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원(果園)의 초봄
이 설 헌
볕바른 산방마루 끝에 서서, 잘 보이는 앞산
얼음덩이 듬성듬성 몇 겹의 산봉우리의 허리를 센다
길어진 해 그림자 밭고랑을 들어내고
서서히 말라버린 앞 뜰아래도 햇살이 옮겨 다니며
겨울 냄새를 말린다.
깔리는 봄빛, 구석에 앉아있어도 나른한 계절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뾰족뾰족 내속에 돋아나는 연둣빛 잎들이
내 몸과 마음 쑤시기 시작한다.
시를 덮어두고
겨우내 쉬고 있던 호맹이 굉이자루 소스랑
광 뚜껑을 열자 하품을 하고
일 년 사계 내 손의 건반이 되어주던 연장들.
길 건너 과원 집 새벽닭이 울기 시작해
한집 또 한집 온 동네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방문 열면 안개가 먼저 들어오고
햇살이 온 마을에 퍼지면 서둘러 과원으로 나간다.
사투리 무딘 앞집 박 씨 할매 단 호박씨 한줌
내 허드레 주머니에 넣어주지만
밭둑엔 해묵은 걸음더미에 연장이 익어가고
아직 과원은 고요하다.
이설헌 시인
문경출생. 2005년 『문학세계』, 2009년 『농민문학』 시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및 문경지부 회원. 시집 『주흘산 어머니』
* 장미, 당신이 안다는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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