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씹는 남자
문인수
한 이레 일찍 온 셈이 되어버렸다.
남해 이 섬엔 아직 동백이 활짝 피지 않았다.
완전 헛걸음했다. 꽃샘바람이 차다.
일행 중 좌장께서
이제 겨우 눈 뜬, 쬐끄맣게 핀 동백 한 송이를 꺾어 들고 다녔다.
들여다보고, 향기 맡고, 어린
속잠지 만한 것에 혀 대보고 하더니
어, 먹었다. 아작아작아작 씹어 꿀꺽, 삼켰다.
나도, 둘러앉은 일행도 낄낄낄 웃었다.
동백독이 올랐는지 그의 안색이, 잠시
붉어졌다.
“선생님, 방금 걔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거든요.”
“알아요.”
“그럼, 신문사에 제보해도 될까요?”
“이왕이면 대서특필케 해주시오.”
한 장면,
즉흥 퍼포먼스가 수평선 멀리 넘어가고 여러 섬들이
주먹만 한 활자처럼 시커멓게 몰려와 박히는 뱃길이여
봄이 오는 사태만큼 사실 큰 사건은 없다.
지금은 쓸쓸한 춘궁, 그래도 봄날은 올 것이며
씹어 먹어도 먹어도
굽은 등 떠밀며 또 봄날은 갈 것이다.
ㅡ출처 : 시집『배꼽』(창비, 2008) ---------------------------------------
'시 하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 하나의 부탁/김영철 (0) | 2015.02.05 |
---|---|
30cm 박지웅 (0) | 2015.02.02 |
오늘 하루/공영구 (0) | 2013.05.10 |
[스크랩] 그 ㄹ ㅣ움으로... (0) | 2012.07.05 |
그리움.....안영애 (0) | 2012.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