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꽃

[스크랩]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향기로운 재스민 2014. 3. 16. 19:50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생일』(비채, 2006)

......................................................................

 

 비록 메아리 없는 짝사랑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성숙의 첩경이요 사랑의 으뜸이라고 힘주어 말했던 고 장영희 교수. 그녀는 목발에 의지한 불편함보다 암과 싸우는 고단한 일상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랑 없는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랑에 익숙치 않는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세요!" 그녀의 마음에 기대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다시 읽는다.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여성시인 디킨슨은 명문가인 청교도 가정에서 자랐으나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를 피하면서 솔직 순수한 성찰에 비중을 두고 독신의 삶을 외롭게 살다간 시인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건강문제로 학업을 중단하고는 집에 틀어박혀 오로지 독서와 시 쓰기에만 전념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막 사랑에 눈뜰 무렵 갑자기 눈이 나빠졌고 치료를 받았지만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어머니가 병으로 거동을 못하자 곁에서 간호하기 바빴고 그 와중에 아버지가 죽자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디킨슨은 44세 이후 일체 바깥출입을 삼간 채 고독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정원 가꾸기, 요리, 편지 쓰기,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같이 놀아주는 정도였다.

 

 이후 시련은 계속되었다. 주기적인 고통과 부종이 동반되는 신장염을 앓았으며, 그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죽어갔고 52세 되던 해에는 어머니마저 별세했다. 디킨슨은 식구와 친지들이 자신의 병에 옮아 죽는 게 아닌지 의심하며 괴로워했다. 그녀는 더욱 바깥출입을 삼가고 외롭게 살다가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교회 장례식 대신 집에서 장례를 치루라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시신에다 평소 좋아하던 흰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에 바이올렛 핀을 꽂아주었다고 한다.

 

 생전에 친구들이 시집 출판을 권했지만 디킨슨은 겨우 10편만 발표했다. 그녀의 여동생이 죽은 언니의 방에서 원고뭉치를 찾아냈다. 디킨슨은 손으로 책자를 묶어 시를 보관했는데 그런 소책자가 자그마치 40권이나 되었다. 어떤 것은 연필로 썼고 제목이 없는 시와 미완의 시도 많았다. 이 원고들은 후에 디킨슨이 짝사랑한 ‘토마스 히긴슨’의 편집에 의해 시리즈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매우 지적이고 자유주의자이며 강한 개성의 디킨슨은 험난한 현실에서 느꼈던 갈등과 좌절 속에서도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아픈 마음 하나 달래려고 틈틈이 시를 썼다. 훗날 그녀의 시를 통해 누군가 함께 돋우어가는 삶을 살고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가 둥지로 되돌아가기도 하였을 것이니 정녕 헛되이 살다간 것은 아니리라. 그와는 삶의 방식이 많이 달랐지만 장영희 교수도 물론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장미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