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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세대 윤성택 시인을 찾아서 / 김순진

향기로운 재스민 2013. 3. 27. 07:11
신세대 인기 작가 윤성택 시인을 찾아서


체험에서 나오는 사고의 언어



윤성택 시인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에도 그랬듯이 그를 보면 준수한 외모만으로도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려니와 순수한 시골 냄새와 매끄러운 도시냄새가 복합되어 그의 마스크에선 선하면서도 당찬 모습이 배어 있다. 그가 쓰는 시는 시라기 보다는 삶의 관조력에서 나오는 언어며 젊은이의 시골서 나고 자란 체험에서 나오는 사고의 언어다.
유년으로부터 진한 삶에서 익힌 그의 사고방식은 마치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힘찬 감동과 안개비가 내리는 것 같은 미세함에서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준다.
우리가 그를 찾아간 곳은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법흥리 1652번지 헤이리 문화마을 사무국으로 그의 눈에는 대형프로젝트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문화마을 헤이리를 가다'를 취재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월간 시사문단 독자로 하여금 볼거리 읽을 거리를 제공한 윤성택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접해 보는 동시에, 신세대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경향이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시를 써 나갈 것인가. 또 왜 독자들은 그의 시를 주목하고 있는가를 짚어볼 계기로 삼고자 한다.


내 청춘은 가스통처럼 옮겨다녔다
비바람이 헬맷을 거세게 흘러갈 때
달리지 않는 것들은 미끄러운 시선 밖으로
줄기차게 밀려난다
색색을 늘어뜨린 네온간판들
번번이 골목골목으로 사라진다
길은 인연같이 뻗어와
막다른 곳으로 쓸쓸히 흩어지는 것을
가스통을 짊어진 좁은 골목길에서 보았다
헤드라이트가 빠르게 난간을 더듬자
빗줄기가 뇌관처럼 즐비하다
턱을 바싹 당긴 채
굉음으로 앞바퀴 들어 달리다보면
나를 앞서간 사랑까지 가닿을 수 있을까
흘깃, 덜컹거리는 가스통을 돌아본다
매여 있는 것은 늘 괴롭다
가끔씩 물보라로 튀어 오르는 잔돌멩이들
길의 방점처럼 귀퉁이에 찍힌다
일순 번개가 치울린다 몸을,
납작 엎드린다 발기된 엔진이 뜨겁다
生 위에 길들여진 길이 끝날지라도
점화되지 못한 청춘을 싣고
나는야 폭탄처럼 달린다

―청춘은 간다 [전문]『문학사상』 (2002년 6월호)


그는 세월은 길이고 내 몸은 그곳을 달릴 동체라고 말한다. 시간의 끝인 죽음에 다다르면 누구든 육체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그 길에서 스쳐갔던 쓸쓸한 인연의 궤적들, 터질 듯한 가스통을 배달 받았던 불안의 순간들. 그것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이를테면 나는 지금 막, 기어를 바꾸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어떤 템포로 가려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바꾸려는 기어는 고속기어가 아니라 문화기어요, 아이디어 기어라 생각된다. 어쩌면 그 기어는 양심의 기어나 도덕의 기어가 아닐까?
그간의 방황을 가스통처럼 옮겨다녔다고 말하는 작가는 폭탄처럼 무서운 방황을 접고 안정을 추구하려하지만 그러나 한 곳에 안주하는 것이 그가 추구하려는 안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된다. 그는 '매어 있는 것은 두렵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점화되지 못한 청춘을 싣고 폭탄처럼 달리며 자신의 뜻을 실현하려는 젊은이로서의 불타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 다리가 없는 사내는
바퀴 달린 판자 위에 엎드려 있다
그가 밀고 가는 삶에서는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동전들 굴욕의 또 다른 얼굴처럼
바구니에 들어 있다
손이라도 밟힐 때면
올려다보는 그의 아랫눈동자가 희번덕거린다
무리의 행인이 건널목을 건너자
그는 마스크를 내리고
누런 가래침을 뱉는다
그때마다 핏줄 같은 전선을 따라
고무 속에서 흔적 없는 다리가 꿈틀거린다

지친 배를 시멘트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세상을 품고 산다는 것일까
언젠가는 그의 꿈이 부화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밤마다
고무 속에서 완성 되가는
희고 단단한 다리로 生의 건널목을
건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한낮 노래를 읊조리며
가장 낮은 세상을 굽어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가 느릿느릿 자리를 옮길 때
쓸리는 바닥, 닳은 고무 틈새로
햇빛이 꺾여 들어가고 있다.

―흔적 [전문]『현대시학』(2002년 1월호)


다른 문예지의 평가에 따르면
"1연은 다리 없는 걸인에 대한 관찰기록장에 지나지 않는다. 제2연에 가서 시인은 몇 가지 상상을 해본다. 바퀴 달린 파자 위에 엎드려서 기어다니므로 "지친 배를 시멘트 바닥에 깔고" "세상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닌가. 흡사 닭이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 듯이 그의 꿈이 언젠가는 부화되는 것이 아닌가. 꿈속에서는 "희고 단단한 다리로 生의 건널목을/ 건너는" 그, 그래서 가장 낮은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닳은 고무 틈새로 햇빛이 꺾여 들어가고 있다는 마지막 행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비록 "흔적 없는 다리"이지만, 닳은 고무 틈새로 햇빛이 꺾여 들어가고 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햇빛도 꺾는다? 닳은 고무 틈새에서는 숙연함을 느껴 햇빛도 고개를 숙인다? 이 시를 살리는 것은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이다. 우리 주변에 많고 많은 사람과 사물 가운데 어떤 것을 시의 소재로 가져오기는 쉽지만 그것을 '시'로 만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체험과 상상력의 적절한 버무림이 이 시를 맛깔스럽게 만들었다."
―박명용, 최문자, 이은봉, 이승하 편. 《오늘의 좋은시》/ 『푸른사상』 (147쪽)

이 시에서 작가는 은유를 통한 참신한 이미지 형상화와 사람의 생명과 생활의 거리를 좁혀가면서 큰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에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한 장애자의 모습을 통해 축소지향적 공간에서 일어나, 없는 다리지만 움직이고 싶은 욕망을 표출하면서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의지를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냥 지나치는 암묵은 방종이지만 무엇인가를 느끼고 글로 암시하는 것은 희망이다.
산다는 것은 누구나 장애를 가지는 일이다. 말하자면 이혼도 장애이고 부모가 돌아가심도 장애며, 고향이 이북인 것도 장애고 학벌도 장애다. 눈으로 드러나는 장애만이 장애인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은 가장 큰 장애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장애자의 없는 다리 흔적을 통해 인간 승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얘야, 그릇은 담아내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인생살이란다

어머니의 손은 젖을대로 젖어서
좀처럼 마를 것 같지 않다
젖은 손을 맞잡고 문득 펴 보았을 때
빈 손바닥 강줄기로 흐르는 손금
긴 여행인 듯 패여 왔구나

접시들은 더러움을 나눠 가지며
조금씩 깨끗해진다
헹궈낸 접시를 마른 행주로 닦아내는
어머니의 잔손질, 햇살도 꺾여
차곡차곡 접시에 쌓인다
왜 어머니는 오래된 그릇을 버리지 못했을까
환한 잇몸의 그릇들
촘촘히 포개진다
나도 저 그릇처럼 닦아졌던가
말없이 어머니는 눈물 같은 물기만
정성스레 닦아낸다

그릇 하나 깨끗하게 찬장으로 올라간다


― 그릇에 관하여 [전문]『문학과 창작』(2002년 7월호)

윤성택 시인은 신세대 작가다. 그는 시인이기에 앞서 우리들의 애인이고 친구며, 동료이고 아들이다.
그가 어머니의 말씀 '얘야, 그릇은 담아내는 것 보다 비워내는 것이 인생살이란다.' 라는 인용을 통하여 철학적으로 접근해 감은 그가 성장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해 준다. 어머니의 젖은 손을 만져 보며 깊이 패인 손금에서 고마움을 읽어 낼 줄 아는 청년! 그런 청년상이야 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혜와 덕을 겸비한 우리들의 아들상이요 애인상이 아닌가?
어머니가 그릇들 닦아 촘촘히 포개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어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 닦아주었을 것이고 성공과 승리의 찬장에 올려놓고 싶어 하셨으리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 젊은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저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창밖을 보면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산동네의 밤『현대시학』(2002년 1월호)

이 시인은 자연과 감정을 적절히 섞어 시라는 거울 속에 침전시키고 때때로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승화해 간다. 서민들의 은행나무 열매처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삶, 좁디좁은 산동네 골목의 미로 같은 삶의 흔적에서 이정표를 찾고자 하는 젊은 시인의 눈에는 정겨움과 안타까움이 교차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고 싶어하고 희망의 등불을 켤 줄 아는 그이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희망으로 엮어 낼 줄 아는 시야를 가졌기에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홈페이지를 넘나들며 희망을 클릭하는 것이리라.


모퉁이 돌아 나온 소리,
아버지보다 먼저 도착했었네
결 굵은 앞바퀴가 땅 움켜쥐고 지나간 길, 언제나
멀미처럼 먼지 자욱한 비포장 도로였네
그 짐칸 올라타기도 했던 날들 어쩌면
덜컹덜컹 떨어질까 손에 땀나는 세월이었고
여태 그 진동 끝나지 않았네 막막한 시대가
계속될수록 나를 흔드는 이 울림, 느껴지네
밀짚모자와 걷어올린 종아리, 흙 묻은 고무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길
양손 벌려 손잡이 잡고 몸 수그린 채
항상 삶에 전투적이었던 운전법,

아버지!
그만 돌아오세요 이젠 어두워졌어요

나는 보네
울퉁불퉁한 것은 이제 바닥이 아닌 바퀴이어서
일방통행길 높은 음역으로
더듬거리듯 가고 있을 때
숨죽이며 따라가는
한때 속도가 전부였던 자동차 붉은 꼬리의 생각들,

나는 아직껏 아버지를 추월할 수 없네.

― 경운기를 따라가다 [전문] 『시와정신』겨울호 (2002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는 며칠 동안 이 시 생각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젊은 시인은 자동차로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경운기 뒤를 따라가며 아버지를 추월할 수 없다는 동양사상에 깊이 자리한 그의 효심을 보여주고 있다.
'밀짚모자와 걷어올린 종아리, 흙 묻은 고무신'을 볼 줄 아는 것도 그가 체험하고 보아온 것이고 아버지가 '양손 벌려 손잡이 잡고 몸 수그린 채 항상 삶에 전투적이었던 운전법'을 구사하신 것을 아는 것도 자식을 위해 죽을지 살지 모르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희생을 읽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첨단 컴퓨터나 헤이리 아트밸리 같은 매머드 프로젝트지만 그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뜨거운 가슴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원만한 가정교육과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호리호리한 큰 키에 준수한 외모로 보아서는 시보다는 랩이 흘러나오는 젊은 카페가 어울릴 것 같지만 그의 깊은 내면에서는 여름날 우물 깊은 곳에 매단 수박을 건져 올리는 것과 같은 신선함이 있다.
언어의 미적 수준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표현해서 감동을 줄 줄 아는 그의 부단 없는 자기 완성과 노력을 통하여 큰 시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시인의 탄생을 예감하면서 곧 시화집을 준비한다하니 자못 기대된다.

글 : 김순진 《시사문단》 편집국장




■ 윤성택 시인 프로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문학사상』 등단
헤이리 아트밸리 사무국 근무
현재 인터넷 한겨레 ‘마음의 시화‘ 연재중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 교수님이 소개한 윤성택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