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래 깔리는 앵두꽃잎이었으면
김순진
열일곱이 막 넘은 소년은
대장간 주인의 눈초리를 받으며
오함마질로 호미를 베려야만 했고
제너레다 공장에서 프레스공시다를 하다가
손가락 네 개가 잘려 퍼득이며 절망하는
한 마리의 푸른 물고기를 보았기에
그는 그 물을 떠나 학교로 향했다
소년은 순수와는 무관하게
목구멍에 풀칠해야 했으므로
개망초 순을 잘라 된장국을 끓여먹었고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비를 벌었기에
앵두꽃눈 날리는 걸 무심코 넘기며
엄마 없는 하늘에서
농약 잡수신 아버지를 둘춰 업고
신작로를 뛰어야만 했다
이제 나는 냉장고의 봉지 안에 든
누렇게 뜬 찬 푸성귀 같은 풀이 되었지만
다시 삑삐기풀이나 바랭이가 되고 싶다
열일곱 소년은 생활의 곤궁함에 비토했으며
앵두꽃 떨어짐에 슬퍼할 여가가 없었다
삑삐기풀을 따 입에 물고 숨을 당기면
삑삑삑 삑삐삑 삐비비비비
곡조 단순한 노래가 동산에 퍼지고
손뼉 사이에 바랭이풀잎을 넣어 숨을 몰아불면
뿌우욱 하는 소리에 덩달아 낮닭이 울었지
소년은 詩探이 왕성했으나 詩를 먹지 못하고
남의 집 담장에 달린 애호박을 훔치며 구차하였지만
이제라도 풀피리 불 삑삐기풀이거나 바랭이거나
질겅질겅 씹어 먹는 삘기였으면 해
무릎 아래 깔리는 앵두꽃잎이었으면 더 좋겠고
*<복어 화석> _ 김순진 시집에서
**작가의 일생을 그린 시인줄 알기에 다시 읽고 싶어서 올려본다
2013. 11. 20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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