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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아래 깔리는 앵두꽃잎이었으면/김순진

향기로운 재스민 2013. 11. 20.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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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아래 깔리는 앵두꽃잎이었으면

 

김순진

 

 

열일곱이 막 넘은 소년은

대장간 주인의 눈초리를 받으며

오함마질로 호미를 베려야만 했고

제너레다 공장에서 프레스공시다를 하다가

손가락 네 개가 잘려 퍼득이며 절망하는

한 마리의 푸른 물고기를 보았기에

그는 그 물을 떠나 학교로 향했다

소년은 순수와는 무관하게

목구멍에 풀칠해야 했으므로

개망초 순을 잘라 된장국을 끓여먹었고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비를 벌었기에

앵두꽃눈 날리는 걸 무심코 넘기며

엄마 없는 하늘에서

농약 잡수신 아버지를 둘춰 업고

신작로를 뛰어야만 했다

 

 

이제 나는 냉장고의 봉지 안에 든

누렇게 뜬 찬 푸성귀 같은 풀이 되었지만

다시 삑삐기풀이나 바랭이가 되고 싶다

열일곱 소년은 생활의 곤궁함에 비토했으며

앵두꽃 떨어짐에 슬퍼할 여가가 없었다

삑삐기풀을 따 입에 물고 숨을 당기면

삑삑삑 삑삐삑 삐비비비비

곡조 단순한 노래가 동산에 퍼지고

손뼉 사이에 바랭이풀잎을 넣어 숨을 몰아불면

뿌우욱 하는 소리에 덩달아 낮닭이 울었지

소년은 詩探이 왕성했으나 詩를 먹지 못하고

남의 집 담장에 달린 애호박을 훔치며 구차하였지만

이제라도 풀피리 불 삑삐기풀이거나 바랭이거나

질겅질겅 씹어 먹는 삘기였으면 해

무릎 아래 깔리는 앵두꽃잎이었으면 더 좋겠고

 

 

 

*<복어 화석> _ 김순진 시집에서

 

 

**작가의 일생을 그린 시인줄 알기에 다시 읽고 싶어서 올려본다

 

 

2013. 11. 20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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