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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장사람들/문모근

향기로운 재스민 2013. 12. 1. 11:40

 



 

  Dream Weaving _ Conni Ellisor

 

 

 

호계장사람들 

 

문모근

 

 

영하의 차가움을 몸으로 받으며

뜨슨한 김이 오르는 두부수레를 미는

장사치의 얼굴이 밝다.

하얀 두부는 찰랑거리며

얼음이 깔린 시장 갓길에서 차가워지고

농협 365코너에서 돈을 쥔 얼굴은 상기돼있다

얼음보다 딱딱한 고등어 위로 꼬챙이같은

햇살이 비치고 버석버석한 나물이 하늘을 향해 섰다.

콧김 입김으로 가득한 시장통에서

호주머니 잔돈을 센 김씨가 두부 한 모를 샀다.

모처럼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생각한

김씨의 얼굴이 밝다.

 

 

 

소피와 우거지를 넣고 끓인

선지국 구수한 냄새가 시장에 짙게 퍼질 때

꽁꽁 언 몸을 선지국 한 그릇으로 녹일 생각에

사람들은 쪼그려 앉은 시장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다.

끓는 기름 속으로 툭툭 던지는 오징어와

고구마, 닭강정 등은 흰 옷을 입은 채 셔플댄스를 추고 옆에는

티아라의 음악이 흘렀다.

습관적으로 펼쳐지는 시장은

달천동 이씨나 가대동 차씨, 상안동 고씨,

차일 엄씨와 고불개 영천댁이 자주 판을 벌렸고

부산이나 영주, 대구, 경주, 양산, 밀양에서도

작은 트럭을 몰고 좌판을 폈다.

한약재를 파는 김씨는 그래도 우리

토종약초가 제일 좋다며 큰소리를 쳤고

살얼음 낀 젓갈과 고추절임, 깻잎장아찌, 오징어무침 등을

취급하는 후덕한 아줌마 얼굴이 밝다.

 

 

오일 장터에 나선 장사치들과 종종종 좁은 길 따라

눈요기와 흥정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

 

 

천막을 들었다 놓는 바람을 등에 없고

연탄불에 올린 생선구이를 뒤집으며

어여 잡사바, 개안타, 추분데 하나 무바라,

이웃한 과자장수며 채소장수를 불러 모으는

생선장수와 더운 오뎅탕으로 갈증나는 추위를 달래는 사람들.

대장군이 북쪽에 있어 이거 북쪽에 두고 지내봐.

그라고 이거. 지갑에 넣고 다녀 그럼 좋아.

한해살이를 푼 부적같은 종이와 그림이 있는

카드를 주면서 좋은 세상을 기원하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선물을 받은 여자의

얼굴이 밝다.  어묵과 꼬치구이, 소시지구이,

떡볶이를 판매하는 사람은 모서리에 전을 차렸다.

학생들은 소시지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고.

 

 

샘, 안경 한번 닦고 가시죠.  세상이 다르게 보임다.

초롱한 눈으로 잡는 장사치에게 안경을 맡기고.

시장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바람을 맞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밝다.

 

 

 

『호계장사람들』  문모근 시집에서... 

 

 

시집 『사랑, 자유, 삶 그리고 나』

       『가슴에 기대고픈 사람이 어찌 없으랴』

       『새벽비』

울산문화예술공로상

『스토리문학』 편집위원

도서출판 시루의 대표  울림장학회 사무국장

 

 

2013. 12. 01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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