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스크랩] 가을은 푹 익어가는데~

향기로운 재스민 2011. 11. 25. 15:36

 고삐풀린 하루, 그리고 ~

 "오늘은 잠만 자는 하루"

고무줄처럼 옥죄었던 시간의 해방감.

멍~ 띵~ 고요속으로 엄습하는 불안, 초조,

왜?

일상화된 틀에서의 행복감?

역시

인간은 움직이는 동물

 

"걸으면 살고 않으면 죽는다."

 

끓임없이 변화속에서 주체인 내가 존제한다는~

겨우살이도 대충 끝냈고~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이 손짓한다.

내년에는~!

그래

일주일에 2번 정도는 켐푸터와 이별하고~

욕설도 반 쯤 줄이고~

그간

많이 생각해본 담론이다.

 

"너 왜 사니~?"

"죽는 것이 사는것 보다 백배 천배 어려워 산다."

아주~아주 공평한 한번은 누구나 가야 할 곳

"죽음의 문"

21세기 최대 담론

"어떻게 휼륭한 죽음을 맞이할 것 인가?"

삶이 양적에서 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느리게? 여유롭게?

아니

멍청하게 살자! ㅎㅎ

 

여기


고양이 대학살

저자
로버트 단턴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펴냄 | 1999-09-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
가격비교

<고양이 대학살>은 1730년대 파리의 생-세브랭 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났던 해프닝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파리의 가내 수공업장은 주인-장인-직인-견습공의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들의 생활 여건은 무척이나 달랐다. 대부분 부르주아 계급이나 귀족 계급에 속했던 주인들은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이 기르던 고양이들마저 등따숩고 배부른 처지였는데 비해 최하층인 직인들과 견습공들은 온갖 차별과 비위생, 고양이보다 못한 영양상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어느 날 밤 한 견습공이 주인의 침실 위 지붕에서 고양이 울음을 흉내낸다. 놀란 주인은 이것이 악마의 출현이라고 믿고 직인과 견습공들을 동원하여 주위의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도록 한다. 단, 주인 마님이 애지중지 키우던 ‘그리스’라는 고양이는 학살에서 제외였다. 그렇지만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견습공들이 주인의 고양이를 그대로 둘 리가 있겠는가? 대대적인 고양이 대학살 속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죽인 후에 시체를 홈통 속에 숨긴다. 주인 마님은 ‘그리스’가 없어진 사실에 대경실색하며 견습공들을 추궁하지만, 이미 수많은 고양이들이 학살당하여 시체들이 처리된 후라 ‘그리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주인 마님의 비통함과 견습공들의 통쾌함 속에 대학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건은 그냥 끝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복사(copie)’로 남게 된다. 고양이 대학살은 견습공들이 모인 곳에서 무언극으로 재연되었고, 이것은 주인들에 대한 조롱과 자신들의 단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대혁명 이전에 루소에게 열광했던 독자들은 이전의 ‘점잖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자와 지식의 독점을 해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세계에 대한 인식틀을 제공해 준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공헌이었다면, 텍스트에 몰입하고 현세계에서의 적용 가능성까지 나아가도록 한 것은 루소와 새로운 풍토를 담은 책의 공헌이었던 셈이다.

마무리하며....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은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어렵다는 평가도 많지만 음식을 꼭꼭 씹듯이 찬찬히 보면 그 논리전개에 신선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단턴의 책이 일종의 ‘결과론적 추론’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별적인 사실들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건에 개별적인 사실들을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건 거의 무한대로 존재하는 과거의 사실 가운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상대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프랑스대혁명 과정에서 왕족(귀족)-시민(부르주아)-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대립구도를 알고 있다. 단턴의 작업을 조금 폄하하여 말하자면, 이런 대립구도를 보여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들을 찾은 것이다. 고양이 학살 사건에서 대립구도의 단초를 본 것인데, 만약 다른 역사가가 18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주인과 견습공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발굴하여 제시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람들의 일상사는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랑케가 주장한 바 사료의 객관성과 보편타당성 역시 무시해 버리기에는 어려운 가치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출판사 서평중에서~>

 

"쥐잡는 고양이"

 

애완동물

개에서 고양이로 바뀌고 있다는~

3년사이 고양이의

사료가 244%,

전용간식은 393%

미용용품은 116%

 

목축의 보조인 개에서

쥐잡는 고양이로~

 

"쥐가 많아졌다는 것일까?"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

     그럼

     두눈 가진 나라에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그런

나는 어느 부분을 만지고 있는 것 일까? ㅋㅋㅋ

 

점심도 걸르고 코고는 소리가

가을의 속삭임인가?

 

그럼

80년대 말

뉴에지 열풍에서 한 동안 좋아했던 뮤지션

Richard Clayderman의

가을을 닮은 연주곡

"A Comme Amour "외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맷시지는 질서와 평화이다.

 자연은

 서로 다투거나 간섭하지 않고

 각기

 제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코고는 소리가 자연을 닮았다면~

차가운 별이 머리 보이는 것도

멀어져 가는 가을 탓 일까?

출처 : 파랑새의 꿈은 희망이다.
글쓴이 : 늘푸른 마음 원글보기
메모 : 좋아하는 피아노 곡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