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꽃

[스크랩] 어머니/ 이시영

향기로운 재스민 2015. 5. 20. 14:14

 

 

어머니/ 이시영

 


어머니
이 높고 높은 아파트 꼭대기에서
조심조심 살아가시는 당신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죽어 이곳으론 이사 오지 않겠다고
봉천동 산마루에서 버티시던 게 벌써 삼년 전인가요?
덜컥거리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에
아직도 더럭 겁이 나지만
안경 쓴 아들 내외가 다급히 출근하고 나면
아침마다 손주년 유치원길을 손목 잡고 바래다주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하루 일거리
파출부가 와서 청소하고 빨래해주고 가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외치고 가고
계단청소 하는 아줌마가 탁탁 쓸고 가버리면
무덤처럼 고요한 14층 7호
당신은 창을 열고 숨을 쉬어보지만
저 낯선 하늘 구름조각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허리 펴고 일을 해보려 해도
먹던 밥 치우는 것말고는 없어
어디 나가 걸어보려 해도
깨끗한 낭하 아래론 까마득한 낭떠러지
말 붙일 사람도 걸어볼 사람도 아예 없는
격절의 숨막힌 공간
철컥거리다간 꽝 하고 닫히는 철문 소리
어머니 차라리 창문을 닫으세요
그리고 눈을 감고 당신이 지나쳐온 수많은 자죽
그 갈림길마다 흘린 피눈물들을 기억하세요
없는 집 농사꾼의 맏딸로 태어나
광주 종방의 방직여공이 되었던 게
추운 열여덟 살 겨울이었지요?
이 틀 저 틀로 옮겨 다니며 먼지구덕에서 전쟁물자를 짜다
해방이 되어 돌아와 보니
시집이라 보내준 것이 마름집 병신아들
그 길로 내차고 타향을 떠돌다
손 귀한 어느 양반집 후살이로 들어가
다 잃고 서른이 되어서야 저를 낳았다지요
인공 때는 밤짐을 이고 끌려갔다
하마터면 영 돌아오지 못했을 어머니
죽창으로 당하고 양총으로 당한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요
국군이 들어오면 국군에게 밥해주고
밤사람이 들어오면 밤사람에게 밥해주고
이리 뺏기고 저리 뜯기고
쑥국새 울음 들으며 송피를 벗겨
저를 키우셨다지요
모진 세월도 가고
들판에 벼이삭이 자라오르면 처녀적 공장노래 흥얼거리며
이 논 저 논에 파묻혀 초벌 만벌 상일꾼처럼 일하다 끙
당을 이고 들어오셨지요
비가 오면 덕석걷이, 타작 때면 홑태앗이
누에철엔 뽕걷이, 풀짐철엔 먼 산 가기
여름 내내 삼삼기, 겨우내내 무명잣기
씨 부릴 땐 망태메기, 땅 고를 땐 가래잡기
억세고 거칠다고 아버지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머슴들 속에 서면 머슴
밭고랑에 엎드리면 여름 흙내음 물씬 나던
아 좋았을 어머니
그 너른 들 다 팔고 고향을 아주 떠나올 땐
나 죽으면 일하던 진새미밭 강 묻어 달라고 다짐다짐 하시더니
오늘은 이 도시 고층아파트의 꼭대기가

당신을 새처럼 가둘 줄이야 어찌 아셨습니까
엘리베이터가 무겁게 열리고 닫히고
어두운 복도 끝에 아들의 구둣발 소리가 들리면
오늘도 구석방 조그만 창을 닫고
조심조심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는
흰 머리 파뿌리 같은 늙으신 어머니

 

 

-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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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박재삼 문학상 수상 시집인『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2012)에는 이시영 시인의「어머니 생각」이란 시가 실려 있다.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을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밀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어머니 생각’은 시 ‘어머니’의 진전된 상황, 즉 치매 상태인 어머니에 관한 가슴 아린 진술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견뎌야할 외로움은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울까. 치매의 원인 자체가 바로 외로움과 우울이란 설이 있고 보면 노년기에 찾아드는 소외감과 상실감, 그리고 존재감의 부족이 뇌세포를 급격히 파괴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나도 ‘무덤처럼 고요한’ 아파트 1407호에 어머니를 16년 째 가둬두고 함께 산다. 하루 8시간 이상 TV를 끼고 ‘레미콘’을 만지작대셨는데, 최근엔 이 ‘레미콘’의 이름마저 잃어버려 치매증상의 하나인 명칭실어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아주 먼 기억은 부분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반해 가까운 기억은 안개 속 허방이다. 했던 얘기 또 하고 재미없는 꽃노래가 되어 가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던 때가 차라리 그립다. “애비야 시 그거 하면 돈은 좀 되나?” 걸핏하면 던지시던 그 말씀도 요즘은 툭 끊겼다. “돈은 무슨...” 불퉁한 대꾸에도 ‘돈도 안 되는데 와 그 짓 하노’ 란 말씀은 안하신다. 대신 “돈도 좀 되고 그라믄 울매나 좋겠노, 지 하고집은거 하믄서 돈도 벌민야 그보다 더 존기 어디 있겠노만...” 어머니 말씀에 기운 빠질까봐 구차한 말 다 생략하고 “그러게요” 간단하게 끝내곤 했다.

 

 “그래도 글 쓰가 묵고 사는 사람도 있을 거 아이가, 테레비에서 보이 소설인가 연속극인가는 쓰믄 돈도 잘 번다고도 카던데, 내 살아온 이바구도 글로 쓸라카믄 쓸 기 좀 있을끼라. 대동아전장에 육이오동란에 난리를 몇 번씩이나 겪고 고생은 울매나 마이 했는동” “동란 때 니 아버지 찾아내라꼬 인민군이 따발총 가슴팍에 들이대고 집에까지 닥치질 않나, 그전에 니 아부지가 차고있던 권총 꺼집어내 소지하다가 실수로 총알을 발사시켜 내 바느질 한다꼬 앉은 다다미방 자리 바로 앞에 그 총알을 쑤셔박지 않았나, 그때 쪼매마 치켜올릿시마 나도 없고 니도 이 세상에 없는기라”

 

 “그라고 동란 끝나고는 객식구들이 오죽 많았나, 매일 열댓명 밥 해믹이니라...그땐 무시 채나물 한다고 하도 무시를 쓸다보이 지금도 무나물은 치다보기도 싫은기라” 이야기가 늘어질라 치면 “그 시대사람 다 겪은 일 아녀요, 그리고 소설이란 게 사람 고생한 얘기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서둘러 이야기를 끊을 요량으로 슬쩍 화장실로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공손한 말상대를 해드리지 못한 게 지금은 후회가 된다. 우리는 누구나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을 보고 듣고 자라왔다. 당신의 뜬눈으로 지새운 세월과 가시밭길을 통과해 이만큼이라도 살아 존재한다는 걸 왜 모를까.

 

 어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보다 딱 한 살 아래인 토끼띠 여든아홉이다. ‘오늘도 구석방 조그만 창을 닫고/ 조심조심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는/ 흰 머리 파뿌리 같은 늙으신 어머니’의 아침을 위해 어제 순두부집에서 밥 먹고 그저 얻어온 비지로 김치비지찌게를 끓였다. 처음엔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지만 부엌살림 일체를 넘겨받아 대파를 토닥토닥 써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 어머니의 치매 초기증상으로 인해 좋은 게 또 하나 있다. 어머니가 멀쩡했을 때 엄마 젖을 한번 만져보고 싶어 슬쩍 건드리면 “야가 와 카노!” 손을 탁 뿌리치곤 하셨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으신다. 진하게 포옹해도 그냥 모른 척 받아주신다. 아, 어머니...엄마

 

 

권순진

 


Mother of mine / 신영옥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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