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꽃

[스크랩] 세계적인 대문호 백호 임제

향기로운 재스민 2011. 8. 16. 05:38

 

세계적인 대문호 백호 임제

대문호 백호 () () 임제는 나림이 낳은 천재 시인이며 동양의“셰익스피어”라고 불릴 만큼

“오늘 날에 와서 그 문학이 더욱더 빛을 발하고 아름답게 새겨지며 백호의 생애가 추억 돼 고 있다”고

많은 학자들은 말 하고 있다.


2003년 10월 23일 나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나주인물 선양 학술세미나에 학자들이 쓴  글 일부와

조선시대 중기 저명한 문인들의 백호에 대한 평 일부를 소개 해 봅니다.


그는 제제다사( 濟濟 (제제) 多士 (다사) )가 쏟아져 나와 문운( 文運 (문운) )이 가장 흥성 하였던 목릉성세( 穆陵 (목릉) 盛世 (성세) )에서도 

군학일봉 ( 群鶴 (군학) () )(봉))) 과도 같은 천품을 발휘하여 시와 문장, 기개 있는 삶을 통하여 일세를 울렸던 기 남자였다.

 백호가 남긴 작품은 시에 있어서나 소설에 있어서나 우리 문학 사상 정금( () 金) () 과도 같은 보배여서

기왕에도 주목된 바 있지만 정심한 성찰을 통한 가치의 천명이 요망된다. <학술 세미나에서 () () ()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


 동시대의 백사 이항복(白沙 李 恒 福 )도“만약에 고각 (鼓角)을 세우고 단에 올라 맹주(盟主)를 세우기로 한다면

백호 그 사람이 될 것이다. 아깝게도 이운( () () )의 발굽이 중도에 넘어졌다.”

“공명 따위야 맨손으로 얻을 수 있다” 하면서 마냥 풀어진 채 스스로 놓여나서 해학을 일삼고

굳이 문묵(文墨) 잡아 입을 검게 만드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를 않았다 세상은 이 때문에 그를 의아해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그를 기이하게도 여기었다. 중년에 이르러 스스로

깨달아 유협 遊俠 (유협) 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으며, 마침내 서사 書史 (서사) 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명산을 두루 유람하여 자신의 분방 奔放 (분방) 호일(豪逸)한 기운을 북돋아 시에다 토해 냈다. 그 가끔 찬란한 무지개가 허공에 출현 하여 어떻게 흉내도 낼 수 없는

경관을 은 비록 천조(天造)라 이르겠지만 색채를 내 꾸며내는 데에 이르러서는 두 번천(杜樊川:杜牧)에게 터득하여

그려낸 것이 많았다(백호전집936)

(백사 이항복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오성 대감에 진봉  되었음)

 

하산 조우인(夏山 曺友仁)은 부벽루 상영록을 보고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그 책자 가운데 무려약간 편인데 그야말로 주옥이라 땅에 덜어지면 맑은 소리가 날 듯 싶었다.

한번 읊조려 음미해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격조가 높아 화답할 자가 드물다는 탄식을 발하게 한다.

임 자순(林 子順:백호의 자)은 청운의 원대한 그릇으로  재주에 확충을 미처 다 못하고 시를 남겼으니

그의 정신 기상에 불멸의 무엇이 존재 하는 듯하다. 나는 기왕에 그 사람을 애달파 했고 또 격률의 고고 함을

좋아 했거니와 생애 또한 동시대로 평소에 종유할 기회를 얻지 못했음을 더욱 탄식했던 터이다.”

 <조우인:1561~1625 선조 때에서 인조 때에 걸친 문인으로 회화 및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벼슬은 승지에 이르고 매호별곡(梅湖別曲)등을 남겼다>(백호전집755)

 

허균은  학산초담(鶴山憔談)에서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그의 산문은 많이 읽어보지 못 하였으나 이른바 수성지(愁誠誌)라는 것은 문자가 생긴 이래 하나의

별문자(別文字)이니 천지 사이에 이글이 없다면 자연히 한 결함이 될 것이다.”.

(학술세미나 (김진영교수)


“백호는 유자(儒者)인가 하면은 불도(佛道에도 관심을 가지고 휴정(休靜)등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과도

교류를 하는 등 유불의 사상을 초월 했던 것이다. 문인이면서 무예에 와 병법에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다정다감한 반면에 그와 정 반대 되는 기질을 가진듯하니 호방하고 활달한 천품이 그것이다

그래서 광객 같기도 하고 또 끝없는 우국 사상가 같기도 하며 순결한 시인 같기도 했다.

당시에 동서붕당에 초월 했고 서얼과도 교류를 한 것을 보면 은, 계급을 초월한

여러 기품이 잘 조화된 萬有神의 權 化 이다. 백호는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로 현실과 타협 할 줄 모르면서

호탕 하면서도 감상적 인물이다”          .(세미나에서 경북대 국문학 교수 김 광순)


“필자는 소설 연구로 한평생을 살아온 셈인데 임제처럼 매력적인 작가 다양한 작품에 일직이 매혹 되어 본적이 없다”

(세미나에서 소 재 영 숭실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요컨대 백호 임제는 중세기적 사회 모든 도덕적 모순을 지적 폭로한 인도주의자다.

자신도 양반이면서 통치계급, 양반 계급의 추악하고 비열한 행동을 증오 타매 할 수 있는

애국 평등사상 가였다. 모든 허위와 불성실을 불사르고 국민의 심장에 새로운 싹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것 이였다. 작가 백호는 우화와 풍자로서 예술적 작품을 완성하여 우리나라 소설 문학을 발전 시켰다.

풍자성은 우화에 의하여 더욱 강력 하여 졌다 또 후자는 전자에 의 하여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됐다. 진정한 풍자 가는

언행의 불일치와 표리의 불이치 즉 유명무실과 위선과 가식을 대상으로 한다 웃음은 그 대상에 대한 중오와 경멸의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다. 풍자가 고도에 달한 경우에는 <혁명적인 것으로>작용 한다.

다양한 우화적 풍자로 충만한 작가의 문학적 사상과 소설적 작품을 16세기 문학사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문학 전통의 훌륭한 영에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55년10월20일 최 익 한 씀 (창해 최 익 한 연변 대학교 교수, 김일성종합대학교 조선 문학사 강사)


백호 시집을 대하고 “ 백호 문학은 세계의 만인이 공유해야 할 문화재 이다.” 라고 하면서

“세계적 공인된 문화재로서 인정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으로 여생을 다 하겠다>”

일본의 나까겐지(仲井健治)


이러한 백호에 대한 평을 한 문헌들을 접했을 때 백호 임제는 400년 전에 이미 평등적 사상을 가지었고

나림이 낳은 세계적 대문호이며 선각자로서 나림의 유구한 문화적 역사의 가치를 높이고 빛나게 하며

나림인으로서긍지와 자부심을 드높이게 한다고 생각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백호를 찬양 한다면서 오히려 폄하고 모독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예를 들면 사회적 명망을 덮어쓰고 백호가 타매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명성이  좀 있다고 해서

자신의 우리 역사에 부끄러운 행위를 모르고   백호의 혼을 모독하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자들이 더러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안중근 의사나 백범 기념사업에 친일파가 참여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소설이라고 아무 역사성도 백호에 대한 검증도 없이 나주출신이라고 칭하는 문인이 삼류 주간지 에나

실릴 법한 흥미위주의 소설을 창작이라고 치부하면서 마치 깊은 연구를 한 것처럼 세상에 내놓아 백호선생을

폄하하고 모독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등을 비평하고 저지 할 수 있고, 위대한 백호를 한낱 기생들과 염정이나

나누고 하는 풍류객으로 만 알고 있는 부분을 불식시키고 백호를 좀 더 바르게 깊이 있게 알려고 노력 하는 것도

우리의 정신문화에 꽃을 피우게 되고 나림인으로서 자부와 긍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 합니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그토록 위대한 백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예컨대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 보다) 까닭을 나름대로

주워들은 상식으로 소개 해보려고 합니다.


*** 백호에 대하여 깊이 있고 바르게 알기 위 하여는 백호전집 (신 호 열. 임 형 택 공역    창작과 비평사) 이 참고 자료서

가장 많이 이용 되고 것으로 추정되는데, 품절이 돼서 재판이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뜻 잇는 나림인 들이

뜻을 모아 재판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면 가능 하리라고 생각 됩니다***

출처 : 사색공간
글쓴이 : 창강 임동규 원글보기
메모 : 장미 씨와 함께(역사를 좋아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