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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어쩌면 좋아/박소유

향기로운 재스민 2015. 4. 27. 07:20

오, 어쩌면 좋아

박소유

 

 

 

뼈만 남은 사연이 함께 굴러 갈 동안

바퀴 따라가는 생은 모두 급하네

벼락같은 속도를 얻었으니

저게 모두 발자국이라면 내 발자국도 흔적 없을 터

차라리 눈발이거나 서릿발 같이

가볍거나 아득했으면 좋겠네

 

구부러진 노인이 오그라든 유모차를 밀며 가네

서둘러 당도할 곳이 있기나 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발걸음으로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소리만 있고 동작이 없네

고비마다 손발 떼어주고 오장육부 다 내주고

어느 밤중 깜박 잠들어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둘, 둘, 굴러 집 찾아가는 엄마들

똑같은 표정 똑같은 모습으로 지나가네

 

어쩌면 좋아, 아무렇지 않게 멀어져 가네

잡으려고 해도 손이 없는데

가볍고 아득한 이 온기는 어떻게 돌려주나

어둠은 지나간 모든 것들의 그림자

그저 스쳐가는 슬픔인 줄 알았는데

오, 오, 오, 오, 동그랗게 내가 굴러가네

 

 

2015. 04. 27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