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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집 깊게 읽기1>이규리편- 권순진 엮음

향기로운 재스민 2012. 2. 25. 14:20
 

<시 깊게 읽기1 이규리편>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사이의 경계 - 권순진


 한 시인과의 온전한 문학적 소통을 원한다면 그 시인의 작품집을 사서 읽는 것이 먼저이고 도리다. 작품집에서 시 몇 편 골라 묶어 독자들 밥상에 대령하는 ‘다이제스트’ 형식이 과연 본격적 내통을 위한 예비단계 쯤으로 기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독자의 입맛을 북돋울 기재는 충분히 되리라 기대하며 이번에 새롭게 『작품집 깊이 읽기』를 기획하였다.

 그 첫 순서로 1994년 『현대시학』으로 데뷔, 2004년 첫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을 펴낸 바 있고 2년만인 2006년 두 번째 시집 『뒷모습』을 묶은 이규리 시인의 작품을 그 대상으로 하였다.

 근작 시집 『뒷모습』에 해설을 붙인 김수이(문학평론가)는 “삶의 실제 상황들을 다채롭게 운집해놓은 만물상과 같다. 때로는 진중한 잠언의 분위기로 , 때로는 수다와 농담의 형태로 이규리가 펼쳐놓는 시의 만물상에는 그녀가 하루도 쉼없이 바닥을 지나며 수집한 각양각색의 삶의 편린들이 가득하다”면서 그 만물상 앞에서의 별별 상상력은 “충실한 녹취의 기록이며, 잡음까지 고스란히 재현하는 성능 좋은 재생기”를 닮았다고 하였다.

 그런 이규리 시인의 시를 묶어서 감상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퍽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또한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사이의 경계를 정교하게 허물어가는 그의 언어를 따라가는 일은 독자로서는 큰 즐거움이고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한국시단의 굳건한 중견으로 자리매김한 이규리 시인은 문화예술위원회가 매분기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우수작품에 거의 빠짐없이 선정되어 편당 백만 원이란 꿈의 고료를 챙기면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더니 지난 2006년 말에는 대구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대구시협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외적 성과 보다는 늘 문학 그 자체의 완성도와 순도를 더 중히 여기는 시인이란 사실을 충분히 알기에 우리는 시인의 높은 촉수와 상상력으로 빗어내는 작품에 더 많은 기대를 걸며 지지를 보낸다.  (권순진)


 

그늘 값 / 이규리


성수기, 해운대 비치파라솔 한 채 오천 원

멀리서 보면 오천 원짜리 멜라민

비빔밥 그릇들 엎어 놓은 것 같지만

어쨌든 그늘 값이다

오천 원 안으로 반쯤 익은 몸뚱이들

비빔밥 재료처럼 슬슬 비벼지기도 하는

 

그늘을 샀다지만 거기 무슨 경계가 있나

변덕스런 월 셋방 주인처럼

자꾸 자릴 옮겨 앉는 감질 나는 그늘,

깐죽거리는 햇살 따라가다 보면

그늘은 파라솔 밖에 있거나 없거나

이참에 달아오른 몸들도 물 속에 있거나 없거나


그늘은 그늘 아닌데다가 그늘을 만든다

만질 수도 없는데 서로 밀고 당기는 수고들,

마음 그늘엔 누가 자릴 차지하고 있나

접었다 폈다하는 파라솔이 아니면

그늘은 원래 없었던 것

마음이란 것도 원래 없었던 것


그늘이라면,

오천 원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접힌 바짓단에 숨어 든 모래처럼

그렇게 들었다 나는 것


 

와리바시라는 이름 / 이규리 

 

 


와리바시와 사타구니 사이

여자라는 상징이 있다

벌린다는 것, 좋든 싫든 벌려야 하는

그런 구조가 있다

여학교 때 체육선생은

다리벌리기 하는 아이들 등을 꾹꾹 눌러

나무젓가락 가르듯 해 기절시키곤 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간혹 젓가락이 반듯하게 나뉘질 않고

삐뚤어지거나 엇나가는 건

젓가락의 저항이다

말 못하는 다리의 저항이

삐끗 다른 길로 들게 했을까

와리바시란 이름 딱지 영 못 떼고

생을 마감하는 불운처럼

사타구니 불안을 영 마감할 수 없는

여자이야기,

참 길고 질긴 이야기


 

우듬지 / 이규리




  나무 밑둥을 안았는데 왜 우듬지가 먼저 기척을 하는지


  언젠가 당신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내게도 흔들리는 우듬지가 있음을 알았다


  빠른 속도로 번지는 노을, 그 흥건한 물에 한 철 밥 말아먹었다 너무 뜨겁거나 매웠다


  상처라도 좋아라 물집 터져 나온 진물에서 박하냄새 맡던 저녁, 내 속으로 한 함지 되새 떼 쏟아져 날았다


  손닿지 않는 곳에 뭘 두었니? 당신을 숨긴 우듬지엔 만질 수 없는 새소리 만 남아,


  어느덧 말라버린 무화과꼭지처럼, 살이 쏙 내린 잔뼈로 이름만 얽어놓은 그곳 닿을 수 없는,        

 

 

젖는다 / 이규리




  웃어도 찔끔, 걸을 때도 찔끔, 긴장하면 주룩 샌다는 일흔 어머니 요즘 우울하시다. 세상에는 비도 새고 날도 새고 비밀도 새지만, 새는 것은 분명 누군가를 뭔가를 젖게 하지만, 오줌이 새는 일은 더럽게 김새는 일이다

  집안의 틈 모두 막아내다가 생고무 같던 어머니의 막이 너덜해졌다 모로 누운 저 축축한 잠이 가파르고, 아무도 막아 주지 못하는 생애의 저음부, 수고는 꼭 따뜻하게 되돌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 숨어 기저귀 차다가 화들짝 놀란다 나, 저 물컹한 자리 닿지 않았음 좋겠다 짓무른 아랫도리처럼 눈가가 불그레한 어머니 혼자 오래 젖는다

 

풍경이 흔들린다? /이규리


 

 

어금니 하나를 빼고 나서

그 낯선 자리 때문에

여러 번 혀를 깨물곤 했다

외줄 타는 이가 부채 하나로

허공을 세우는 건

공기를 미세하게 나누기 때문,

균형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지만

그건 농담일 게다

한 쪽 무릎을 꺾으면 온몸이 무너지는 건

짐승만의 일이 아니다


지친 다리 끌며 가서 보았다

인각사 대웅전 기둥이

균형을 위해 견디고 있는 것을,

기우뚱해 있는 저 버팀목까지도

서로 다른 쪽을 위해 놓지 않고 있는 믿음을,

처마 끝에서 풍경은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공기를 조절하며 추녀를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소리 내어 기둥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소외에 대한 경험

       -놀이와 시에 대한 생각

 

이규리

 

  어린 시절, 해가 설핏 기울면 아이들은 골목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모이면 하루를 마감하는 놀이,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술래가 정해지면 50을 헤아려야 하는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다섯 차례 외울 동안 나머지는 숨어야 한다. 얼마나 재치있는 기표인가. 이 열 개의 음절 속엔 가난이 있고 애국을 강조하던 한 시절이 있고 까망 고무신의 헐거움도 있다. 어쨌거나 그 열 개의 음절은 탁월한 설정이었고 함축적인 기호였음에 분명하다.

  그 기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물옥잠 핀 돌확 뒤거나 헛간의 장작무덤 뒤, 담장과 만나는 화단 울타리에 보호색처럼 붙어버리거나 감나무 낮은 가지에 가마니를 걸쳐놓고 숨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너무 잘 숨어서 웬만한 술래는 좀체 나를 찾지 못했고 당연히 나는 숨바꼭질의 대부처럼 넌지시 으스대곤 했는데 어느 날, 너무 꼭꼭 숨어버려 술래는 나를 찾지 못하고, 나라는 존재도 잊어버리고, 저희들끼리 다음 놀이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잊혀졌다. 가쁜 숨을 참으며 견디며 열중했던 놀이에 배신당한 마음은 저녁보다 빠르게 어두워 왔다. 숨어 있던 곳에서 나갈 수도 그냥 있을 수도 없는 순간, 벽은 점점 높고 견고해 나를 영 가둘 것 같았고 숨바꼭질의 명성을 죄다 팽개치고 싶을 만치 도외시된 그 느낌, 최초의 소외였다. 소외는 외롭고 무서웠다.

  나는 규칙의 어설픈 적용을 원망하기보다 비정형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훨씬 이후까지 그 소외 때문에 꿈속에서도 시달려야 했지만 소외를 제공한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그건 술래잡기라는 기호, 놀이라는 기호를 잘못 해독한 결과였다.

  놀이란 적당히 들켜주거나 져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한 곳에 틈을 내 두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놀이가 성립되는데 놀이를 실전처럼, 실전도 실전처럼 한 경직된 구조가 초래한 결과였다. 시가 그러했고 삶이 그러했다. 시나 삶 역시 놀이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시를 놀이처럼 즐겁게 하지 못하고 삶을 놀이처럼 유쾌하게 하지 못해 시나 삶에 여전히 소외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의미로 이젠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소외시킨다. 관계는 아름답기보다 더 많이 불행하다는 것도 알았다. 가려주고 숨겨 줄 돌확과 헛간과 벽은 없다. 극한의 언저리를 더듬기 위해 기웃거리는 삶은 포즈 같았고, 참담의 입지에 던져지고자 하나 나는 늘 너무 얕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안팎으로 떠도는 기표들을 따라 헤매려 한다. 가벼워지려 한다. 그 아가리에 덥썩 물리기 위해 오래 어둡고 잠시 황홀하지만 그것 또한 문학의 길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우리 같이 더 읽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