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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향기로운 재스민 2011. 9. 19. 17:17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마음속 깊이깊이 아로새길까

기쁨 앞엔 언제나 괴로움이 있음을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영원의 눈길 지친 물살이

천천히 하염없이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사랑이 흘러 세느 강물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찌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더냐

희망이란 또 왜 격렬하더냐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햇빛도 흐르고 달빛도 흐르고

오는 세월도 흘러만 가니

우리의 사랑은 가서는 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만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 시집『알콜』(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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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폴리네르의 이 시에는 ‘마리 로랑생’이라는 화가와의 사랑과 추억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둘은 오랜 기간 사랑을 나눴지만 서로의 현저한 개성 차이와 돌발 상황으로 결별 하였고, 로랑생은 바로 독일인과 결혼하였다. 한 달 후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 국적을 가진 마리 로랑생은 영영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에 아폴리네르는 그녀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이 시를 남겼는데, 그는 1918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미라보 다리 아래 강물이 흐르듯 이 시는 영원히 모든 연인들의 추억 속에 흐르고 있다. 사랑의 상실과 이별의 아픔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버리지만 그런 상실과 아픔을 세월의 덧없는 흐름 속에 던져버릴 때의 처절한 체념은 영원히 머문다. ‘흐름’가운데 ‘머무름’의 짙은 서정이 이 시를 감싸고 있다. 도처의 이름난 명소에는 사람마다의 개별적 추억이 서려있고, 그런 까닭에 각기 독특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1896년 완공된 파리 세느강의 미라보 다리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아폴리네르의 이 시도 그 일부일 것이다. 다리에 관한 스토리만 해도 같은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퐁네프’와 함께 ‘메디슨 카운티’가 얼른 생각날 정도다. 하지만 가본 사람은 다들 느끼겠지만 미라보다리는 학창시절 고양된 설렘을 제공했던 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그저 그런 평범한 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또한 시 한편에 힙 입은 스토리텔링의 위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먼 곳에서 아폴리네르의 이 시를 추억하며 미라보를 찾는 사람이 있겠고, 다리 위에서는 연인들의 짙은 입맞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동촌 강을 가로 잇는 보도교가 최근 세워져 앞으로 적잖은 추억이 양산되리라 본다. 어쩌면 미라보 다리에 버금가는 시가 한 편 탄생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쪼록 이름도 잘 좀 짓고 형광조명 불빛 둘레 곤충들의 군더더기도 말끔히 소제되어 시민들의 추억과 낭만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 없길 바란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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