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가난한 시인/목필균

향기로운 재스민 2015. 8. 29. 09:37

가난한 시인

  목필균

 

 

지하역 바닥에 깔린 라면박스처럼

남루한 노숙을 견디게 할

시 한 줄 쓰기를

 

살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자간과 행간 사이의 느낌표가

붉은 피딱지로 앉아 있고

 

따뜻한 아파트에

배불리 먹고 앉아도

시린 손끝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촛농의 두께를 재는 밤

깊어가는 어둠을

기대고 있던 하현달빛도

뒷걸음치는 새벽녘

돌아갈 곳 없는 가난이

이마에 접힌다

 

차오르는 여명이 목에 걸린다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핏덩이 언어로 시 한 줄 쓰기를

 

- 월간 《우이시》 200호

 

 외로움에 지쳐서 울 때 손을 잡아 주고, 깊게 드리운 어둠을 밀어내 준 시 안의 언어들. 그것들로 인해 내가 세상 속에 무엇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고 있는 지에 대한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시와 내가 빛과 그림자 양면으로 공존할 뿐이다.

  다만 세상 속에서 떠도는 내 시들이 누군가에게 닿아서 그 사람의 눈물을 대신했으면 한다. 그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소외받고,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내가 위로 받듯 그도 위로 받았으면 한다. 그것은 내가 시를 쓰는 목적이자 희망 사항이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야채 행상을 하는 할머니 굽은 등을 가려줄 커다란 우산 같은 시, 칼바람이 부는 겨울 날, 따뜻한 목도리가 되어 줄 시, 그믐날 밤에 더욱 초롱거리는 별빛으로 내려와 줄 한 가닥 희망이다. 시는 적어도 내게 그런 등불이었기에 그렇게 소망한다.

 앞으로 노숙자의 등을 찬기로부터 막아줄 시는 내가 추구하는 시의 영혼이다. 남루한 시라도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언어가 담겼다면 그야 말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지금 배부르고, 등 따뜻해도 가슴 한구석에 잠재된 깊은 외로움의 골을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이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그것을 위무하는 시를 쓰는 것. 그것을 쓸 수 있는 힘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그리고 시를 왜 쓰느냐에 대한 답은 영원히 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서 내 능력만큼의 시를 쓰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필균 시작노트)

 

 

좋은 시  시와시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