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늘

동백 씹는 남자/문인수

향기로운 재스민 2014. 2. 26. 11:41

 

 

동백 씹는 남자

 

문인수

 

 

한 이레 일찍 온 셈이 되어버렸다.

남해 이 섬엔 아직 동백이 활짝 피지 않았다.

완전 헛걸음했다. 꽃샘바람이 차다.

 

일행 중 좌장께서

이제 겨우 눈 뜬, 쬐끄맣게 핀 동백 한 송이를 꺾어 들고 다녔다.

들여다보고, 향기 맡고, 어린

속잠지 만한 것에 혀 대보고 하더니

어, 먹었다. 아작아작아작 씹어 꿀꺽, 삼켰다.

나도, 둘러앉은 일행도 낄낄낄 웃었다.

동백독이 올랐는지 그의 안색이, 잠시

붉어졌다.

 

“선생님, 방금 걔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거든요.”

“알아요.”

“그럼, 신문사에 제보해도 될까요?”

“이왕이면 대서특필케 해주시오.”

 

한 장면,

즉흥 퍼포먼스가 수평선 멀리 넘어가고 여러 섬들이

주먹만 한 활자처럼 시커멓게 몰려와 박히는 뱃길이여

봄이 오는 사태만큼 사실 큰 사건은 없다.

 

지금은 쓸쓸한 춘궁, 그래도 봄날은 올 것이며

씹어 먹어도 먹어도

굽은 등 떠밀며 또 봄날은 갈 것이다.

 

 

ㅡ출처 : 시집『배꼽』(창비,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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