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갈대꽃 /이정록

향기로운 재스민 2016. 5. 24. 07:50

갈대꽃

 

이정록

 

 

 10월 축제, 가을 주말 축제, 강서 낙동강 갈대꽃 축제 (10.11~12 양일간)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니께

하늘 좀 그만 쳐다보라고 허리가 꼬부라지는 거여.

하느님도 주름살 보기가 민망할 거 아니냐?

요즘엔 양말이 핑핑 돌아가야.

고무줄 팽팽한 놈으로 몇 족 사와야겄다.

양말 바닥이 발등에 올라타서는

반들반들 하늘을 우러른다는 건,

세상길 그만 하직하고 하늘길 걸으란 뜻 아니겄냐?

갈 때 되면, 입 꼬리에도 발바닥에도

저승길인 양 갈대꽃이 허옇게 피야.




갈대꽃...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이런 시를 쓰는

            이정록 시인

            한번 더 읽고 싶은 詩가 아닐른지요


혈거시대                                                        

- 1993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

어쩌다 집이 허물어지면

눈이 부신 듯 벌레들은

꿈틀 돌아눕는다

똥오줌은 어디에다 버릴까

집안 가득 꼴이 아닐텐데

입구 쪽으로 꼭꼭 다져 넣으며

알맞게 방을 넓혀간다

고추에는 고추벌레가

복숭아 여린 살 속에는 복숭아 벌레가

처음부터 자기 집이었으므로

대물림의 필연을 증명이라도 하듯

잘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으며

집 한 채씩 갖고 산다

벌레들의 방은 참 아늑하다
   
 2

PVC 파이프 대림점 옥상엔

수많은 관들이 층층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자유로운 입으로 휘파람 불고

둥우리를 튼 새들 관악기를 분다

아귀에 걸린 지푸라기나 보온 덮개 쪼가리가

빌딩 너머 먼 들녘을 향해 흔들린다

때론 도둑고양이가 올라와

피묻은 깃털만 남기고 가는

문명과 원시의 옥상으로

통이 큰 주인아줌마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또 몇 개의 관이 땅 속이나 콘크리트 사이에서

우리들의 쓰레기나 소음으로 배를 채울 것이다

그리하여 관을 타고 온 것에는

새끼 잃은 어미 새 소리가 있고

회오리치는 바람 소리가 있고

도둑고양이 이빨 가는 소리가 뛰쳐나온다

피묻은 둥우리, 숨통을 막는

보온덮개의 질긴 터럭이

우리들 가슴에 탯줄을 늘이고,

PVC 파이프 그 어두운 총신들이

퀭한 눈으로 꼰아보고 있다
   
 3

우리들의 가슴속에도

제 집인양 덩치를 키워온

수많은 벌레들 으쓱거린다

햇살 반대편으로 응큼 돌아눕는

그들과 우리는 낯면이 많다

코를 풀고 눈곱을 떼내며 아침마다

우리는 벌레의 집을 청소한다

그들의 방으로 채널을 돌리고 보약을 넣고

벌레의 집은 참 아늑하다

 

 

 

 

물푸레나무라는 포장마차                            

 

버스는 떠났네

처음 집을 나온 듯 휘몰아치는 바람 

너는 다시 오지 않으리, 아니

다시는 오지 마라 어금니 깨무는데

아름다워라 단풍든 물푸레나무

나는 방금 이별한 여자의 얼굴도 잊고

첫사랑에 빠진 듯 탄성을 지르는데

산간 멀리서 첫눈이 온다지

포장마차로 들어가는 사람들

물푸레나무 그 황금 이파리를 

수많은 조각달로 고쳐 읽으며

하느님의 지갑에는 저 이파리들 가득하겠지

문득 갑부가 되어 즐겁다가

뚝 떼어서 함께 지고 갈 여자가 없어서

슬퍼지다가, 네 어깨는 작고 작아서

내가 다 지고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늦가을 

막차는 가버렸고, 포장마차는 물푸레나무 그림자로 출렁이는데

주인은 오징어의 배를 갈라 흰 뼈를 꺼내놓는데

비누라면 함께 샤워할 네가 없고

숫돌이라면 이제 은장도는 품지 않아

그렇지만 가슴속에서 둥글게 닳아버린 저것이

그냥 지상의 도마 위로 솟구쳤겠나

그래 저것을 나는 난파밖에 모르는 조각배라 해야겠네

너에게 가는 마지막 배라고 출항표에다 적어놓아야겠네 

나에게도 함께 노 저어 갈 여자가 있었지

포장마차는 사공만 가득한 채 정박 중인데

물푸레나무 이파리처럼 파도를 일으키며

가뭇없이 사라져도 되겠네 먼바다로 

첫눈 맞으러 가도 되겠네

 

 

 

 

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                               

 

콩나물은

허공에 기둥 하나 밀어 올리다가

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

 

참 좋다

 

쓰라린 새벽

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

제 몸을 우려내어

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

 

좋다 참

좋은 끝장이다

 

 

 

 

대추나무                                                 


땅바닥으로 머리를 디미는 시래기의 무게와

옆구리 찢어지지 않으려는 어린 대추나무의 버팅김이

떨며 떨리며, 겨우내 수평의 가지를 만든다


봄이 되면 한없이 가벼워진 시래기가

스런스런 그네를 타고, 그해 가을

버팀목도 없이 대추나무는

닷 말 석 되의 대추알을 흐드러지게 매다는 것이다

 

 

 

 

구부러진다는 것                                               

 

잘 마른 

핏빛 고추를 다듬는다 

햇살을 차고 오를 것 같은 물고기에게서 

반나절 넘게 꼭지를 떼어내다 보니 

반듯한 꼭지가 없다, 몽땅 

구부러져 있다 

해바라기의 올곧은 열정이 

해바라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그 끝없는 깡다구가 고추를 붉게 익힌 것이다 

햇살 때문만이 아니다, 구부러지는 힘으로 

고추는 죽어서도 맵다 

물고기가 휘어지는 것은 

물살을 치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말하겠다 

내 마음의 꼭지가, 너를 향해 

잘못 박힌 못처럼 

굽어버렸다 

자, 가자! 

굽은 못도 

고추 꼭지도 

비늘 좋은 물고기의 등뼈를 닮았다

 

 

 

 









2016. 05. 24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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