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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김경수

향기로운 재스민 2015. 2. 28. 07:31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김경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 안의

빨간 나무 지붕이 있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극중의 한 기혼 중년여인과 한 중년 독신남자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네.

그리고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헤어졌다네.

불륜의 사랑이었으므로

그러나 그것이 생(生)의 첫 번째 진정한 사랑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네.

일생 중에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 남자는 늙어 죽기 전에 그 여인에게

일생 중에 진정한 첫사랑이었노라는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품에 고이 안던, 이젠 백발이 성성해진 그 여인도

죽고 나서야 남겨둔 편지로 자녀들에게 고백했다네.

아름다운 불륜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진실한 사랑을 위해

죽기 전까지 가슴 깊숙이에 간직하고만 살았던 그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내가 서 있네.

일생 단 한 번의 진실한 사랑을 위해

우리 사랑을 방해하던 검은 운명과 대결하러 가네.

하지만 거대한 힘의 운명에 형편없이 매만 맞고서

내 사랑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헤어지고

함께한 시간들만 추억하며 한없이 쪼그라드네.

그런 사랑은 끄기 위해 켜둔 촛불

밝지만 서러운 그 빛 안에서 피었다 지는 수선화였네.

사랑했던 마음들이 땅으로 추락한 여름 과육처럼 멍이 드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일생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진실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 서 있네.

그러나 단지 나무라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운명 때문에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썩어가고 있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프고 그 남자와 여자가 아프고

내가 아프고 내 애인이 아프고

그 사랑이 범인이고 세월이 공범이고 삶이 방관자였네.

영화 안에서나 영화 밖의 세계 속에서도

그 남자와 그 여자와 나와 내 애인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숨겨진 투명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네.

그러나 나는 아직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가 본적이 없네.

 

- 시집『하얀 욕망이 눈부시다』(문학세계사, 1998)

......................................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국내에 맨 먼저 소개한 것은 1993년 출간된 소설이었다. 전재국 씨가 대표로 취임한 ‘시공사’는 이 소설로 국내 최단기 100만부 판매 돌파 기록을 세우며 대박을 쳤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5년 영화가 상영되었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MBC에서 유동근, 황신혜가 주연한 '애인'이란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당시 그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 모 여성잡지사에서 전국의 기혼여성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만약 당신 앞에 마음에 드는 남편 아닌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면 연애를 할 용의가 있느냐’라는 물음이었다. 65%의 여성이 주저 없이 ‘오케이바리’라고 답했고, 20%는 경우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 될 일이라며 손 사레를 친 여성은 15%였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뉴스를 들었을 때 퍼뜩 이 영화가 떠올랐고 마침 저녁엔 ‘로즈만 다리’를 연상케 하는 대구 아양기찻길 지붕이 있는 다리 안에 마련된 ‘아양뷰’란 공간에서 1시간 동안 팔공문화원이 주최한 교양강좌를 했었다.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지껄이며 시간을 때웠지만 실은 이 영화 이야기부터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만의 사랑을 나누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고백했던 “살아오면서 그 많은 곳을 다녔던 것은 당신을 만나기 위함이며, 이처럼 확신에 찬 감정을 느껴본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는 그 작업멘트의 진정성에서부터 자신의 뼈를 로즈만 다리 위에 뿌려달라는 프란체스카의 유언까지.

 

 하지만 내 인식수준의 범위를 넘어선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간통’이니 ‘불륜’이니 '행복추구권'이니 하는 말들을 영화이야기와 결부시켜 공개적으로 입에 담는 것이 거북했고 싫었다. 까닥하다가 말의 스텝이 꼬여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논지가 빗나가게 될까도 염려되었고, 내 ‘신분’이 탄로날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인 동시에 신의 축복임이 분명하다. 기혼, 미혼, 돌싱의 신분을 떠나 '용기'가 있다면 누구든 사랑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사람과 사랑은 동질’이라는 논리도 있듯이 사람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하기에 또한 사람인 것이다. ‘일생 단 한 번의 진실한 사랑’이 올 수도 아니 올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리고 나도 이젠 배터리가 거의 닳아가고 ‘아직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가 본적이 없’지만 ‘숨겨진 투명 끈’까지 스스로 끊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권순진

 

 
The Song Of Wandering Aengus - Donovan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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