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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광규 시인 초청 시하늘 시낭송회

향기로운 재스민 2012. 2. 25. 16:36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여, 1987년 계간 『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했던 공광규 시인은 늘 사회현실과 함께 호흡하는 시를 써왔습니다. 『지독한 불륜』(1996)에서 자본과 권력 간에 벌이는 불륜을, 『소주병』(2004)에서 IMF 사태 이후의 가장들의 삶을 담아낸 시인은 4년후인 지난 연말 신작 시집 『말똥 한 덩이』를 출간하면서 우리네 삶의 상처와 회억을 스케치하였습니다. 

 
시인은 1960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과거 문학사관학교라 불리는 동국대를 졸업(단국대 대학원 문학박사)하고 현재 대학에 출강하면서 계간『불교문예』주간을 맡고 계십니다. 그 밖의 시집으로 『대학 일기』『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이 있으며. 시론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시 창작 수업』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시하늘'에 시인의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고, 또 '흥미진진'하게 읽히고 있습니다. 다음은 도종환 시인이 쓴 추천의 글입니다. '좋은 시는 어렵지 않다. 좋은 시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모순 앞에 정직하고 진솔하다. 공광규의 시가 그렇다. 좋은 시는 읽는 내내 아프다. 공광규의 시가 그렇다. 그의 시의 공간도 시간도 모두 아프다. 그의 시는 몸으로 우는 악기소리 같다. 그런데 아픈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가혹한 운명에 대해 노래하면서도 꽃나무 한 그루 옆에 세워 두고, 요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도라지꽃 한 송이 피워 놓는다. 상처와 아픔을 불교적 서정으로 덮는 내공도 깊을 뿐 아니라, 흔들렸다가는 다시 수평으로 돌아오는 수면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는 사유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모처럼 서울에서 활동중인 시인을 모셨습니다. 그것도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받는 잘 생긴 시인이십니다. '말똥 한덩이'로 스멀거리는 이 봄날의 연초록을 울울창창한 숲으로 키워보지 않으시렵니까? 이웃과 함께 오십시오. 공광규 시인과 함께하는 '시하늘 시낭송'의 밤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일시 : 2009년 4월 17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빌딩 지하1층 카페 '스타지오'-동대구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지하 주차장 3시간 무료 주차) 카페 '스타지오'(053-247-4700)

-회비 : 1만원(식사, 다과, 시하늘 봄호, 낭송소책자)

-기타 : 시인의 신작 시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분께는 시인이 사인을 해 드립니다) 

           흥미있는 '문학퀴즈'와 함께 상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낭송회 이후 시인과 함께 하는 뒷풀이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연락처 : 가우(011-818-9604)/우가희(010-2422-6796)/전향(017-501-0611)/제4막(011-9080-1296)

               오실 곳-  

 

낭송 시편입니다. 미리 감상하시고 당일은 물론 다른 시의 낭송도 가능합니다. 누구든 낭송을 원하시는 분은 오셔서 좋아하는 공광규 시인의 작품을 낭송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시집 <소주병>


별국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 시집 <소주병>

 

폭설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가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 자꾸 폭설로 지워 주신다.

- 시집 <말똥 한 덩이>


아내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시집 <말똥 한 덩이>


무량사 한 채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 시집 <말똥 한 덩이>


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 시집 <말똥 한 덩이>


몸관악기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

사장의 반말을 뒤로하고

뒷굽이 닳은 구두가 퇴근한다


낡은 우산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슬픔의 나이를 참으라고 참아야 한다고

처진 어깨를 적시며 다독거린다


낡은 넥타이를 움켜쥔 비바람이

술집에서 술집으로 굴욕을 끌고 다니는

빗물이 들이치는 포장마차 안


술에 젖은 몸이

악보도 연주자도 없이 흐느낀다.

- 시집 <말똥 한 덩이>에서 수정


아름다운 사이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가

가지를 뻗어 손을 잡았어요

서로 그늘이 되지 않는 거리에서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사이군요


서로 아름다운 거리여서

손톱 세워 할퀴는 일도 없겠어요

손목 비틀어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서로 가두는 감옥이나 무덤이 되는 일도


이쪽에서 바람 불면

저쪽 나무가 버텨주는 거리

저쪽 나무가 쓰러질 때

이쪽 나무가 받쳐주는 사이 말이어요.

- 시집 <말똥 한 덩이>

우현(雨絃)환상곡


빗줄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현(絃)이어서

나뭇잎은 수만 개 건반이어서

바람은 손이 안 보이는 연주가여서

간판을 단 건물도 고양이도 웅크려 귀를 세웠는데

가끔 천공을 헤매며 흙 입술로 부는 휘파람 소리


화초들은 몸이 젖어서 아무데나 쓰러지고

수목들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비바람을 종교처럼 모시며 휘어지는데

오늘은 나도 종교 같은 분에게 젖어 있는데

이 몸에 우주가 헌정하는 우현환상곡.

- 시집 <말똥 한 덩이>


걸림돌 

  

잘 아는 스님께 행자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 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되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황해문화> 2009 봄호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이분 시는 다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