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늘

[스크랩] <작품집 깊이 읽기> 조명선 시조집 <하얀 몸살> 계간 <시하늘> 2011년 가을호

향기로운 재스민 2012. 5. 23. 07:05

 

<작품집 깊이 읽기> 조명선 시조집 <하얀 몸살> 계간 <시하늘> 2011년 가을호

 

카르페 디엠(carpe diem) 권순진 엮음

 

 시의 원류가 노래였음을 상기한다면 정형의 율격으로 우리민족의 고유한 삶을 노래한 시조는 시와 노래의 가장 가까운 원형이라 해도 좋겠다. 지금껏 옛시조란 옛 사람들의 관념과 풍류를 노래한 것이고, 현대시조 또한 그 연장선에서 낭만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의 장르라는 인식이 넓게 퍼졌다. 하지만 현대시조에서의 서정의 폭은 변모하는 세계 질서와 괘를 같이 하며 꾸준히 그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모든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면서 개인적 삶의 구조적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시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조명선 시인은 1993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했으니 그의 시조 이력은 20년 가까이나 된다. 지난 해 낸 시집『하얀 몸살』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쓴 작품들을 망라한 것이니만큼 주변의 기대와 문단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약 6년 전 조명선 시인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시는 보이지 않고 사람만 눈에 들어왔다. 이런 도시적인 젊은 여성도 시조를 좋아하고 시조를 쓸 수 있나 싶었다. 그때만 해도 시조는 음풍농월하는 옛 것이란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던 터라 솔직히 조금 의외였고 낯설었다.

 

 전통의 제한된 텃밭에서 현대의 복잡다기한 삶과 정서의 결을 담아낸다는 게 우선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일정한 틀의 구속에서 도리어 짜릿한 자유의 쾌감을 맛보고 즐기는 이들이 바로 시조시인임을 알았다. 조명선 시인 역시 그러했다. 전통과 관습의 굴레를 수락하면서 거기서 깔끔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시조이기 전에 시이어야 하고 그걸 다시 시조의 형식으로 단속해 시를 짓는 행위야말로 창조적 멋과 맛의 예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더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봉쇄당한 느낌도 간간이 든다. 시인의 모든 작품이 나름으로는 ‘하얀 몸살’로 수없이 이불께나 뒤척였을 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좀 더 이례적이고 자극적인 일탈을 원하고 부추기는 듯하다. 대놓고 과감한 몸짓을 권유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젊은 여성 시조시인이 나아가고 개척해야할 자리라고 본 것이고, 조명선 시인의 역량이라면 충분히 그곳에 똬리를 털 수 있으리란 판단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포착된 내밀한 움직임과 조짐에서도 그 가능성이 엿보인다.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정체성을 살려내고 있는 조명선 시인이지만 리얼리티의 심도를 더하는 일은 또 다른 과제임이 분명하다. 옛 시조처럼 미풍양속에 순종할 필요와 당위, 사랑의 표현에 옹색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황진이 이전에 머물면서 가까스로 눈치 봐가며 사랑을 노래할 일은 더더구나 없다. 얼마 전 해설을 쓴 문무학 시인도 조명선 시인에게 좀 더 야해지라고 공개석상에서 권유하는 걸 들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카르페 디엠(오늘을 잡아라)’을 건배구호로 삼아야할 것이다.

 

 우리에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했던 말로 잘 알려진 이 라틴어는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되었다. 가능할 때 즐기라는 뜻의 이 말은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때 동서고금의 모든 문학에 편재하는 모티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쾌락주의적 권고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머뭇거리며 흘려보내기엔 너무나 짧은 생이기에 볼 수 있을 때 꽃도 보는 것이고, 딸 수 있을 때 열매도 따자는 것이다. 아직 누릴 수 있을 때 사랑을 구가하며 이를 '찐하게' 노래하라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

 

 

아직도 얼굴 붉히는

비탈 숲 시월의 나무

 

말없이 잎 떨구고

부대끼며 썩어가도

 

빛나는 그 속의 상처 다른 손을 잡습니다.

 

더러, 쉬 변하는

마음바닥 쓸어내리며

 

헤어진 담 모퉁이에

긴 그림자 숨기고

 

눈부신 유혹의 소문 또 다시 눈길 끕니다.

 

흔들리는 나무가

고마울 때 있습니다.

 

떨치지 못한 절망이

황홀할 때 있습니다.

가지만 남아 있어도 당당한 나무처럼 <시월의 나무>

 

 

피멍든 간절함도

상처 깊은 경계도

아무 가슴에나 휘어져 앙탈 한번 오지다

꽃 점은

그 가슴에 번져

울다, 울다 각혈하는

 

바람이 훑고 간 자리

눈발도 다녀간다.

견딤은 난장 치는 그 속만을 품는 것

꽃 같은

저 낙관으로

속 깊은

떨림으로 <홍매화>

 

 

발길에 차이는 들꽃이 되더라도

길가나 마당가에 잡풀이 되더라도

꽃가루

분분 날리는

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

 

그곳이 어디든 꽃잎과 꽃잎 사이

멍울진 그대 가슴 이유 없이 덮어주는

꽃 되어

그늘이 되어

속속들이 피어나는…

 

지쳐서 등 돌리더라도 햇빛이 그러하듯

때맞춰 피는 것이 매번 쑥스럽지만

후두두

지고 말더라도

피는 일은 절실하다. <피우고 싶다>

 

 

신명난

화냥기로

가슴 후리는 바람

 

달아 오른

한 치 밖 애증

곱게도 삭히면서

 

맺혔던

고 하나 풀고

 

돌아가자 길 튼다. <외출>

 

 

먼 시간의 흔적은 선 채로 돌이 되어

꿈틀꿈틀 숨 쉴 때마다 등뼈를 곧추세우고

바람은

목젖을 떨며

신의 멱살 흔든다.

 

그쯤에서 당신의 땅을 깊이깊이 새기며

거대한 욕망으로 일어나는 근질거림은

허공에

한 획을 긋는

절정으로 몰아친다.

 

부활을 꿈꾸며 출구 찾아 떠나는

그리하여, 오랜 믿음 캄캄하게 빛나고

 

 

각주를 달고

새 경전을 채우는 일이 <고인돌>

 

 

책갈피에 마른 이름 옆구리를 적신다.

낡은 문장 뒤로 슬쩍 풀린 긴 사랑

할 말이 캄캄 남아도 들어줄 귀가 없다.

억지로 웃고 지울 일 돌아보지 못하는데

뭉툭 잘린 사랑이라 조용하면 또 좋으련만

어쩌다

받아 쥔 오늘

무릎 치며 숨는다.

 

비웃듯 겉돌아도 모서리 곧추서서

떠나가라 몸부림치다 떠나가라 매달린다.

이별은 어제도 오늘도 내 연기가 아니란 듯

행간을 옮길 때마다 숨 가쁘게 달려오다

또 한 장 넘기면 버둥대는 휑한 바람

다음 장

어디쯤에선

벌떡 일어나 덫이 된다. <책 읽다-오래된 기억>

 

 

사랑이 떠난 뒤 그리고 사랑하기까지

불 지르고 싶은 몸짓 모욕처럼 처박혀

또 다시 휘청대느냐!

하얀 몸살 앓는 너

 

그 깊은 음모도 썰물처럼 애절하여

 

바람의 목청으로 내 발목을 잡더니

은발을 휘날리느냐!

그 꼿꼿한 목 끝에 <갈대>

 

 

<시인의 말>

 

그래도 사랑한다

 

길도 인생도 서두르지 않는 것이 진리라면, 앞으로만 나아가기보다 옆도, 뒤도 살필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정직과 진심이 통하는 시,

그렇다. 나는 나의 시가 보이는 그대로 진솔하길 바랄 뿐이다. 그것조차 안 될 때가 많아 서운하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지인들이 묻길 “시조는 좀 그렇고 그렇지 않느냐? 그 고리타분한 시조를 세련된 그대가 할 장르가 맞느냐고”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시조를 선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얕은 대화로 이쯤 되면 ‘너와 나의 속살만 보지 말고 나의 시속에 있는 속살도 봐 달라.’ 말할 때도 되었는데. 극복해야 할 것이 많아서인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정말이지, 펄떡이는 고기를 그렸다고 자부했는데 천장에 매달린 굴비가 되고, 정물화가 되고, 풍경화가 되어 움직임 없는 시로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 있지만, 나의 시가 푸닥거리처럼 숨결을 넣어주고 스며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윽하게 놓이기를 희망한다. 단번에 차고 올라오는 시가 거품 없는 감동을 주지만, 덧대고 덧대다 보면 그윽하다는 것은 끌어안을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것일 거다.

 

민얼굴 미안해서 가는 눈길 거둘 때 있습니다

날 풀리면 함부로 흔들리던 꽃 시절도

고단한 상처로부터 너를 믿고 내딛습니다

 

그간 남들이 말하는 장족의 발전은 없었지만, 또 바란다. 양적인 풍요 속에 봐야 할 시로서 볼 줄도 알고, 우리 시의 품 안에서 시가 주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눈 맞출 줄도 알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이미 시인이 된 내가 아니라 꽤 지나서라도 시인이 되어 가는 중인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욕심일까.

 

 

<조명선>

경북 영천출생, 1993년‘월간 문학’등단

대구시조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

현재 대구광역시 교육과학연구원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조명선 시인을 더 알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