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늘

[스크랩] 단추를 풀면서/ 이후재

향기로운 재스민 2012. 6. 3. 19:22

 

 

  

단추를 풀면서/ 이후재

 

 

집에 돌아와 저고리 단추를 풀며

가슴 묻혀있던 오늘 하루를 펼쳐본다

주례시간에 늦을까 동동거렸던 발자국이

지금도 가슴을 요동치며 걸어오고 있다

오늘 결혼한 신혼부부 한 쌍

원만히 첫 단추를 꿰었으니

둘이 합하여 나머지 단추를 원만히 꿰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출근을 바란다

한 번 잘못 꿰어지면

단추처럼 어긋나는 세상이지만

때론 단추를 풀고 앉아

허심탄회한 이야기로 날을 새울 때도 있는 법

황홀한 결혼일지라도

함부로 단추를 풀지 마라

신발 끈을 잘 매야

거친 산길이 편안해지듯

그 비밀의 정원을 열려거든

가슴의 고동소리 들릴 때까지

첫 단추를 위해 기도해야 하리

 

- 시집 『거북바위가 묻는다』(동학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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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결혼한 신혼부부 한 쌍, 그들은 ‘원만히 첫 단추를 꿰었’다고 보아지나, 나의 첫 주례는 제대로 되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들 합니다, 눈으로 사랑과 믿음과 존경을 담아서 천천히 경례’ 맞절을 시키고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낭독까지 별 무리 없이 마쳤으니 원만하게 결혼은 성립된 셈인데 문제는 역시 주례사였다.

 

 요즘은 주례 없는 결혼식도 더러 있는 모양이고 또 주례사는 짧을수록 좋다고 한다. 좋은 주례사인가는 모르겠는데, 역대 가장 짧은 주례사를 한분이 백범 김구 선생이라고 한다.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후배의 아들 결혼식에서 ‘너를 보니 네 아비 생각이 난다. 부디 잘 살아라’ 누군가 시간을 재어보니 딱 5초가 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비가 멀쩡하고 건재한데 백범의 주례사를 흉내 낼 순 없는 노릇인지라 대신 수월하게 5분 정도 때울 요량으로 축하와 덕담의 의미를 담은 시 두 편을 미리 프린트하여 준비해 갔다. 분위기가 먹힐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방법이 그래도 실수가 적겠다 싶은 통빡도 작용했던 것이다. 후딱 읽고 그 사이에 짧은 멘트를 끼워 넣었다.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 앤드류 매투스의 말을 부부관계에도 응용하여 ‘결혼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상형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기왕에 선택된 배필을 긍정하고 좋아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나로서는 뒤늦게 깨달은 반면교사의 입장에서 말해주었다.

 

 아울러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행복은 곱하고, 사랑은 나누자는 말을 덧붙인 뒤, 아파치인디언의 결혼축시를 들려주는 것으로 주례사를 마쳤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로 시작하여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인디언 추장처럼 주문을 외쳤다.

 

 단상에서 내려오니 연습을 좀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고, 만약 다음에 기회가 또 있다면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막연한 용기 같은 것도 생겼다. ‘단추를 풀면서’는 KBS아나운서 출신인 이후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가운데 있는 시다. 결혼의 의미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첫 단추’에 비유했다. 결혼은 단추를 꿰고 풀고 신발 끈을 매는 등의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얼마나 자세가 진중하고 경건한가에 따라 그 성공의 여부가 달려있다는 베테랑 주례의 말씀이시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어떤 주례사인지 궁금했었답니다 이건 이후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