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상인일기, 한실의 봄/김연대

향기로운 재스민 2015. 8. 17. 06:49

 

 

 

 

 

한실의 봄/김연대

 

한실의 봄은 경운기 소리로 온다

경운기 한대만 탈탈거려도

좁은 골짜기에 금이 가서

언 땅이 소리로 먼저 녹는다

탕탕 방앗간이 돌아가는 날은

마을이 통째 소리에 떠서

구름 밖 십리까지 떠내려 간다

그렇게 골짜기가 소리로 빵빵해지면

산벗꽃나무도 마지 못해

화장기 없이 꽃봉오리 터트리고 마을회관 옆 이장집 개도

드럼통 개집에서 나와

허리를 늘이고

탈탈 겨울을 턴다

 

 

 

상인일기/김연대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메뚜기 이마에 앉아서라도
전은 펴야 한다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일이 없으면 별이라도 세고
구구단이라도 외워야 한다

손톱 끝에 자라나는 황금의 톱날을
무료히 썰어내고 앉았다면 옷을 벗어야 한다

 

옷을 벗고 힘이라도 팔아야 한다
힘을 팔지 못하면 혼이라도 팔아야 한다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하는 사람

그러지 못하면 가게문에다
묘지라도 써 붙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