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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늘 / 구상

향기로운 재스민 2015. 4. 23. 06:12

 

 

오늘 /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월간 《문학사상》 200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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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구상 시인께서 2004년 5월 타계하기 3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투병 과정에서 ‘영원이라는 것은 저승에 가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 곧 영원 속의 한 과정’이라며 유언처럼 남긴 시다. 가톨릭 신자인 시인이 평소 “내 사상을 가장 잘 담은 시”라고 했듯이 광활한 우주와 영원한 시간 가운데 인간 존재의 신비를 오늘 바로 이 순간으로 치환하였다.

 

 흘러가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지나간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토마스 칼라일의 ‘오늘’이란 시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며 ‘오늘은 영원 속의 오늘’ 오늘처럼 중요한 날도 소중한 시간도 없다고 했다. 그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의 미련을 버려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우리의 삶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술술 새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한번 뿐이듯 우리의 오늘도 단 한번 뿐인 것을. 빠삐용의 꿈속에 나타난 재판관이 ‘너는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지었다’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송곳에 찔렸던 것처럼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란 에머슨의 말 앞에서도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욕심이나 허명에 매달리지 않고 과욕의 겉꺼풀을 벗어던질 때 날마다 새롭게 솟는 옹달샘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의 풍요가 찾아올 것이다. 온전히 비울 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얻을 수 있어 영원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그게 바로 가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은 뼈마디에 새겨본다만 과연 나의 오늘은 어제와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권순진

 

First Day Of Spring - Secret Garden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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