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늘

오늘 하루/공영구

향기로운 재스민 2013. 5. 10. 21:06

오늘 하루

 

-공영구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니

밤하늘에 별이 별 것처럼 왔다 갔다 한다

별 것이 다 잠을 설치게 하네

속 시끄럽게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행복의 미소가 눈언저리까지 어린다

 

 

 

 

 

반지

 

-공영구

 

 

언제부터인가

사랑으로 태어나

화려한 징표로만 살기로 했다

많은 여인의 눈물이 되고

많은 사내들의 아픔이 되어

사랑과 증오를 한 고리로 잇고는

반짝이는 광채 앞에서

많은 돌들은 침묵으로 대신하며

갈라진 동상처럼

아픔을 씹는다.

동그란 그늘 따라

어설픈 사각의 미소 지으며

별처럼 당당했을 모습에

항상 가까이 하기를 원했다

보이지 않는 님의 입김

손가락에 보오얀 흔적만 남긴 채

오늘도 둥굴게 둥굴게 살아가려는

애절한 멍에의 그림자 되어

어느덧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져

거울 앞에 쌓인다.

 

 

 

 

개떡

 

-공영구

 

 

춘향전을 읽고 있을 때

이사 온 아래층에서

팥시루떡 가져왔다

이몽룡 떡이 춘향이라 생각했는데

변학도 뺏어 먹으려 한다

떡 한 입 먹으면서 계속 읽었다

암행어사 출도야!

변학도 또 떡 되었다

백성들이 그 떡 보고 즐거워한다

지난 날, 떡 된 추억

되살아 날 때 마다 늘 부끄러웠다

생각할수록 분통 터졌다

왠지 이제 와서 만인의 떡이 되고 싶다

딱 한번이라도

뭇사람 떡매 감싸줄 개떡 같은...

 

 

 

 

 

 

노을

 

-공영구

 

 

서녘하늘에 노을진다

하늘이 옷 다 벗고

바지만 발에 걸치고 씩- 웃는데

나도 웃어주다가 물웅덩이에 빠졌다

내 오른발과 함께 놀도 빠졌는데

지붕의 태양초마저 다 가져갔다

 

 

 

저 산 너머

 

-공영구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길래

늘 아버지는 저 산 바라보시며 담배를 피웠을까

이따금 술 드실 때도 고추나 멸치보다

저 산을 더 많이 씹으시며

한 병 다 비우셨다

늘 궁금하여

고향 가는 길에 산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저 그런 흔한 산이라는 생각뿐

고향집 들어선 나도

어느덧

저 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편안하고

누구보다 더 만만하고 믿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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