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꽃

[스크랩]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법정

향기로운 재스민 2014. 5. 7. 06:06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법정

 

 

 떠나는 것을 불교적인 용어로 출가 또는 출진이라고 한다. 출가는 집에서 나온다는 뜻이고, 출진은 티끌에서 벗어난다는 것, 곧 욕심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어디로부터 떠나는가. 속박의 굴레에서 떠나고, 무뎌진 타성의 늪에서 떠나고, 집착하는 마음으로부터 떠난다. 이것이 곧 출가이다. 떠난다는 것은 곧 새롭게 만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남이 없다면 떠남도 무의미하다. 출가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크게 버림으로써 크게 얻을 수 있다. 크게 버리지 않고는 결코 크게 얻을 수 없다.

 

 승려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거듭 떨쳐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을 사는 일이다. 현재의 이 순간 속에 자신을 불태우는 것, 그것이 곧 출가자의 자세이다.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마지못한 삶, 순간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버리는 삶, 그것이 불행한 삶이다.

 

 꽃처럼 거듭거듭 피어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늘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즐겁게 살되 아무렇게나 살지 말아야 한다. 한 개인의 삶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 명상집『산에는 꽃이 피네』(동쪽나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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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출’은 ‘집 나감’을 뜻하고, ‘출가’는 ‘집 떠남’을 가리킨다. 불교나 가톨릭에서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을 위해 집착과 타성의 집에서 훨훨 떨쳐 나오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자기 의지와 선택에 의해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방식이다. 법정스님은 생과 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출가정신이라고 말하며, 승려뿐 아니라 진정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출가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게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삶을 변화시켜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지금처럼 그 ‘출가정신’이 번쩍 절실하게 와 닿을 때가 또 있었을까.

 

 출가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육친출가(肉親出家)로 가족과의 결별이고, 둘째는 오온출가(五蘊出家)인데 이는 일체의 욕망으로부터 떠남을 의미한다. 셋째는 법계출가(法界出家)로 번뇌와 업보, 무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육친을 떠난다는 것은 애욕에 사로잡힌 보통사람으로서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출가가 온갖 세속적 욕망의 삶을 포기하는 것일 진데 떠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출가의 의미는 크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을 뜻하는 불교용어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자기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이기주의는 견고해진다. 아무리 육친출가를 했더라도 자기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출가는 형식적이 된다. 법계출가란 진리의 세계에서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실로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진리가 있다. 모든 진리는 그 나름의 논리와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독단과 편견은 자칫하면 자신과 이웃을 오류와 파멸의 시궁창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출가자는 이 독단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는 말하자면 이데올로기나 진영논리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보통사람으로서 이러한 출가를 감행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귀하게 새겨듣고 늘 염두에 두어야할 정신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숱한 좋은 말을 들어 왔다. 그 말만 잘 들어도 누구나 성인이 되고도 남았을 터이나 실제의 삶에 이어지지 않은 말은 늘 공허했다. 그 어떤 가르침도 삶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법정은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을 사는 일’이라며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을 자기답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자기 자신’이란 독립된 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관계 속에 얽혀 있는 존재인 것이다.

 

 깨달음의 궁극은 자기로부터 시작해 세상과 타인에게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삶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 스님이 전하는 깨우침의 말씀은 그가 없는 세상에서 더욱 귀한 빛을 발한다. 온갖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출가정신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길은 아닐까.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 평화로워질 것이고, 많이 내려놓으면 많이 평화로워질 것이며, 완전히 내려놓으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매 순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무얼 위해 살아야하며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스님의 말씀으로 다시 시작한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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