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스크랩] 내 안의 적들/ 이재무

향기로운 재스민 2016. 10. 30. 08:45




내 안의 적들/ 이재무


고양이의 폭정에 시달려 온 쥐들이 모여
숙의를 거듭한 끝에
다른 고양이를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하였다
다음 날부터 쥐들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보통의 인간은 엇비슷하던 이웃이
자신보다 잘나갈 때 고통과 불안을 느낀다
노예들은 주인을 경원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그들을 참기 힘들게 하는 것은
천출 벗은 자가 무리 앞에 우뚝 서 있을 때다

이때 이들은 모욕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열 마리 백 마리 천 마리 만 마리 누떼가
한 마리 사자를 당해 낼 수 없듯이
수백 수천만 노예가 주인 몇을 쓰러뜨리지 못한다
역사는 기록에 대한 수사를 발전시켜 왔을 뿐이다

진보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는 일은
그 자체로 멍에이며 스스로 불행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민중론자들 중에는 자신들보다 열등한 자들을
은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못된 버릇과 심리를 지닌 이들도 있다

내 안의 불편부당한 적들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책 속에서나
반짝일 뿐 끝내 맨 얼굴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 계간「시작」2013년 봄호 
..........................................................


 역대 대통령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임기를 끝낼 무렵엔 처음 기대와는 달리 온갖 흠집과 얼룩들로 너덜너덜해진 채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박근혜 정권 역시 혹평을 받으며 힘든 말년을 보내리라 예상은 했으나 이런 지경에까지 이를 줄은 몰랐다. 사실 박근혜 정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정권이었다. 부정선거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칠푼이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의 지독한 무능과 무지로 국정 곳곳에서 역대 가장 준비가 안 된 정권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처음부터 박근혜라는 인물의 출중함을 보고 둘레에 사람이 모인 게 아니었다.

 

 그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선거에서 유용할 것이란 얄팍한 가치만 보고서 마스코트처럼 떠받들어졌고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다. 그 곁에 붙으면 훗날 뜯어먹을 게 있을 것이란 계산을 가진 사람들이 친박이고 '측근'이었다. 아주 등신이 아니고서는 박근혜도 직감적으로 그 부분은 눈치 챌 수 있었으리라. 따라서 극소수 입속의 혀처럼 구는 사람 말고는 사람을 믿지 못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충성이고 사람을 가려내는 감별이었으며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는 자기방어기재의 경직된 몸부림이었다. 그의 눈빛이 차츰 레이저가 되어간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지지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하는 일들마다 국민을 실망시켰다. 결국 이미지 정치의 민낯은 까발려졌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풍전등화의 운명을 맞았다. 박근혜의 제1과업은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영웅화 작업이 아니었을까.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물론 국정교과서 작업도 그 연장선에서 밀어붙였으리라. 이런 판국에 그녀에게 국정을 다시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야를 촉구하는 국민운동의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며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면서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할 때다.

 

 자칫 성급하게 탄핵을 밀어붙였다가는 저들의 술수에 휘말려 발을 헛디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잡아끌어 내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으나 이 운명적 상황을 필연으로 바꾸어놓기 위해서는 좀 더 이성적이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 박근혜에게 남은 무기는 측은함과 불쌍함이다.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지만 상황에 따라 다시 결집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그리고 저들은 안간 힘을 다하여 이 위기상황을 방어하려 할 것이다.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야당의 전략적 대응도 냉철하면서 신중해야할 것이다.

 

 적전분열이 낭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의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자파 후보를 밀기보다 위장 중도세력에게 표를 몰아주는 카드를 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진보야당의 승리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야당 내에서 자기네들끼리 서로 먹겠다고 치고받고 싸우다가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다. 또 다시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영달, 입산양명만을 꿈꾸는 무리에게 이 나라를 넘겨서는 안 된다. 야당도 예외일 수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인간은 엇비슷하던 이웃이 자신보다 잘나갈 때 고통과 불안을 느낀다’ ‘천출 벗은 자가 무리 앞에 우뚝 서 있을 때’ ‘모욕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과거 토지개혁으로 지주계급이 몰락하고 소작농이나 드물게는 머슴 출신이 새로 땅주인으로 등극했을 때 실제로 횡횡했던 정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은 맞춘다고 한 마크 트웨인의 말도 있다. 비유하자면 이 같은 일은 어떤 집단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고 정치판이나 문학 동네라고 예외는 아니다.

 

 흔히 시기와 질투를 말하지만 엄밀하게는 이 둘은 다른 감정이다. 시기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불퉁한 감정인데 반해, 질투는 자신이 이미 소유한 것을 경쟁자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질투심과 시기심은 대부분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는 마음이나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모두 탐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고통(샤덴)과 기쁨(프로이데)을 합친 샤덴프로이데라는 독일어가 있다. 잘나가는 누군가가 잘못되기를 바라고, 그리 되어 그 사람이 고통 받을 때 자신은 기쁨을 느낀다는 인간 내면의 중층적 심리구조를 표현한 단어이다. 한 마디로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란 모토로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며 즐기는 심리를 말한다. 진보진영 가운데 유난히 이런 사람들이 더 눈에 뛴다. 그래서 진보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는 일은 그 자체로 멍에이며 스스로 불행지수를 높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부 민중론자들 중에는 은근, 노골적으로멀쩡한 사람을 깔아뭉개는 못된 버릇과 심리를 지닌 이들도 있다. 사실 이들은 진보진영 안에서도 분란만 초래하고 불쾌지수만 높일 뿐 도움 될 일은 없다. 여기서 이러한 아집과 경직은 진영에 독이 되고 적이 될 뿐이다. 불편부당함으로 똘똘 뭉쳐진 무리들도 있다. 이들에게 우리의 삶을 내어주어서도 안될 일이다. 진보든 보수든 '내 안의 불편부당한 적들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책 속에서나 반짝일 뿐 끝내 맨 얼굴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권순진


Immortal Beauty - Aeoliah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