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봄.....권순진
봄은 말랑한 속살에 돋는 솜털같이 소리도 소문도 없이 다가와
몸의 둘레를 싼다 독기 품은 세퍼드 짖는 소리도 잦아들고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주행하던 패트롤카 역시 근위병의 보행처럼
속도를 팍 줄였다 늘 이월의 끝은 말랑함 봄을 위하여 이틀쯤은
빼먹고 서둘러 막을 내리는데 겨울 채무를 정리하고 봄을 인출하려는
사람들로 은행은 북적거렸다
은행 앞 재래시장 난전에는 냉이, 달래, 쑥, 취나물, 톳나물, 씀바귀,
원추리, 고들빼기, 쇠비름, 더덕, 두릅 대개는 비닐 아래서 자란
것들일 테지만 더러 언 땅을 용기 있게 뚫고 나온 노지산은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삼월로 넘어가는 길목의 바람이 밀사의
거동처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가야할 곳에 머물면 연두의
입질이 시작되고 마침내 강은 긴 수액의 흐름으로 바뀐다
어정쩡하게 얼었던 강물은 오래전 한때의 스케이트 칼날을 추억하며
스스로 몸을 풀며 미끄러져가고 강변의 사람들은 고무줄놀이 하는
아이들의 리듬으로 뛰어다니거나 조선여인의 땅에 닿지 않는
걸음걸이로 봄을 사색하기도 한다
<재 41회 스토리문학관 정기시낭송회 엔솔로지 에서>
맛있게 읽는 시 1 권순진 엮음이 있음
2012. 3. 27 향기로운 쟈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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