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파라다이스에서.......

겨울비, 담배, 섹스, 그리고.../이영철

향기로운 재스민 2016. 5. 12. 17:14

단편소설  /2006. 계간문예 봄호 발표

 

 겨울비, 담배, 섹스, 그리고…


  이영철 



  비가 오더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어둠이 먹이를 발견한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다가서는 창밖엔 호텔 간판들이 경쟁적으로 네온사인을 깜빡이고 있었다. 나인스, 피아노, 첼로, 토마토, 이오빌…… 3년 전 이곳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만들 때만해도 근처에는 센트로 호텔밖에는 없었는데, 그 사이에 20여 개도 넘는 호텔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덩달아 룸살롱도 호텔 숫자만큼이나 골목골목에 겨울잠을 자는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한 집 건너 호텔, 한 집 건너 룸살롱, 한 집 건너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남의 해방구.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그렇게 통한다고 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곳. 서초동 유흥가의 밀집된 모텔과 술집 네온사인 간판들이 울긋불긋 화려하게 꽃단장을 마치고, 불온한 냄새와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꼭 붙어 걷는 연인들과 얼굴에 단풍 든 술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주었던 시선을 거두고 담배를 물었다. 마음 편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도 없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방정맞은 커서가 ‘빨리 쳐’, ‘빨리 끝내’ 라고 계속 깜빡이며 재촉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작업실에서 꼼짝도 않고 컴퓨터 자판과 씨름하는 중이었다. 어지간히 속도가 붙질 않았다. 점심도 건너뛴 채 8시간째 몸부림치면 칠수록 점점 더 조여오는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허우적대고 있었다.

  원고 마감시간은 두 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원고는 막바지를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이 연재소설 원고가 들어가야만 여성지가 원고 마감을 해 제 날짜에 나올 것이다. 여성지는 월간이기 때문에 발행일이 잡지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매달 겪는 일이라서 이골이 나기도 하련만 매달 15일만 되면 새벽부터 컴퓨터 앞에 딱 붙어 앉아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하루 종일 낑낑댔다. 200자 원고지 기준 50매나 되는 연재소설이니 미리 조금씩 써놔도 되련만, 매번 후회를 하면서도 고질병처럼 ‘똥마려움’의 원고 변비는 고쳐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학지 단편소설까지 겹쳐 사흘째 밖에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침대에 제대로 누워보지도 못하고 컴퓨터와 씨름 중이었다. 원고 청탁을 받으면 차마 거절하지 못해 겪는 고생이었다. 문득 술자리에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인은 시를 가슴으로 쓰지만 소설가는 궁뎅이로 쓰는 거야.

  담배연기가 작업실에 천천히 퍼져나갔다. 창문을 열고 피워야 하건만 귀찮고 추울 것 같아 열지 않았다. 갑자기 신물이 울컥 넘어오며 속이 쓰렸다. 빈속에 새벽부터 열 잔이 넘는 커피를 마시고 두 갑도 넘는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리라. 아침부터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며칠 전에 사다 놔 껍질이 까맣게 변하고 속이 흐물대는 작은 몽키 바나나 두 개가 전부였다. 냉장고는 어제부터 텅텅 비어있었다.

  작은 옹기 항아리 뚜껑을 재떨이로 쓰는데, 사흘 째 비우지 않은 담배꽁초가 작은 동산처럼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제 담배도 몇 개비 남아 있지 않았다. 원고는 이제 열 장 정도만 쓰면 마침표를 찍을 거 같았다. 지루한 전쟁과도 같은 사흘이었다.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남부터미널 지하철 역 옆에 있는 전주식 콩나물해장국 집으로 달려가 따끈한 모주 한 잔과 함께 새우젓으로 짭짤하게 간을 맞춘 해장국을 숟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가득 퍼서 돼지처럼 우걱우걱 먹고 싶었다. 해장국을 생각하자 벌써 입에 군침이 돌았다. 밥 먹는 시간도 아끼기 위해 나무토막 껍질처럼 말라비틀어진 바게트 빵 쪼가리 딸기잼과 땅콩잼을 발라 먹으며 이틀을 연명해 왔고, 오늘은 그나마 떨어져 몽키 바나나 두 개 커피 열 잔 쯤이 먹이의 전부였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컴퓨터 화면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케줄이 어떻게 돼요?”

  끝낸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보냈다는 전화를 걸기도 전에 해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수화기를 통해 후― 하는 담배연기 내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았다. 8시 23분이었다. 그녀는 내 원고를 기다리느라 퇴근도 못하고 지금껏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일 년 이상 연재하면서 한두 시간 늦기는 했지만 마감날짜를 어긴 적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수화기를 통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도 들려왔다. 담배 피우랴, 자판 두들기랴, 전화하랴… 보지 않아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해장국 먹으러 가려고…….”

  “나도 아직 안 먹었는데……”

  커피까지 마시는지 홀짝이는 소리와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함석지붕에 우박 떨어지듯 들려왔다. 그녀는 지금 오른쪽 어깨 위에 수화기를 올려놓고 고개를 젖혀 수화기를 누른 채 바쁘게 자판기를 두들기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한 모금씩 빨아가면서 내 원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지 외주 제작팀 편집 디자이너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저녁을 같이 먹자는 얘기였다. 그녀의 화법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뭐든지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사만 밝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했다. ‘저녁 같이 먹어요.’ 라고, 하면 될 것을.

  “와.”

  “알았어요.”

  해인은 내가 미처 수화기를 놓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에서는 뚜― 하는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매너가 없는 건지, 뭘 모르는 건지. 자기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내가 전화를 끊기도 전에 그녀는 매번 용건이 끝나기가 바쁘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래서 만나면 주의를 줘야지 생각하지만, 막상 만나면 그 말을 못하고 말았다. 아니 못 했다기 보다는 하지 않았다.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지적하고 싶진 않았다.

  해인이 내 작업실까지 찾아와 처음 원고를 받던 날, 내가 너무 꼼꼼하고 디테일한 성격이라서 인간적으로 가까이하기가 어렵겠다고 말했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해인이 했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해인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알이 굵은 요란한 목걸이를 하고 머리는 가수 전인권처럼 요란하게 산발을 하고 집시풍의 스타일로 찾아와 부츠를 신은 채 작업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내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은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 멈칫 하는 것이 의례적인 순서였다. 나는 30평 오피스텔을 가정집처럼 꾸몄다. 따라서 작업실은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슬리퍼를 신고 다녀야 했다. 불쑥 안으로 들어오는 해인에게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슬리퍼를 가리키자, 그녀는 거실 가운데에서 잠시 어리버리한 표정을 짓더니 뒤늦게야 깨닫고 부츠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 작업실을 찾아왔지만, 그렇게 무신경하게 신발을 신은 채 거실 중앙까지 성큼성큼 들어선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아 나중에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려고 날짜를 적어 명함철에 넣고, 소파에 앉은 해인에게 물었다.

  ―커피? 아니면 녹차?

  ―아무거나 주세요.

  ―그래도 마시고 싶은 걸 말해 봐.

  ―그럼 커피 주세요.

  나는 싱크대에서 커피 잔을 챙기며 등 뒤에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진하게 아니면 연하게?

  ―진하게요.

  ―프림은?

  ―넣지 마세요.

  ―설탕은?

  ―적당히요.

  ―맥심, 모카, 초이스 어떤 걸로?

  ―……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못 들었나 싶어 다시 조금 큰소리로 물었다.

  ―맥심야, 모카야, 초이스야?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어떤 커피 병뚜껑을 열어야 할지 몰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런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 말을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왜 갑자기 대답이 없어. 뭘로 할 건데?

  그녀는 한동안 더 나를 보더니, 묶은 부분이 풀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피식 소리 내어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마치 자신의 작업실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동 때문이었다. 전화통화는 몇 번 했지만, 그녀와 나는 처음 보는 사이였다. 나는 작가이고, 그녀는 여성지 문학담당기자로서 원고도 받을 겸 인사차 나를 방문한 거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당연히 방문자로서의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아니 나이도 그렇고 사회적 직분 상으로도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담배를 꼬나 물 군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순간적으로 내가 그녀의 작업실에 찾아온 듯한, 그녀와 내가 비슷한 나이의 또래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20대 후반 쯤으로 보였고, 나는 40대 후반이었다.

  ―늘 그런 식이에요?

  ―…?

  다리를 꼬고 앉아 거실 가운데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뜻이 쉽게 와 닿지 않아 멀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늘 그렇게 피곤하게 사시느냐고요? 커피 한 잔 마시는데 뭐가 그리 복잡해요. 그냥 선생님 마시는 스타일로 주면 되잖아요. 모카라고 하면…… 다음엔 무얼 물어보실 건데요. 물 온도는 섭씨 100도 쯤으로 해줄까, 80도 쯤으로 해줄까. 커피 잔에 줄까, 머그잔에 줄까. 또 그렇게 물어볼 거예요? 지나친 배려는 불친절보다 못 하다는 말이 있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한 선생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선생님 소설을 여러 편 읽고, 작업실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어쩜 작가와 기자라는 것을 떠나 선생님과 인간적으로 가까워 질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하고 왔는데……”

  ―그런데?

  ―역시 작품과 작가는 별개라는 속설을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영 씁쓸하네요.

  나도 담배를 물었다. 잠시 어색한 짧은 침묵과 두 사람이 뿜어대는 담배연기가 깊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탁자 위에 놓인 모카커피는 그녀가 손도 대지 않아 덩그마니 놓여 식어갔다. 그녀가 숨 막힐 것만 같은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담배를 한 개비 다 피우고 나서도 한참 후였다.

  ―……선생님 작품만을 보았을 때는 선생님과 애인하려고 했는데…… 우린 같은 과가 아닌 거 같네요. 저 혼자 착각했나보죠.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이만 가 볼게요.

  ―…!

  소파에서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서며 마치 수박씨를 멀리 내뱉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툭 던지는 그녀의 말투는 비감하다 못해, 초겨울 가랑잎처럼 힘주어 만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바짝 건조돼 있었다. 아니 달리 들으면 밖에 내리는 진눈깨비처럼 젖어있었다. 젖어있다고 느낀 것은 그녀가 말한 또 나만의 섬세함의 착각일까.


  샤워꼭지를 틀었다. 뜨거운 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셨다. 사흘 동안 헝클어진 털실 뭉치처럼 뒤죽박죽이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깎아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룬 것이 거의 한 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참에 아예 길러서 꽁지머리처럼 묶고 다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머리가 길면 손질하기가 더 귀찮을 거 같다는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옥에서 지낸 사흘처럼 작업실에서 꼼짝도 않았더니 수염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삐죽삐죽 돋아있었다. 이를 닦기 위해 치약을 꾹 눌러 짜려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치약의 가장 밑 부분을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치약을 어떻게 짜 쓰세요?

  ―어떡하긴. 가장 밑에서부터 짜서 쓰지.

  ―중간쯤 아무데나 꾹 눌러서 쓴 적은 없어요?

  ―한번도.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어차피 아무데나 꾹꾹 눌러쓰다 거의 다 쓰면 그때부터 밑에서 위로 훑어 쓰면 되잖아요. 뭐하러 신경 써서 처음부터 밑에서부터 짜 써요.

  ―신경을 써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이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걸.

  ―크크크, 소심증 환자. 내가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선생님은 붕어빵을 먹을 때도 입부터 먹을 거예요.

  ―어, 맞아! 그걸 어떻게 알았지?

  ―소심증 환자라 붕어에게 물릴까봐.

  해인은 그렇게 말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사실이었다. 난 붕어빵을 먹을 때는 항상 입부터 뜯어 먹었다. 해인은 좋게 말해 섬세한, 나쁘게 말하면 소심증 환자라 비록 붕어빵이지만 행여나 붕어에게 콱 물릴까봐 겁나서 입부터 먹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붕어빵의 붕어 입에 입을 물린다? 생각하니 정말 웃음이 나오는 말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자, 갑자기 살아있는 것이 먹고 싶었다. 조금 전 해인이와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뜨거운 전주식 콩나물해장국을 먹고 싶었는데, 갑자기 살아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이 산 낙지 머리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어 먹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는 해인과 함께 봤다. 

  “살아있음이 뭐죠?”

  그날 해인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곱창 집에서 술이 엉망으로 취해 거슴츠레한 눈빛을 한 채 물어온 말이었다. 처음 만남은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원고를 핑계 삼아 몇 번 만나면서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만나면서 겹치는 공통분모가 커지고 있었다. 나는 여섯 병째 바닥나 가는 소주병 바닥을 뒤집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꿈틀거림이지, 뭐.”

  나는 최민식 입에서 머리를 짓씹히며 온통 얼굴에 달라붙어 꿈틀대던 낙지발을 떠올렸다. 탁자 위에는 살아있는 것이 아닌 이미 죽어도 오래 전에 죽은 질긴 곱창이 기름범벅인 채 식어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제 앞에서 가면을 쓰고 있을 거예요? 하수들에게나 써먹는 그딴 비언어적이고 관념적인 표현 말고요. 응, 뭐랄까. 내가 존경할 수 있도록 작가 선생님답게, 그러니까……  신 새벽 겨울 호수 위를 튀어 오르는 빙어 같은 생생한 언어, 하모니카 떨판 같은 여린 감성을 지닌 솔직한 감성으로 말해보란 말이에요. 여기 앉아있는 김, 해, 인이가 꼬리뼈가 서늘하도록 깊은 감동을 받아 껌뻑 죽으면서 선생님 가슴에 포옥 안길만한 걸로.”

  취했다. 해인의 혀는 어느새 꼬부라지고 있었다. 해인은 양미간에 주름을 잔뜩 모으며 손을 내젓더니 담배를 찾아 물었다. 불을 붙여 줄 수도 있었지만 내버려두었다. 술에 젖은 일회용 가스라이터는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더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틱틱 거리더니 바닥에 내팽개치고 내 지포 라이터를 가져다 불을 붙였다.

  “히야, 살아있는 불이네. 난 지포의 이 휘발유 냄새가 좋더라. 내가 가져야지.”

그녀는 다시 지포 라이터를 켜 휘발유 냄새를 맡더니, 내 허락도 없이 핸드백 속에 넣었다.  그녀와 나는 똑같이 술잔을 비우는 중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욕망이지. 기왕이면 남녀가 암나사와 수나사처럼 뜨겁게 결합된……”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다시 이었다.

  “욕정이면 더 좋고.”

  잘못 본 것일까. 한 순간, 한물 간 생선처럼 흐리멍텅하던 해인의 눈빛이 나이트클럽의 사이키 조명처럼 반짝 빛을 발했다. ‘욕정’이란 단어를 말할 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어깨까지 들먹이며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쏙 뽑아 내 입에 꽂아주었다. 반쯤 피운 담배였다. 필터에는 초경을 시작한 여자의 그것처럼 선분홍 립스틱이 선정적으로 묻어있었다. 

  “오늘 보니 우리 현우 씨 정말 멋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피할 사이도 없이 내 양쪽 귀를 잡아당기더니 기습적으로 뽀뽀를 했다. 잠깐 입술에 머문 그녀의 술 냄새가 나는 입술이었지만 느낌만은 강렬했다. 현우 씨! 그녀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늘 선생님이라고만 불렀는데. 술에 취해서이건 감정에 취해서이건 상관없었다. ‘우리’라는 표현도 싫지 않았다. 우리라는 단어에는 나와 너라는 남과 남, 타인의 개념이 아닌 동질의 개념이 담겨있으니까.

  “살아있음이란 욕정이라……”

  그녀는 ‘살아있음이란 욕정이라’라는 말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묘하게도 그녀가 독백처럼 내뱉는 그 말을 듣고 있는 짧은 시간, 몇 초 사이에 나는 내 몸의 놀라운 변화에 화들짝 놀랐다. 몇 년 동안 죽어있던, 남자의 구실을 언제 해봤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던 욕정의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일어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녀와 나는 엉망으로 취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짱을 끼고 비틀거리며 술집 근처에 있는 모텔을 향했다. 소주 두 병을 더 똑같이 나누어 마신 후였다. 


  “커피 줘요?”

  “응. 내 스타일로.”

  나는 알몸인 채로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었다. 해인도 담배연기를 날리며 알몸인 채로  커피를 타고 있었다. 그녀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을 때 몸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큰 그녀의 엉덩이도 따라 움직였다. 벌써 그녀와 관계를 맺은 지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 잔을 감싸 쥐고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커피를 마실 때, 두 손으로 커피 잔을 감싸 쥐는 습관이 있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커피 잔의 포근하고 따뜻한 감촉이 좋다고 했다.

나른했다. 섹스 후에 찾아오는 달콤한 피로감이었다. 밀린 숙제를 다 해치운, 쫓기던 원고에서 해방된 뒤라서 긴장이 풀려서 인지도 몰랐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채 젖어있는 그녀의 검은 숲이 눈에 들어왔다. 해인은 내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피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며칠만이지?”
  “일주일요.”

  그녀는 턱을 괴고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격렬한 섹스 뒤라서 그녀의 마스카라가 뭉개져 눈자위가 얻어맞은 사람마냥 멍든 것처럼 보였다. 난 오히려 깨끗하게 샤워를 한 모습보다 그렇게 흐트러져 보이는 모습이 더 좋았다.

  “처음으로 오래 동안 떨어져 있었네. 보고 싶지 않았어?”

  바닥을 보이는 커피를 홀짝 마시며 물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어요.”

  “누가? 내가, 해인이가?”

  “둘 다요.”
  해인은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처음 모텔에 간 날 이후 거의 매일 만났다. 남녀란 처음 관계가 어려울 뿐,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쉽고, 세 번째는 두 번째 보다 더 쉬웠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몸에 익숙해가고 있었다. 그녀와 난 관계를 맺으면서도 서로에게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고, 어떤 약속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뜨겁게 몸을 섞었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욕정’을 채우기에 몰두했다. 나는 그녀로 인해 몇 년 동안 원인도 모른 채 죽어있던 내 남성이 아직은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그녀는 그런 내 남성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어느 날인가는 밤을 새워 몇 번이고 격렬한 섹스로 지쳐, 점심이 지날 때까지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녀와 나는 전쟁을 치르듯 뜨겁게 서로를 가졌다.

  그녀가 나와 처음 모텔에 갔을 때는 지독한 이별 후유증을 앓던 중이었다. 삼 년을 사귀었던, 결혼까지 약속했던 남자는 삼류영화의 스토리처럼 자신이 다니는 중소기업 사장 딸을 만나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해인은 그런 사실도 그가 미국으로 떠난 사흘 후에야 알았다. 해인에게는 단 한 마디 언질도 없이 그냥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그 모든 걸 안 것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간 이유를 몰라 혼자서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고 난 한참 후였다.  해인을 보다 못한 그 남자의 누나가 알려줘서였다. 그 남자 누나는 해인을 친동생처럼 귀여워해 주었었다. 그날 남자 누나는 해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동생을 욕했다. 너 같은 애를 두고 비겁한 짓을 저지른 동생 놈은 분명히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그러나 해인은 그녀의 어떤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실어증에 걸려 병원 신세까지 져야만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그 남자에 대한 치사량에 가까운 그리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무렵, 나를 만난 것이다.   

  ―현우 씨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요. 같은 과는 냄새를 맡을 수 있거든요.

  해인이 두 번째 만나 섹스를 끝내고 한 말이었다. 잘못 본 것이었을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 설핏 물기가 비쳤다. 난 해인의 말에 흠찟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 즈음 나는 매일 자살을 꿈꾸고 있었다. 가장 죽음다운 죽음을 죽기 위해 자살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자살에 관한 책자를 모두 구하고, 인터넷까지 샅샅이 뒤지던 중이었다. 아마도 자살에 관한 책을 쓴데도 한 권은 족히 될 만한 자료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는 분명 ‘같은 과’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날이었다. 해인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고백했다. 이젠 그 남자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니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남자를 만난다 해도 다시는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사랑했던, 그런 눈물 나는 사랑은 하지 못할 거 같다고 했다. 사랑을 잃고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잃었다고 했다. 삶이 아닌 그야말로 살아있음, ‘꿈틀거림’ 그 자체뿐인 생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니 어쩜 자신은 매일 죽는 연습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가 현우 씨를 사랑이든 아니든 전부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그 순간부터 우린  이별을 준비하겠지요?”

  “…….”

  맞는 말일 것이다. 해인이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이혼한 아내를 생각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아내를 생각하면 피가 흐르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아려왔다. 거의 일 년에 거쳐 3권짜리 장편소설을 끝낼 즈음부터 난 남자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밤낮도 없이 원고를 쓰고 쓰다가 지치면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고 깨어나면 또 쓰고…… 일 년을 커피와 담배에 중독되어 작업실에서 살았다. 일주일에 몇 번 아내가 찾아왔지만 원고가 막바지를 치달을 무렵부터는 남자가 제 구실을 못했다. 몸이 뜨거워져 어떻게든 고개 숙인 남자를 살려보려고 애쓰던 아내는 어느 순간 거칠게 문을 닫고 가버렸다. 그 뒤로 또 몇 번을 더 작업실에 찾아왔지만 난 번번이 남자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는 아내가 발을 끊었다. 다 끝낸 소설을 출판사에 넘기고 집에 갔을 때, 아내는 이미 집에 없었다. 여기저기 연락한 끝에 어렵게 찾은 아내는 바다가 보이는 친구의 별장에서 혼자 머물고 있었다.

  ―남자답지 못하게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마. 우린 이미 끝났어.

  그게 마지막이었다. 무정자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던 우리는 서류 한 장으로 20년 가까운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고 자존심마저 팽개친 채 무릎까지 꿇고 애원했지만, 아내의 ‘남자답지 못하게’라는 그 말 한 마디에 버티던 이혼서류에 말없이 도장을 꾹 눌러주었다. 아내가 말한 남자답지 못하게라는 말의 의미가 고개 숙인 내 남자를 말하는 것인지, 구질구질하게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잡고 싶지 않았다.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로 5년의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해 20년 가까이 함께했지만, 헤어짐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법원 뜰에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정문을 나섰다. 법원 뜰엔 무심한 철쭉꽃이 만발한 봄날 오후였다.

  해인의 말처럼 내가 해인을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해인도 이별을 준비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때론 철저하게 부수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처럼. 아이가 사탕을 아끼며 빨아먹다가 어느 순간 와지끈 깨물어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처럼. 해인과 나는 말은 안했지만, 서로의 육체에 집착할수록 마음은 육체를 탐하는 그만큼씩 상대적으로 멀어져 감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멀어져 감의 갭을 메꾸기 위해 더 처절하게 육체를 탐하는지도 몰랐다.

  난 아내와 헤어진 이후, 철저하게 혼자였고, 아내의 몸 외에 해인이 처음이었다. 해인도 첫 남자였던 애인과 헤어진 후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해인과 나는 진심으로 서로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핥아주었지만 그럴수록 상처의 아픔은 덮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해만 갔다. 누가 말했던가. 웅덩이의 흙탕물을 가장 빠르게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그 흙탕물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막대기를 휘젓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어쩌면 해인과 나는 흙탕물을 깨끗이 하기 위해, 서로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준다는 미명하에 쉴 새 없이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현우 씨, 알아요? 지난주부터 치약을 중간쯤 꾹 눌러쓰고 있는 걸.”

  “그랬어?”

  “얼굴 닦은 수건도 대충 벽걸이에 걸어 논 것도 모르죠?”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면 대단한 변화하였다.

  “그것 뿐 인줄 아세요. 싱크대에 커피 잔도 그대로 있었어요.”

  나는 치약도 끝에서부터 짜고, 손이나 얼굴을 닦은 수건도 각이 잡히도록 접어서 걸고, 커피를 마시면 그 즉시 커피 잔을 깨끗이 닦아 제 자리에 놓았다. 오랜 습관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직성이 풀렸다. 뭐든지 흐트러진 꼴을 보지 못했다. 책꽂이에 책도 한 권이라도 뒤집어져서 꽂혀 있거나 비뚜름하게 있으면 즉시 바로 잡았다. 글을 쓸 때도 책상 위엔 컴퓨터와 담배와 재떨이 외엔 썰렁할 정도로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해야만 글이 써졌다. 뭔가 조금이라도 널려 있으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원고를 쓸 때는 이상하게 손바닥에서 땀이 나곤 했는데, 난 그때마다 비누로 손에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가 씻고 또 씻은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 내가 치약도, 수건도, 커피 잔도 그랬다면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넌, 임마. 중증결벽증에 걸린 거라구. 너 그러다가 미친다. 내 말 알아들어. 미치는 게 별 건줄 알어? 그렇게 계속 깔끔 떨다간 어느 날 정신이 훼까닥 간다구.

  정신과 의사 친구 녀석 말처럼 난 결벽증에 걸려 있는지도 몰랐다. 녀석의 결벽증 환자 중에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차를 마실 때면 남들이 모두 입을 대고 마셨을 잔의 입술 부분을 피하기 위해 일부로 왼손으로 잔을 들고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심한 환자는 문을 열기 위해 도어를 잡을 때 남이 만진 손잡이를 만지기 께름칙하다며 손수건으로 싸서 잡고, 남들이 숨 쉬었던 불결한 공기가 자신의 입으로 들어올 까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고 했다. 어떤 여자 환자는 남자와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할 생각만 하면 더럽고 불결하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어 결혼을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고 했다.

  해인과 처음 몸을 섞은 날도 난 섹스가 끝나자마자 키스한 입 안과 사타구니가 찝찝해 욕실로 달려가 칫솔질을 하며 사타구니를 몇 번이고 비누칠해 씻었다. 그건 아내와 함께 살 때도 습관처럼 해온 행동이었다. 소변을 보러왔다가 유난을 떠는 나를 보고는 놀란 토끼눈을 뜨던 해인의 눈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다음날 섹스를 끝냈을 때는 해인이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아 께름칙하면서도 포기를 했지만, 잡혀있는 동안 분비물로 젖은 사타구니에 온 신경이 집중됐었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며 미끈둥한 분비물의 감촉, 사타구니의 털에 풀처럼 엉겨 붙어 허옇게 마르면서 밤꽃 향기처럼 풍기던 불온한 냄새. 하지만 그 이후로도  섹스가 끝나고 한동안은 칫솔질과 샤워를 할 수 없었다. 결코 해인이 그런 내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섹스가 끝나자마자 욕실로 달려가는 것은 여자에 대한 모독이란 걸 모르세요.

  난 결코 해인을 모독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해인이 그렇게 느낀다면 타올로 사타구니를 닦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고, 입안의 찝찝함은 소독을 겸한 연거푸 피운 담배연기로 대신해야만 했다. 이상한 것은 섹스가 계속되면서 언제부턴가는 섹스를 끝내고 욕실로 달려가지 않아도 께름칙하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해인이 “이제 곧바로 욕실로 달려가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죠?” 라고 말해서, 안 것이지만.


  아내가 작업실로 찾아와 마지막 만나던 날. 그날 아내는 집요하게 섹스에 집착했다. 다른 날 같으면 그 정도로 정성을 들여 오랄를 해도 반응이 없으면 포기했을 텐데, 끝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매달렸다. 그럴수록 위축된 내 남자는 점점 더 고개를 숙였다.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고 집착하고 있는 아내를 아무런 감흥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느 순간 불덩이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부부라는 것이 꼭 섹스가 전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선척적으로 또는 사고로 남자의 하반신이 마비되어 평생을 섹스를 하지 못하는 부부도 있었다. 아니 남자가 성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여자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었다. 부부란 섹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이고 소중한 것이 분명 있었다. 아내를 사랑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남자의 심정은 어떻겠는 가를 조금만 생각해 준다면 그럴 수는 없는 거였다.

  “그만해!”

  난 아내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나 탁자 위에 있는 담배를 꺼내 거칠게 불을 붙였다. 아내는 그런 나를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를 보며 심한 모멸감과 함께 남자로서의 절망감을 동시에 느꼈다.

  “난 어쩜 평생 안 될지도 몰라. 당신에겐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다면요?”
  아내는 벌거벗은 채 핸드백에서 빗을 꺼내 거울 앞에 서서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하며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아내가 돌아서 있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서로를 보고 있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 나누기가 껄끄러운 부부. 난 그런 아내의 행동을 보면서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이질감을 느꼈다. 지금껏 살을 맞대고 살아온 여자라고 느낄 수 없는 처음 만나는 타인 같은 낯 설음, 이타감 같은 거였다.

  “알았어. 우리 이제 이쯤에서 그만 두자구.”

  나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 같았다.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가 오늘따라 입에 썼다. 장초를 재떨이에 꾹 눌러 껐다.

  “그만 두자고요?”

  빗질을 하던 아내의 손동작이 우뚝 멈췄다. 나는 말다툼을 그만 두자는 거였는데, 아내는 내 말의 의미를 심각한 쪽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을 쓴다고 일 년여 떨어져 있는 동안, 섹스가 되지 않은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두껍고 높게 쌓였는지도 몰랐다. 내가 말한 뜻은 그게 아니라고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얼핏 아내가 생각하는 그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만 두자구.”

  “다시 한 번 물을게요. 그 말 진심이에요?”

  멈췄던 아내의 빗질이 천천히 다시 시작됐다. 아내는 여전히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있었다. 벌거벗은 아내의 뒷모습은 수없이 보아왔건만, 대학시절 호기심으로 미술반 친구를 따라가 괜히 캔버스를 펼쳐놓고 누드모델을 훔쳐보던 때처럼 똑바로 쳐다보기가 왠지 어색했다.

  “그래 진심이야.”

  “알았어. 갈게.”

  아내는 결혼 후 처음으로 반말과 함께 빠른 손놀림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내 앞에 옷을 벗었다가 수치심에 서두르는 것처럼. 그때라도 아내를 잡아야 했다. 따지고 보면 일 년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부부생활은 아니었다. 옷을 다 입은 아내는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고개만 돌린 채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정상적인 부부란…… 섹스도 상대방에 대한 의무이자 배려야. 넌 어쩜 네 생각밖에는 못하니. 나도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아왔어. 어떻게 명색이 부부가 일 년 이상을…… 이제 너의 그 에고이즘에 신물이 나. 도대체 너에게 나란 존재는…… 그만두자. 잘난 당신!”


  토요일마다 해인은 작업실로 왔다. 우리는 차를 몰고 롯데백화점 식품관을 찾았다. 음식을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해 카트를 밀고 다니는 해인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이따금 사람들이 나이로 보아 부부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해인과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해인은 손이 컸다. 얼마 돌지 않아 카트 안은 가득 찼다. 아내와는 20여 년을 살면서도 함께 쇼핑을 다닌 횟수가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나는 해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남기고 떠난 양말과 팬티와 러닝셔츠가 헤어져 구멍이 뚫릴 정도로 입고 있었다. 왠지 내 손으로 그런 것들을 사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양말과 러닝셔츠가 모두 구멍이 났네. 팬티 고무줄도 다 늘어났고. 불쌍한 현우 씨!

  몸을 섞은 지 일주일쯤 지난 무렵, 해인은 내 빨래를 해주려고 빨래 감을 세탁기에 넣으려다말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해인의 말에 가슴에 시린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왜일까. 나는 그 순간 헤어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 때 우리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가슴이 작았던 아내는 결코 불을 켜놓은 상태에서는 가슴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유일한 결벽증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 비해 작은 가슴이었다. 그 콤플렉스로 인해 아내는 대중목욕탕에도 다니지 않았다.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나오는 깡마른 여자의 가슴과도 같았던 아내. 내가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기는 했었던가, 하는 의구심이 빳빳이 송곳처럼 고개를 들었다.

  해인은 백화점에서 사온 재료들로 음식 만들 때는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해인의 콧노래와 도마를 두드리는, 일정한 리듬을 타는 칼질소리를 들으며 포만감을 느끼곤 했다. 앞치마까지 두른 해인의 모습은, 20여 년 동안 익숙해진 아내에게서 느끼던 편안함과 안정감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풋과일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감이 있었다.

  “현우 씨를 만나고 나서 몇 킬로나 살이 찐 줄 알아요?”

  식탁에 마주앉은 해인은 냄비에 졸인 갈치 살을 발라 내 밥숟가락 위에 놓아주며 물었다. 아내에게서는 한 번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나는 해인을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면서도 살이 쪘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무려 오 킬로나 쪘어요. 이건 돼지도 아니고…… 현우 씨 하고 같이 살면 만성악성빈혈증에 시달리는 내 가엾은 영혼도 이렇게 살이 찔 수 있을까?”

해인은 갈치 살을 발라주느라 양념 묻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쪽쪽 빨아먹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해인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왜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해인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같이 살래?”
  “…!”

  갈치 살을 접시에 옮기던 해인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나는 왜 내가 그 말을 했는지 몰랐다. 그냥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해인과 내 눈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잠시 허둥대고 있었다. 잠시 후, 해인의 눈에 물기가 가득 고여 오는가 싶더니 기어이 볼을 적신 눈물이 후두둑 식탁 위로 떨어졌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맞은 편 식탁에 있는 그녀의 양 볼을 감싸 쥐고 눈물이 흐르는 눈에 입술을 댔다. 불에 데어본 자만이 불의 뜨거움을 아는 법. 나 역시 정신적인 악성만성빈혈증을 앓는 환자였다. 해인이라면 함께 살아도 괜찮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의 이별이 온다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함께 사는 거야. 악성만성빈혈증 환자끼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 가도 돼. 구속하지 않을게.”

  “난 현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환자예요. 언젠간 지금 한 말을 후회할 걸요.”
  “후회? 그건 해도 내가 하는 거니까 됐어. 그냥 몸만 와. 사실은 나도 너를 만나고 팔 킬로나 살이 쪘어. 몰랐지?”

  “세상에! 팔 킬로나요. 그런데 내가 왜 전혀 몰랐지?”

  해인의 젖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실이었다. 나는 해인을 만나면서 야금야금 몸에 살이 붙고 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29년 동안 몸무게에 변함이 없었는데 무슨 조화인지 몰랐다. 해인이 해주는 음식이 결코 아내가 해주던 음식보다 못하면 못했지 낫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내 몸은 바지의 허리가 맞지 않아 옷을 입을 때마다 허리 단추를 채우느라 애를 먹을 정도로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조만간 모든 바지를 다시 사야 할지도 몰랐다.

  “한 잔 해야겠지? 한 우리를 쓰게 될 돼지들의 합방 기념으로.”

나는 서랍장에 있는 샴페인과 잔을 가져왔다. 방의 불을 끄고 촛불을 밝혔다. 한결 분위기가 잡혔다. 나는 해인의 잔에, 해인은 내 잔에 샴페인을 따랐다. 잔을 부딪치려는 순간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잠깐만. 그 전에 할 게 있어.”

  나는 핸드폰을 가져와 ‘나만의 앨범’에 들어있는 아내의 사진을 찾아냈다. 핸드폰 액정 속의 아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둘이 찍었던 사진은 아내가 다 가져가고 내 손에 남은 마지막 한 장의 사진이었다. 나는 해인이 보는 앞에서 아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삭제’ 키를 눌렀다. 액정 속의 아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내 문서’에 들어있는 ‘자살’이란 파일을 끄집어냈다. 그 파일에는 그동안 자살에 관련된 모든 것을 스크랩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이건 해인이가 지워.”

  해인은 파일 명에 쓰여진 ‘자살’이란 글자를 잠시 바라보다 삭제키를 눌렀다.

  “잠깐만요. 나도 지워야 할 게 있어요. 그건 현우 씨가 지워주세요.”

  해인은 자신의 블러그로 들어가 ‘자살방법론’이란 카테고리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커서를 그곳에 옮겨놓더니 삭제키를 누르라고 했다. 나도 해인이 시키는 대로 ‘탁’ 소리가 나도록 힘주어 딜리트(Del) 키를 눌렀다. 해인의 블러그에서 아내의 사진처럼 카테고리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그제서야 불온한 네온사인들이 번쩍번쩍 빛을 뿌리는 창가에 서서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너와 함께 계속 살찌는 돼지로 살고 싶어.”

  나는 샴페인 잔을 창틀에 놓고 해인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고 길고 깊은 키스를 시작했다. 해인의 입에서는 갈치의 비릿한 냄새가 달콤한 타액과 뒤섞이며 혀가 불 맞은 지렁이처럼 뜨겁게 꿈틀대기 시작했다.

  내가, 해인이 아니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욕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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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는 친구 애들과 같이 보려구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