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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집 깊게 읽기2>서영처편- 권순진 엮음

향기로운 재스민 2012. 2. 25. 14:41

<시 깊게 읽기2 - 서영처 편>

 

시인의 눈과 귀 - 권순진


 서영처 시인은 2003년 계간 ‘문학.판’으로 등단하여 지난 해 봄 첫 시집 ‘피아노악어(열림원)’를 펴냈다. 지난해에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매분기 문예지 게재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 우수작품에 ‘자격루’가 선정되는 등 1년여 동안 한국시단에서 가장 왕성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시인 가운데 하나다. 학부 전공인 음악에서부터 박사과정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문화지대는 단순히 시와 음악의 어울림 정도에 머무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언어나 음표라는 기호를 통해 대상을 묘사하고 서술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음악은 닮은 점이 많다면서, 어떤 면에서는 음악이 문학보다 더 언어적"이라는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과 문학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서영처 시인에게 음악과 문학은 서로 긴밀하고 요긴하다. 영남대학과 동양대학 두 곳에서의 강의도 음악 속의 문학성과 문학 속의 음악성이라는 깊이 침잠되어 서로 끌어주는 자기장 현상 같은 것을 보여주려 한다. 마치 고급의 첨단 오디오에서 극단의 소리를 재현해내는 능력처럼 음악을 표현하고 문학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서영처 시인에 의해 조우되는 음악과 시의 현장은 야릇한 아름다움으로 질펀하다. 사실 음악과 문학이 공유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기원을 안다면 음악인이 문학을 하는 것이 그다지 낯설거나 얄궂지만은 않다. 중세 서양에서 음유시인들은 시인이며 작곡가이고 가수였다. 고대의 제사장들 역시 시인이며 음악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서영처 시인이 지향하는 음악과 문학은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데에 있지 않겠나 싶다. 작년 이른 봄 드럼통에서 막 꺼낸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같은 빨간 시집을 건네받은 뒤 설핏 본 시인의 눈동자는 참 맑고 부드러웠다. 시인의 외모가 주는 느낌으로 시를 이해하고 규정짓고 개념화하는 태도는 옳지 않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시인의 눈은 더욱 융숭하고 그윽해지리란 믿음을 의심치 않는다.

 

피아노악어
-서영처


혼자 지키는 집,
늪으로 변해버린다
땀이 거머리처럼 머리 밑을 기어다니고
눅눅한 공기가 배밀이를 하며 들어온다
수초가 슬금슬금 살을 뚫고 자라난다

피아노 뚜껑을 연다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악어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
여든여덟 개의 면도날 이빨이 덥석 양팔을 문다
숨이 멎는다
입에선 토막 난 소리들의 악취
손가락은 악어새처럼 건반 위를 뛰어다녔는데
놈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내동댕이친다
물 깊이 물고 내려가 소용돌이 일으킨다
수압에 못 이긴 삶은 흐물거린다

대궁 아래 숨어 있는 눈망울
나는 수초 사이 처박혀 한없이 불어 터진다
어디선가 웅성거림 들려오는데
핏물 흥건한 이곳으로
물거품이 궤적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죽어라 헤엄치다 돌아본 늪엔
수련이 가득
구설수처럼 피어있다



공명이라는 것
-서영처


라닥은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땅이다 투링은 암벽 위의 꼼빠?! ? 산다 만류하는 어머니를 울며 졸라 열 살에 출가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눈 덮인 산과 맑은 하늘 뿐 아이는 또래의 도반과 얼음이 어는 추운 방에서 잔다 새벽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그 물 뿜어 얼굴을 씻는 아이 큰 스님 되기가 소원이었지만 휑한 눈으로 멀리 산 아래를 한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겨울 볕을 해바라기하며 두런두런 경전을 읽는 아이의 팔에 소름이 돋는다 붉은 사리를 두른 아이, 혹한의 여백을 밀며 당기며 악기가 되어간다



태양, 물 위의 연꽃들
-서영처


누각은 기러기나 오리의 날개처럼 세워진다 그 아래 내 안압을 팽창시키는 못이 있다 중얼중얼 물결 퍼지자 대궁은 움켜쥐었던 햇살 펼친다 꽃잎은 손가락이다 못의 근심이 밀어올린 태양, 망막을 찢으며 수면 구석구석을 수런댄다

매표소 근처 바람개비 파는 여자, 장맛비 못 둑 넘치게 울어 눈이 벌겋다 생각난 듯 가슴 헤치고 돌아앉자 주린 젖먹이, 어미의 무덤 속으로 파고든다 아기 잇몸 뚫고 하얀 꽃잎 돋아난다 가쁜 숨들 어둠 삼키고 자맥질 치며 솟아오른다



안산을 기억하다
-서영처


수인선 협궤열차는 ! 덜컹거리며 미간을 빠져나온다
푸르른 논들 가로질러
어깨 툭툭 내 려치는 바람이 되어 사라진다
차창 밖 세상 빠르게 지나도
소금밭 한 귀퉁이 몸 어딘가에 박혀
쩡쩡한 햇볕을 기다리는지
꼬막 같은 소래 역
협궤열차가 줄그으며 서해로 밀려가고
노을은 철조망에 찢겨 너덜거리는데
눈자위로 바다는 밀물진다
君子路 네온사인 아우성쳐도
바람은 향기로웠다고,

낡은 사진틀 속을 흐르는 강
기슭 옆구리에 끼고 다리 아래를 거니는 사람이 있다
그의 삶에 다른 계절은 없는 듯
날카로운 창날의 여름이 어깨 위로 쏟아진다



무덤들에서 듣다
-서영처


깊이 뿌리내린 섬이네
한 사람씩 들어가 고립되어 버리는,
낙타의 육봉처럼 군데군데 솟아
오-ㅁ 오-ㅁ 낮은 소리를 내네

소를 놓치고 울던 어린 날의 아버지가
여기 봉분에 기대어 잠이 들었네
이장한 곳의 붉은 흙은
생살을 도려낸 듯, 지금도 아프네

원재료들 요리되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네
구근처럼 양지바른 곳만 골라 태양을 호흡하더니
통통하게 살 오르는 무덤이여
절반쯤 굴러 내린 달이여

삶이 갈증을 일으켜 나는! 다시 무덤을 헤매네
누구에게도 덤은 없다고 무덤은 말하네
먼 길 가려 내 등에도 일찍이 혹을 하나 달았네
隊商들은 보이지 않고
짐 지고 구릉을 넘는 낙타구름
그림자만 가득하네



*시와 음악, 그리고 밀레의 <만종>
-서영처(시인)



오랜 세월동안 음악과 시는 서로를 동경해 왔다. 우리는 흔히 감동적인 음악에 ‘시적’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마음을 홀린 한 편의 시에는 ‘노래’라는 찬사를 바쳐왔다. 음악은 늘 시가 되고자 했고 시는 음악이 되고자 했다.

음악과 시는 기본 질료인 소리,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음악과 시는 둘 다 청각 이미지에 호소하는 것이다. 음악은 악보라는 문자로 기록되고 시는 언어라는 문자로 기록된다. 메를로퐁티는 말한다는 것은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라 했다. 음악은 그 만큼 언어와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음악의 소리는 곧 시에서의 의미라는 사실이기도 하다.

최초의 음악은 일련의 진동들이 소리를 만들고 그 변조에서 음이 생성되었다. 모든 감각의 근원은 진동이며 진동은 존재의 근원이다. 또한 진동은 소리이며 빛이며 그것은 과학적?! ? 수(數)이기도 하다. 소리는 에너지이며 생명이며 색채이다. 소리는 하나? ? 특정한 존재(being)이다. 존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존재)’은 ‘텅 빔’이며 ‘텅 빔’은 곧 ‘색’이라 하듯이 보이는 것은 다 허상이다. 존재의 중심에서 들리는 세밀한 소리가 우리 영혼의 빛인 것이다.

소리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풍부한 소리는 충만하게 열린 공간을 창조해 낸다.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서 밀레의 <만종>을 보았다. 들판에서 감자를 수확하던 가난한 부부가 저녁 종소리에 일을 멈추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다. 멀리 교회의 탑이 희미하게 보이고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노을과 보금자리를 향해 점점이 날아가는 까마귀들…. 이 넓은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공간에 부부의 경건한 신앙심이 보태져 그림은 음악처럼 장엄하게 울리며 150여년 후의 영혼들을 흔들고 있었다. 감동적인 한 편의 시와 마찬가지로 밀레의 <만종>은 깊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공명의 공간은 마음속에서 얼마든지 더 넓혀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회화 역시 예술의 영역으로 궁극적으로 음악과 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시는 통찰?! ?, 상상력, 집중, 발견 같은 가치를 표현한다. 음악이란 발광(發光) 상태의 연속이며 삶에 광채를 더해주는 것이다. 최초의 음악은 바다의 소리, 바람 소리, 대지와 숲의 속삭임이었다. 시와 그림 속에도 이런 소리의 울림singing이 존재한다.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나보다 더 잘 아는이가 시인이라고 두메산골님 말씀에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