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스크랩] 구층암 모과나무/ 권갑하

향기로운 재스민 2011. 7. 24. 06:47

 

 

 

구층암 모과나무/ 권갑하

 

 

 

-시상에 뭐 볼끼 있다고 이리 가는교?

-아주 기맥힌 것이 시상에 있어라우!

 

동서東西간 붉은 화답에

산도 활활 타오른다

 

-기둥 좀 보아, 저 생불 좀 보랑께요!

-몸보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마이!

 

한 생애 굴곡진 옹이

맑고 고운 흰 가슴

 

-득도한 고승대덕의 뼈마디가 저럴까요!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 안 한다요!

 

내 마음 천불 뜨락 가득

모과향이 짠하다

 

 

 

- 격월간『유심』2010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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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층암은 구례 화엄사 대웅전 옆으로 난 호젓한 산길을 천천히 십여 분 걸으면 만나게 되는 아담한 암자다. 이 암자엔 깨어진 ‘구층탑’이 있고 ‘천불전’이란 법당이 있다. 이 법당 앞 요사채의 기둥이 특이하게도 자연 상태 그대로 다듬지 않고 사용한 굵은 모과나무이다. 전라도 동서가 경상도 동서의 손을 이끌어 보여주려 한 ‘기맥힌’ 구경이 바로 그것이다. 산 수령으로 약 이백년 된 이 나무기둥들은 백여 년 전 요사를 새로 지을 때 암자 마당에 자라던 모과나무를 베어 썼다고 한다. 생불의 ‘몸보시’였던 셈이다.

 

 절집 요사는 스님들의 생활공간이자 공부방으로 대개 매우 조용하면서도 검소하다. 삶이 요란 떨지 않고 죽음의 음영조차 삶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다. 화엄의 본질은 만물을 같은 뿌리로 이해한다. 하나 가운데 모든 게 있고, 모든 것이 곧 하나라는 일체의 우주사상. 또한 모든 생명체들이 같은 존재가치를 지니고 그 역할이 평등하다는 뜻이다. 모과나무기둥을 보며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우주 만물과 우리 모두는 영원과 무한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도 알게 된다. 그 상념으로 기둥을 보노라면 ‘한 생애 굴곡진 옹이 맑고 고운 흰 가슴’이 그대로 ‘득도한 고승대덕의 뼈마디’다.

 

 6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외형적 정형의 틀을 가진 3수의 현대시조이다. 시조 한 수는 보통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다. 하지만 현대시조는 대개 종장 첫 구 3자만 변함없고 나머지는 한두 자씩 파격이 허용되는데 이 시도 그렇다. 그래서 현대시와 현대시조를 변별하기란 쉽지 않고, 정형성 말고 내용적으로는 시와 시조의 차이점을 발견하기란 더욱 어렵다. 현실적으로 시조시인이 쓴 시면 시조로 분류하는 정도인데, 이 시를 이번 <詩하늘>여름호 ‘독자가 뽑은 좋은 시’에 재수록 소개하면서 편집상의 작은 실수로 현대시에다 포함시킨 것도 그런 이유라 하겠다.

 

 실수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요즘은 문예지 등에서 동시까지를 포함해 <시>의 카테고리 안에 함께 묶어두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장르 구분은 많이 퇴색되었다. 현대시조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의견이 없지 않으나, 소비자(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구분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모과 나무 기둥을 처음 보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