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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다리는 사람 없는데/ 오금자

향기로운 재스민 2013. 7. 6. 06:39

 

기다리는 사람 없는데/ 오금자

 

 

별도 달도 없는 캄캄한 숲

눈도 오지 않는 산은 더욱 적막해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외로움에

수화기 매만지다 놓아버렸네

 

기다리는 사람 없는데

누군가 전화 한 통 주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람은 어둠 속으로

 

그대 무덤에 전화기 하나 묻어놓았다면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것을

집 안팍 등불 모두 밝혀도

소리 없이 스며드는 검은 그림자

 

- 다음 카페「시와시와」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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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매년 10월2일 노인의 날에 그해 100세가 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청려장(靑藜杖) 수여식을 갖는다. ‘청려장’이란 명아주 풀로 만든 가볍고 단단한 지팡이로, 건강과 장수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장수노인에게 지팡이를 선물했다. 나이 50이 되어 자식이 부모에게 바치는 지팡이를 가장(家杖), 60세에 마을에서 주는 것을 향장(鄕杖), 70세 때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주는 것을 국장(國杖)이라 했으며, 80세가 된 노인에게 임금이 직접 하사한 지팡이를 조장(朝杖)이라 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지난해까지 청려장을 받은 노인은 1201명(남성 192명, 여성 1,009명)이다. 장수의 상징인 백세 이상 인구가 해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5,60대의 평균기대수명이 90세를 육박하는 현실에서 90세는 괄목할 장수의 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수명이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초롱초롱하게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며 사느냐이다. 심신의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속에 있다면 장수의 의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가 91세 된 할머니께서 펜으로 꼭꼭 눌러 쓴 시라고 하면 사정은 달라지리라. 오금자 할머니는 강원도 춘천의 외곽에 사시는 분으로 그 지역 이영춘 시인으로부터 시를 배운 인연의 고리로 지난 봄 계간「시와시와」창간호를 보내드렸는데, 책을 받고 꼼꼼히 잘 읽었다며 시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현금 1만원을 동봉한 감사의 편지를 편집실로 보내와 편집위원들을 감동시켰다. 이 경이로운 사건은 카페회원들 사이에도 큰 화제가 되어 몇몇은 정성으로 답장을 보냈고, 두어 명은 할머니 댁을 직접 방문하였다.

 

 그렇게 해서 할머님이 쓰신 시 두 편을 적어왔는데, 이 시는 그 가운데 한 편이다. 오금자 시인은 시뿐 아니라 그림도 배워 상당한 수준이고 작년엔 손자의 도움으로 마라톤에도 참가하셨다고 한다. 정년 없는 인생이란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 시인은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이 들수록 존재감이 가벼워지기 마련이지만 할머니는 전혀 아니었다. 올해는 그동안 쓴 시를 시집으로 묶을 계획이라고 한다. 오금자 시인은 적어도 10년 이상 세상과 의미 있는 접속을 계속할 것이다. 다만 환부 없는 통증이라고 하는 외로움만 이겨내신다면, ‘청려장’을 받으심은 물론 ‘시바다 도요’의 신화를 능가하고도 남으리라. 

 

 

다음은 오금자 시인의 '메밀꽃 순정'이란 제목의 다른 시다.

 

하얀 달빛 부서져

하얀 꽃이 피었나

 

물레방아 물보라가

메밀꽃이 되었나

 

돌고 도는 물레방아 하룻밤 풋사랑

한 많은 그 세월 피 맺힌 붉은 꽃대

 

그래도 가슴 속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한

영원한 내 사랑 메밀꽃 순정

 

 

권순진

 

 

You Are So Beautiful / Joe Cocker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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