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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난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가난한 자의 노래´ 외

향기로운 재스민 2013. 3. 16. 10:55

<가난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가난한 자의 노래´ 외

+ 가난한 자의 노래

가난도 잘만 길들이면 지낼 만하다네
매일 아침 눈길 주고 마음 주어 문지르고 닦으면
반질반질 윤까지 난다네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되지 못해도
그런대로 바라보고 지낼 만하다네

더욱이 고마울 데 없는 것은
가난으로 돗자리를 만들어 깔고 누우면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인다네
나무의 숨소리도 더 잘 들리고
산의 울음소리도 더 말게 들린다네

더욱이 고마운 것은 가난으로
옷을 기워 입으면
내 가까이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내가 그들 속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네
(윤수천·시인, 1942-)


+ 달빛가난

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흥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잠도 안 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 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김재진·시인, 1955-)


+ 내가 가난할 때

내가 가난할 때......
저 별들의 더욱 맑음을 보올 때.

내가 가난할 때......
당신의 얼굴을 다시금 대할 때.

내가 가난할 때......
내가 肉身일 때.

은밀한 곳에 풍성한 생명을 기르시려고,
작은 꽃씨 하나를 두루 찾아
나의 마음 저 보라빛 노을 속에 고이 묻으시는

당신은 오늘 내 집에 오시어,
金銀 기명과 내 평생의 값진 道具들을
짐짓 門밖에 내어놓으시다!
(김현승·시인, 1913-1975)


+ 가난하여 - 杜春에게

가난하여 발 벗고 들에 나무를 줍기로소니
소년이여 너는
좋은 햇빛과 비로 사는 초목 모양
끝내 옳고 바르게 자라지라

설령 어버이의 자애가 모자랄지라도
병 같은 가난에 쥐어짜는
그의 피눈물에 염통을 대고
적은 짐승처럼 울음일랑 울음일랑 견디어라

어디나 어디나 떠나고 싶거들랑
가만히 휘파람 불며 흐르는 구름에 생각하라
진실로 사람에겐 무엇이 있어야 되고
인류의 큰 사랑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아아 빈한(貧寒)함이 아무리 아프고 추울지라도
유족함에 개같이 길드느니보다
가난한 별 아래 끝내 고개 바르게 들고
너는 세상의 쓰고 쓴 소금이 되라
(유치환·시인, 1908-1967)


+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자에게는 끝없는 해방과 평안을.
넉넉한 자에게는 담을 쌓고서도 잠 못 드는 불면을.
일인에게 이인분의 행복을 주시지 않는 하느님,
공평하신지고 만세 만세 하느님.
(나태주·시인, 1945-)


+ 가난도 잘만 갈고

가난도 잘만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된다.
하늘 나라의 풀이파리, 기와집, 하늘 나라의 솟을대문,
으리으리 얼비치는 보석이 된다.
누가 감히 우리의 빛나는 보석을 부끄럽다 이르겠는가!
(나태주·시인, 1945-)


+ 가난

가난은 싫었다
늘 제풀에 기가 죽어
숨어 사는 것만 같아
애달픈 입술만 깨물었다

기댈 곳도 없는데
올라가야 하는
언덕만 기다리고
숨차게 오르면
비탈길만 기다리고 있었다

쫓기듯 쫓기듯이
힘겹게 살아도
바라보며 혀 차는 소리가 싫었다

살내음마저 가난이었다

사계절의 온도보다
늘 더 추웠다
늘 배고프고
외로움이 가져다주는
서러움에 등골까지 시렸다

온 세상이
다 구멍이 뚫렸는지
뼛속까지 바람이 불어왔다

얼굴빛에서 가난이 감돌고
손등에선 가난이 터져 나왔다

가난은 나에게
눈물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은
궁핍이 길든 시간에도
소유를 고집하지 않는 따듯한 눈길이다
명에도 부도 가까이 근접하지 못하는
가장 낮은 자리
쉽게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비움
추위에 덧댄 표정도 온화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사소한 꿈에 감사할 수 있는 영혼이
바람 부는 행길에 나앉아 있어도
안락의 집을 짓지 않는 외로움
누추한 포장마차에서 한 잔의 소주로
허기를 이기고 하루를 접는 고요한 실어증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순결한 눈망울로 반기를 들지 않는
쓸쓸하고 고독한 이해의 우물이다
꼬깃거리는 가슴을 살며시 펴고
과욕하지 않는 편한 마음에
오로지 헛헛한 미소로 밤이면
그리워해야 할 하늘에 별을 헤고
하롱하롱 세월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고은영·시인, 1956-)


+ 가난한 자여

가난한 자여
갓 태어난 아가에게
아무도 가난을 말하지 않느니
그대를 순수라 부르리
하늘을 덮고 자는 이는
힘든 세상을 원망치 않고
빵 한 조각을 건네는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가난한 자의 헤진 일기장엔
한적한 시골 개울의 징검다리 건너
네 잎 클로버 추억이 있으나
배부른 자의 새 일기장엔
받을 자와 줄 자의 이름과 계산이
전깃줄처럼 엉켜 그를 혼동하느니
우리는 배냇저고리 한 벌에 떳떳하였으며
젖병에 담긴 우유 한 통으로 트림하였나니
가난이라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풍요는 부유라는 이름의 산만함이요
자연은 남의 것을 탐하지 않나니
가난은 순수라는 이름의 수고로움이다
(김순진·시인, 1961-)


+ 버릇된 가난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요즘은 남의 외투를 걸친 듯 더러 서툰 일이 생기고
뒤꿈치가 벗겨질 듯 미끄러운 신발
거리는 타관처럼 낯선 얼굴로 넘친다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마음 편하기로는 가난만한 것이 없는데
거기 질이 나서 모자람 없이 살았거늘
이제 새삼 무얼 바꾸랴
아무리 일러줘도 부자들은 모르는
아랫목 이불 깔린 구들장 같은
발 뻗고 기대기 은근하고 수더분한
그러다가 금세 눈앞이 젖어드는
그보다 좋은 세상 어디 있으랴만
나도 모르게 가난을 벗으려고 했나 보다
(이향아·시인, 1938-)


+ 가난한 사람

괴로운 자여 엎드려라.
괴롬 속에 엎드리면 좀 나아진다.
저기 저기 바위들도 잠자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엎드려 모습을 깎는다.
오늘도 내일도

가난한 자여 가난 속에 더욱 엎드려라.
그것은 조금 나아지는 일
모든 것이 그렇다.
귀뚜라미도 자세히 보면 엎드려서 울고
오, 나무를 찍을 때 도끼도 한 번쯤 나무 속에 서서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새파란 날을 엎드리며 떤다.
(신현정·시인, 1948-2009)


+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누구처럼 많이 챙겨
광나지 않아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게다가
허리까지 꼿꼿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제에 오지랖만 넓어
틈만 보면 기웃거리고
눈 부라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일렁일 때마다
딸린 가족들
앞세우지 않았다면
그냥 꺼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가난해서 건방지고
가난해서 청승맞고
가난해서 경솔하여 엄청 죄송합니다
높디높고 잘나디잘난 나리님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詩와 가난과 눈물

詩人은 가난하다
아니 가난해야 한단다

詩의 씨앗은
박토에서만 자라는 이상한 씨앗인가
다른 씨앗들은
옥토에서 잘 자라는데

배부른 돼지에게서 詩는 나오지 않나
화려한 저택에서 詩의 새싹은 말라버리나

詩에는 가난이 묻어야
詩에는 눈물이 절어야 하나

정녕 詩는 눈물로 쓰고
눈물로 읽어야 하는 것인가!
(이문조·시인)


+ 가난한 시인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와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이생진·시인, 1929-)


+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가난으로 나는

가난으로 나는
당신을 얻겠습니다

땅뙈기도 없는 새가
하늘을 다 누리듯이

볼품없는 민들레가
햇볕을 다 누리듯이

못생긴 물고기가
바다를 다 누리듯이

나에게는 당신만이
주인이게 하겠습니다

당신만 내 곁에
계셔주시면

세상의 온갖 보배도
내 것이오니

당신만 내게 있으면
내 가난함이 어찌
가난이겠습니까

가난으로 나는
온 하늘의 별을
사겠습니다

가난으로 나는
온 누리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홍수희·시인)


+ 가난을 위하여

속지 말자
결코 속지 말자
피와 눈물, 한숨이 섞이지 않은
책상 위
배부른 입에서 떨구는
윤기 나는 말과 글에 속지 말자
먼지구덩 속
갈라진 피엉킨 손톱
손가락 잘린 손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말과 글에 결코 속지 말자

가난을 사고 파는
철부지 알맹이 빠진
검불들
쓸데없는 말장난에 결코 속지 말자
일자무식
몸을 파는
야윈 살갗을 스치는
어려운 낱말들에
결코 속지 말자.
배고픔은 배고픈 사람만 아는 것
배부르고 기름진
멋스런 가난을 사고 파는
어려운 모국어에 결코 속지 말자.
(김교서·노동자 시인)


+ 가난한 유산

너희들에게
내가
죽어서
남길 유산은
부동산도 아니고
그 흔한
금은 보화들도 아니고
묵묵히 가난 속에도 함께하신
그분의 음성이 담긴
귀중한 성경책이요
(심홍섭·시인, 1960-)


+ 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한 글쟁이로
가장 노릇을 한다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세 끼의 밥이야
그럭저럭 마련하더라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빠듯한 살림살이에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꾸려온 지난 세월

월말이 되면
밀려드는 고지서 더미에
축 처지는 나의 어깨

아이들에게는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해도
이따금 새어나오는 한숨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마음 여린 아내는
또 얼마나 가슴 졸일까

그래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나의 등을 토닥이는
아내의 작고 따스한 손

그래,
내일이야 기약할 수 없더라도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살자

어느새 우뚝 자란 아이들이 있고
변함없이 착한 아내가 있으니
나도 이만하면 꽤 부자가 아닌가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출처 ; 좋은글 http://www.joungul.co.kr/poem/poem1/인생_61482.asp

 

 

 

출처 : Free as the wind
글쓴이 : 럭비공 원글보기
메모 : 가난해서 좋은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