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대기
- 전기호 오빠에게
전하라
헤엄치고 싶어 큰 대야에 빨래를 이고 냇가로 간다
논매다 흙투성이가 된 아버지의 바지
밭에서 짓이겨진 바짓가랑이에 풀독이 배인 엄마의 바지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다닌 둘째오빠의 낡은 티셔츠
거무죽죽한 빨래들을 방망이로 두들기다 말고 물로 뛰어든다
지긋지긋한 지게 작대기를 던져버리고 도시로 가 돈 벌고픈 오빠의 소원이
한낮 작대기에 치받드는 바람처럼 낮게 포복하며 씻겨간다
‘씨벌놈의 세상 내가 할 게 없어’
언젠가 도시로 나간 오빠는 공장에 취직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욕을 해대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에 들어선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장이 나와서 군대에 가게 되었다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추운겨울이 찌륵거리는 날
오빠는 논산을 거쳐 최전방으로 배치되었다
무식한 작대기 두 개 일등병 놈이 들고 때리던 막대기
오빠는 지금도 막대기만 보면 움찔한다
상사 놈이 화풀이 한 가슴팍이 아직도 얼얼하단다
어느 날 군대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메고 온 가방 안에는
매로 쌓아올린 작대기 4개의 계급장이 달린 예비군복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그 후 오빠는 매일 사랑방에 뒹굴며 계집들과 우화놀이도 모자라
좆같은 세상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하며 뛰쳐나갔다
그러던 오빠는 중병이 들고 결국 화를 삭이며 간을 이식한 후
조용한 가족의 일원으로 하루를 빛내며 살고 있다
작대기로 두들겨 패던 여동생의 기도 속에는
행복한 아침햇살이 부채처럼 펼쳐지고
*스토리 문인협회 편집장 전하라
2015.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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