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지성찬의 단시조 모음집

향기로운 재스민 2015. 8. 18. 07:49

 

 

 

지성찬의 단시조 모음집

 

벼랑에 핀 꽃

 

험한 골짜기라 계절은 더디 오고

어쩌다 한번쯤은 하늘문이 열리는 곳

고독의 깊은 벼랑에 누가 불을 질렀느냐

 

고독해 보면

 

새어든 검은 고독이 가슴까지 차오른다

생활의 주머니도 가랑비에 모두 젖었다

물기를 꾹 짜서 다시 입는다 日氣豫報는 誤報였다

 

새치를 고르는 마음

 

어제를 고르면서 銀실을 뽑습니다.

헹구어 빛이 바랜 萬가지 가려움은

金실을 잘라내듯이 그 세월을 자릅니다.

 

자식

 

대보름 엄마 같은 달, 쥐불로 당긴 밤아

그 밤을 곱게 말라 한 뜸 한 뜸 피를 찍던

재처럼 삭은 젖줄이 불씨처럼 살아오네

 

戀歌

 

양지에 놀던 바람 빗장문이 열리는데

그 하얀 저고리가 나비로 앉는 밤은

지피는 청솔가지에 달과 별이 뜬다네

 

풀밭에서

 

나는 풀밭이 되고 거기서 뛰노는 순이

밟으면 밟을수록 파래지는 풀밭에

순이는 빨간 꽃으로 활짝 피어 있었다

 

 

꽃씨

 

해마다 4월이면 꽃씨를 묻었습니다

그리고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작은 꽃씨 속에서 태양은 떠올랐습니다

 

허수아비

 

베잠방을 삭힌 땀방울 精金으로 익는 들녘

참새Ep는 들며나며 나락이나 쪼아대네

한 치도 옮길 수 없는 몸짓, 할아버지는 슬프다

 

흙.5

 

차라리 흙처럼 흙으로 살거나

꾸밀 것도 없으니 가릴 것도 없어라

無冠의 풀이면 어떠랴 푸르기만 하여라

 

水産市場

 

신선한 생선은 눈을 보면 알지요

냄새를 맡아 보시오 암! 싱싱하고 말고요

그래도 수산시장은 비린내로 썩는다

 

빌딩. 1982년

 

반듯한 이마 위에 터를 잡아 고릅니다

엮어 올린 네 기둥에 층마다 갇힌 세월

창 밖에 날이 저무는 그 하늘을 잊었네

 

별. 1982년

 

세월을 풀어내어 바다를 채웁니다

어느 작은 물새가 되어 물 한 모금 찍고 가면

落島의 맑은 하늘에 별이 하나 돋는다

 

 

 

 

세월

 

세월은 꽃을 꺾어 어디에 버렸을까

피라미 튀던 물가, 마음은 거기 있네

친구여 아득한 길을 돌아갈 수 없구려

 

(1980-1989)

 

 

 

* 다시 읽습니다 

2015. 08. 18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