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시인 김초혜가 손자 세대에게 전하는 이야기

향기로운 재스민 2014. 7. 15. 11:20

시인 김초혜가 손자 세대에게 전하는 이야기 여성중앙 | 입력 2014.07.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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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책을 가까이해라,
손해 보는 삶이 행복한 인생이다
시인 김초혜가 손자 세대에게


할머니가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매일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트릴 새라, 평범하면서 뜻깊은 인생의 지혜를 꾹꾹 눌러 담았다. 겸손하고, 정직하고, 인내하고, 배려하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은 가보로 남길 만하다.

사랑하는 재면아!

어제 한 일의 결과는 오늘 나타나고, 오늘 한 일의 결과는 반드시 내일 나타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나날이 내가 가야 할 길인데, 어제 빈둥거리고 게으름을 피웠으면 오늘은 어제의 일까지 더해져 숨 가쁘게 뛰어야 하지만, 오늘 할 일을 오늘 다 하면 내일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새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니겠니. 매일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아주 쉬운 일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교훈이 수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게 아니겠니. 꾸준히, 성실하게, 오늘 일은 꼭 오늘 하기 바란다.

시인 김초혜가 손자 재면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김초혜는 소설가 조정래의 부인이기도 하다. 부부 사이에는 외아들이 있고 그의 큰아들이 바로 재면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애면글면하게 하는 주인공이다.

그녀는 200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한 통씩 손자에게 편지를 썼다. 제주도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어김없이 그 날분의 편지를 써 내려갔다.

붉은색 가죽 노트 위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편지는 1년 후 정확하게 다섯 권이 되었다. 그녀는 그 가죽 노트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지난해 손자의 중학교 입학 선물로 내어놓았다. 편지를 썼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재면은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녀는 "문학 하는 할머니로서 본성적이고 감성적인 사랑만으로는 마음이 차지 않아서 손자가 균형 잡힌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그녀는 손자에게 쓴 365통의 편지를 최근 『행복이』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책에는 '독서와 사색에 끝없이 시간을 투자하라' '곤경에 처한 사람이나 실의에 빠진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도록 해라' '다른 사람의 험담을 들었을 때 함께 가담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자세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다.

어느 구절에서는 손자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가령 "행여 잠을 잘 때 꿈도 꾸지 마라. 깊은 잠을 방해하는 꿈이 너를 피곤하게 할까 봐 걱정이다"라는 대목이나, "할아버지가 너를 더할 수 없이 사랑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더러 단호하신 면이 있어 네가 할아버지를 무서워하거나 멀리할까 봐 할머니는 걱정이다.

'엄하긴 하나 무섭지 않고 다정다감한 할아버지, 그리고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할아버지'로 네가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하는 대목이 그렇다. 어느 날은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밤이 되어 잠을 자는 할머니를 슬퍼하지 말아라. 이 세상에서 재면이를 제일로 사랑한 할머니가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재면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믿거라. 재면이 마음에 슬픔이 고일까 봐 죽음은 깊은 잠일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는 것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은 명언이다.

"제가 중학교 1학년 입학할 때 오빠에게 선물 받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떠올리며 손자에게 편지 쓸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독본』 또한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책상 위에 놓아두고 제가 지혜를 구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제는 오래되어서 표지도 다 떨어지고 종이도 닳아 보기가 어렵게 됐지만 말입니다. 제가 노트를 특별히 맞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표지를 가죽으로 하고 내지도 튼튼한 것으로 했습니다. 손자가 오래 두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으로서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써두었으니 매년 해가 바뀌면 다시 읽도록 해라. 그리고 나중에 결혼해서 나를 증조할머니라고 부를 자식이 생기거든 입학식 선물로 이 책을 주어라."

노년에게 손자는 하늘이 준 마지막 삶의 선물
2008년 한 해 동안 큰손자 재면에게 썼던 편지를 책으로 묶으셨습니다. 6년 전 편지를 이제야 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손자가 중학교 입학을 하면 주려고 머릿속에 생각해두었다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써놓으려고 미리 썼던 것입니다. 지난해 선물을 하고 나서 이것을 책으로 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손자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습니다.

속이 깊은 아이라서 저는 그 애 말에 무조건입니다. 1년이 지난 후 지나가는 말로 다시 물으니 한참을 생각하고는 "원본은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 책 내세요" 해서 금년에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조정래·김초혜 선생님 집안에서 편지 쓰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정래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편지가 가정 교육의 원천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편지가 주는 이로움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집은 아이들이 입학할 때, 졸업할 때, 생일날, 어버이날은 물론이고 새해 덕담도 편지로 주고받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말은 우리 인간의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7% 내지 8%밖에 표현하지 못한다고 하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얼마나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인가를 항상 느끼며 삽니다. 그 소리 언어의 부족함과 한계를 극복해서 자기 마음의 깊은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이 문자 언어의 효과입니다.

그래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그리고 가족 간의 정을 더 깊게 해줍니다. 부수적인 것이 있다면 자기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는 문장 공부가 되는 것이지요.

이 편지들의 수취인인 재면이 어떤 아이인지 궁금합니다

두 돌이 되기 전부터 표 나게 영특하고 총명한 것을 제 어미 애비는 알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매일매일 감탄과 기쁨으로 날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퍼즐 맞추기를 시작하면서 100쪽이 넘는 것, 200쪽이 넘는 것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했는데, 우리가 더듬거리는 것을 보면서 "모서리는 모서리끼리" 하고 힌트를 주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집중력이 대단해서 다 맞출 때까지 잠도 자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또 언어 구축력이 대단해서 하나의 언어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춤추는 언니를 보면 '춤언니'라고 하고, 빵집에 가면 '빵언니', 식당에 가면 '밥언니'라고 해서 소설가인 할아버지를 엄청 기쁘게 하고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면서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아이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특한 것은 덕성을 갖춘 점입니다. 회장을 맡았던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소풍을 가서 조손 가정의 아이를 따로 챙겨 제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가 하면, 고학년 때는 왕따 당하는 여자애를 선생님이 일부러 짝을 맞춰 주었는데 그 사실을 다른 학부형을 통해서 엄마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면아, 어떡하니" 했더니 "뭐 어때서" 하고 일언지하에 엄마의 말을 막아버린 아이입니다.

손자에게 편지를 써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독서에 대해서입니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독서가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손해 보는 인생을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과 인색하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한 것 같습니다.

셋째는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쓰다 보면 관념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어 넷째로 건강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다섯째는 역사 인식을 심어주려 했습니다. 역사를 망각하면 이 나라의 장래가 위험해지니까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썼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는 것은 약소국의 서글픔입니다.

이렇게나 훌륭한 중학교 입학 선물을 받은 주인공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본래 말수가 적은 과묵한 아이이기 때문에 표현을 크게 하지는 않습니다. 할머니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도지요. 표지의 색깔을 재면이가 최종적으로 선택했는데 표지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이 선물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읽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 살 아래 동생인 재서가 샘을 낼 만도 한데 뭐라고 설명하셨습니까

재서가 "할머니, 손자가 하나인 줄 알겠어요" 하면서 다소 섭섭한 기색을 보이기에 "네가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순서가 늦었을 뿐, 너에게도 중학교 입학 선물로 할머니가 생각한 것이 있다"고 했더니 흔쾌하게 납득했습니다. 재서도 훌륭한 점이 많고 개성이 뚜렷한 아이인데 아직 어려서 좀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손자에게 애정 표현하는 부모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간 알지 못했던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건데, 자식에 대한 사랑과 손자에 대한 사랑이 조금은 다른 모양입니다

사랑은 똑같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교육을 전제로 한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 손자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감성적 사랑입니다. 손자 사랑이 자식 사랑보다 그 농도와 밀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삶이 황혼 녘에 처한 노년들의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노년들에게 손자라는 존재는 하늘이 준 마지막 삶의 선물입니다.

조정래·김초혜라는 두 대작가를 조부모로 둔 손자의 성장기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재면이를 데리고 공원이나 놀이터 등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자연도 보여주고, 그때마다 구름이며 나뭇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 오리가 헤엄치는 것, 예쁜 꽃을 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왜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 왜 큰소리로 떠들어서는 안 되는지 등 공중도덕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는 했습니다. 또 밥상머리 교육으로 밥을 먹을 때마다 생활의 중요한 것을 이야기했고, 특히 할아버지는 '골고루 꼭꼭 씹어 먹어라'라는 말을 밥을 먹을 때마다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복습까지 시켰습니다.

"재면아, 재서야. 할아버지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뭐지?" 하고 물으면 두 손자는 "골고루 꼭꼭 씹어 먹는 거요" 하고 합창을 합니다. 이것은 아주 사소해서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가장 필요하고 절대적인 가르침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당연히 책 읽기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책은 사람을 만드는 기본 영양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밥을 먹듯이 몸에 익히는 기본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는 시간 나는 대로 음악을 들려줄 일이요, 두 번째는 책을 읽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면이는 서너 살 때 할머니 집에 와서 화장실에 가려면 할머니보고 화장실 앞에서 책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이가 가지고 온 동화책을 펼쳐서 모든 감정을 담아 재미나게 읽어주려고 애썼습니다.

책에 실린 편지 중에 '재면이 할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점을 본받았으면 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다. 할아버지처럼.' '할아버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앞서 가면서 새로운 길을 내신 분이다.' 이번 책에 제가 쓴 것입니다. 그것은 재면이 할아버지가 삶을 살아온 과정 속에서 추려낸 대표적인 사례이고, 재면이가 할아버지의 그러한 점을 배우라고 써놓은 것입니다.

언젠가 재면도 할아버지의 『태백산맥』을 필사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할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나 나는 반대입니다. 그 열 권을 한 번 읽기도 힘이 드는데 필사를 한다는 것은 노동 중에 중노동입니다. 그 고통을 손자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아드님과 며느님은 필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 옛날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한 말인데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베껴 쓰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그것처럼 아들과 며느리도 아버지의 문학을 심층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한 번쯤 필사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남편이 그런 발상을 한 것입니다.

사실 『태백산맥』을 필사해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애썼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략 270여 명의 각기 다른 개성과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곧 인간에 대한 이해가 될 수 있고, 그 많은 사람이 갈등을 일으키고 충돌하고 반복하는 삶의 각축을 통해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게 되고 사회의 모든 양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곧 폭넓은 삶의 관찰이고 실감나는 간접 체험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해, 문장력 신장,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인식, 이런 것들이 수확으로 돌아오니 긴 소설을 베껴 쓰느라고 고생한 보람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은 『태백산맥』만 필사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아리랑』 12권을 또 필사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필사를 다 마친 후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도 『아리랑』 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편지는 인생의 길 찾기를 위한 길잡이
조부모가 손자 교육에 얼마나, 어디까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3대가 한집에 살 때는 손자가 말썽을 부리면 엄마 아빠는 야단을 치고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손자는 울면서 할아버지 방으로 피신을 왔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종아리를 어루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역성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아들과 며느리를 나무라는 척했습니다. 이 정도가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의 버릇을 고치고 할아버지는 야단맞은 손자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이것처럼 균형이 잘 맞는 자식 교육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교육 환경이 도시화와 핵가족화의 거센 물결에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 이른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지만요.

요즘은 스마트폰 폐해가 심각한데 손자들은 어떻습니까

중학교 2학년 큰손자는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날에 휴대폰을 갖게 했고, 작은 손자도 5학년인 금년 어린이날에 사주기로 했으나 별로 필요치 않다고 해서 휴대폰이 없는 상태입니다.

휴대폰을 가진 날 밤에 큰손자가 침대에 누워서 "엄마, 오늘은 기분 좋은 일 한 가지와 기분 나쁜 일 한 가지가 있었어요"라고 하기에 그 이유를 물으니 "기분 좋은 일은 휴대폰을 갖게 된 것이고, 기분 나쁜 일은 나도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에요"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큰손자는 휴대폰을 가졌어도 중독이 되기는커녕 아예 꺼놓은 상태고 본인이 필요한 때만 사용합니다. 어쩌다 할머니가 걸어보면 받지도 않을뿐더러 더러는 '수신 차단'이라는 안내가 나옵니다.

교육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 세월호 참사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TV를 끌 수도 켤 수도 없는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배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며 아이들이 보낸 '엄마,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또는 '할머니, 이것이 마지막 문자일지도 몰라' 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국민 모두는 자신의 자식들과 손자들이 죽어간다는 고통의 공감을 했을 겁니다.

이 사건이 국난이고 국상이라는 것을 정치하는 집단과 공무원 집단은 통렬하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인간 경시, 인간 무시의 풍조가 일으킨 참사입니다.

국민 전체는 분노해야 하고, 국민 모두가 그들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해야 하고, 국민 모두가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번 참사를 그 전에 겪었던 사건들처럼 또 망각하고 침묵하면 앞으로는 3000명이 죽는 대참사가 쓰나미로 몰려올 것입니다.

사회 구조도 바꿔야 하지만 인간의 의식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이런 일은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인간성을 파멸시켰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는 것을 이번 사건은 구체적으로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면과 그 또래의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OECD 국가들 중에서 10대 자살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른들이 공부가 최고라고, 사회적인 지위가 최고라고 강요해서 아이들을 경쟁의 지옥으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는 10대가 많은 것도, 예를 들어 카이스트 같은 데서 자살자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인문학의 소양을 경시하고 오로지 경쟁과 공부만을 강조해온 때문입니다. 그런 경쟁과 공부의 끝은 어디입니까. 바로 지옥입니다.

그 끝이 지옥인 줄을 알면서도 달려가기만 합니다. 우리 손자가 살게 될 세상은 어쩌면 천민자본주의가 더 극성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때 손자가 바른 인간의 길을 갔으면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경시한 탓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인문학은 한마디로 '인간의 발견이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길 찾기'입니다. 문·사·철이 인문학입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 즉 종교를 생활 속에 끌어들여야만 인간의 의식 구조가 바뀝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오로지 잘사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돈이 최고라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냈고, 그러다 보니 인간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을 우리는 상실했고, 돈의 노예가 된 현실을 뒤늦게 자각해서 2~3년 전부터 인문학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일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빌 게이츠도 과학책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니고 인문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인문학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문학은 바로 인간의 핵심이고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선생님이 쓰신 『행복이』도 인문학입니다

주위에서 저를 좋아하는 분들은 『소학』보다 좋다고도 하고, 한국판 『탈무드』라고도 하고, 『명심보감』이라고도 합니다. 이미 1984년도에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제 아들이 "그런 말은 다 인사말"이라고 일갈을 한 후부터는 "인사말이래도 좋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가장 가까운 남편은 불만이 많습니다. 반복적인 것이 있다고도 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퉁을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중요한 것이니까 되풀이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남편은 결론적으로 "아내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주위의 이런 반응은 모두 책을 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손자만이 아니라 손자 세대가 이 책을 다 읽어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다운 삶과 진실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인간 중시의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손자 재면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본인의 개성을 찾아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나가면서 일평생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성공 중에서도 가장 참다운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란 으레 자식에게 기대를 걸게 마련이고, 자기보다도 훨씬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본능적 욕구이고, 그래서 그 누구나 그 욕심이 과해지게 마련입니다.

자기가 많이 이룬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고, 또 젊은 날에 큰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 부모는 자기의 실패까지 자식이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욕심을 품게 됩니다. 그 두 가지가 작용되어 오늘날 자식들을 괴롭히는 교육 지옥을 만들어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간단명료합니다. 자식들은 자기의 소유물이 아니고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개성과 재능을 빨리 발견하는 일에 부모는 협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일 뿐이고 거의 모든 부모는 욕심을 앞세워 자식을 사랑하는 일과 자신들의 욕망에 혼란을 일으켜 오늘의 사회 문제로 야기된 교육 지옥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재면이는 부모의 그러한 욕심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차단하고 자기 자신이 자기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너 스스로 너의 길을 찾으라"고 평소에 늘 말하고는 합니다.

인터뷰는 김초혜 시인의 경기 분당 집과 가까운 식당에서 이루어졌지만, 식사를 마친 후 사진도 찍을 겸 우리 일행은 그녀의 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예정에 없던 일행의 급습에 그녀는 "급하게 나오느라 정리를 못 하고 나왔다"고 걱정했지만 집 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내를 대신해 조정래 작가가 대강 손을 쓴 덕분이었다.

거실에는 여느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 그렇듯 손자들의 성장 과정이 담긴 사진이 줄줄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 할아버지와 손자가 똑같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맞춰 입고 걸어가는 뒷모습도 담겨 있었다.

아, 그리고 벽 한쪽에는 『행복이』 표지에서 봤던 진짜 '행복이'가 걸려 있었다. 손자 재면이 초등학교 시절 공작 숙제로 만든 것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선물한 것이다. 손자 이야기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작가 부부에게도 어김없이 "손자라는 존재는 하늘이 준 마지막 삶의 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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