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Mountain - Peter Weekers
치자꽃
김순진
팔천 원 주고 산 치자꽃이 만개해 온 집안이 향기롭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치자향 짙은 유년으로 달린다
시집보낸 메밀잠자리 멀리 못 날고 떨어졌다 치자
맡아놓은 새둥지에 새가 다 자라 날아갔다 치자
오디 따오다 넘어져 무릎을 깼다 치자
넘어져 잡은 물고기 다 떠내려갔다고 치자
채변봉투 못 담아와 친구의 똥 나눠 넀다고 치자
용의검사에 이빨을 안닦고 와 모래로 닦고 친구아버지 도장을 비틀어 찍어 갔다 치자
손 터져 손등에 핏물이 흐른다 치자
코 닦은 팔꿈치가 번질번질하다 치자
이 잡은 손톱이 빨갛다 치자
책 찢어 접은 딱지를 다 잃었다 치자
빤쓰 없이 고누하다 계집애에게 가랑이 사이를 들켰다 치자
마당가에서 유리구슬을 잃어버렸다고 치자
숨바꼭질에 술래만 걸렸다고 치자
보리밥만 먹어 방귀쟁이라 놀림 받았다 치자
애써 만든 모래성이 비에 떠내려갔다 치자
장마통에 개울 건너다가 고무신 한 짝 떠내려 보냈다 치자
무 뽑아먹다 주인한테 들켜 경을 쳤다 치자
옥수숫대 꺾어먹다 입술에서 피가 난다 치자
얼굴에 버짐 먹고 키가 가장 작았었다 치자
친구가 매일 같이 제 가방을 가져가라며 때렸다 치자
스케치북 한 장 얻어 주운 크레용 토막으로 그림을 그렸다 치자
육성회비 한 번 제때에 못 냈다고 치자
운동화 한 번 못 신고 졸업했다 치자
자장면 한 번 못먹어봤다 치자
썰매 만들다가 망치로 쳐 손톱이 까맣게죽었었다 치자
크리스마스날 뻥튀기 얻어먹으러 교회에 갔었다고 치자
불깡통 돌리다가 다우다잠바 다 태웠다 치자
대보름날 오곡밥 훔쳐 먹다 잡혔다 치자
연싸움에 져 날아간 연이 저수지에 빠졌다 치자
불장난하다 짚 낟가리 몽땅 태웠었다 치자
추억의 치자꽃
이제야 만개하고 있다
* 치자꽃 향기에 옛날을 회상해보면서 이 글을 쓰신 교수님을 존경하며...
문학공원 제 44회 스토리문학관 정기 시낭송회 엔솔로지 "밤비에 꽃잎 지고'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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