롱 비슷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은둔자는 오히려 이러한 세상을 조롱한다. 세상과의 궁합이 맞지 않아 세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독야청청의 길이다.

 

 그 길은 고통스러운 자기와의 싸움이라 그 정신의 높이가 견고하지 않으면 즐길 수도 없으며 견디기도 힘들다. 이 ‘독락당’은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모습과 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신의 산정을 의미하며 그 벼랑 끝이 눈부시다. 이는 곧 진정한 선비정신의 극점이 아닐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 않는 강인한 기개와 꼿꼿한 지조.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이나 귀양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이며 깨어 있는 청정한 마음이리라.

 

 선비에게는 밟아야할 몇 개의 단계가 있다. 사대부로 나아가기 전 인격과 학문을 도야하는 '修己'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런 다음에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治人'으로 갈 수 있다. 치인이란 남을 지배한다거나 통치한다는 권력 개념보다는 자신을 닦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군자가 되어 백성을 위해 이바지하는 봉사 행위를 의미했다. ‘수기치인’의 선비정신은 맑음과 청빈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일인지상만인지하’의 자리에 앉으려는 한 후보자의 청문회를 이틀째 지켜보고 있다. 선비까지는 미치지 못 하더라도 유연하면서 강단 있는 무난한 행정가쯤으로 생각했던 사람의 민낯을 알고 봤더니 그렇게 얍삽하고 교만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넝구렁이였다. 나름 ‘언론플레이’에 능숙하고 처세술에도 밝은 사람이지만 ‘수기’가 되어있지 않으니 ‘치인’의 자격이 있을 리가 없다. 

 

 총리지명을 받았을 때 어쩌면 그는 다음 자리로 대권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차제에 깨끗이 독락당으로 들어앉아 수기부터 다시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손학규 씨가 은둔거사를 자처하며 토막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독락당으로 돌아가거나 토굴로 들어가야할 정치인들은 따로 있다. 물론 은둔의 자질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그 기회마저 놓치고 구차하게 버티다가 몰락하는 꼴을 보는 것은 우리로서도 불편하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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