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사발과 장미/석성일

향기로운 재스민 2015. 6. 7. 08:19

 

 

사발과 장미

석성일

 

 

이사 갈 때 데려가지 않아

돌담 옆에 남겨진 이 빠진 사발 하나

매일 밤 가슴에 별빛을 찰랑찰랑 담아

장미에게 바쳤습니다

장미는 모르는 척 빈 집만 바라보다

호젓한 어느 밤

이 빠진 사발을

꽃가슴으로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이 빠진 사발과 장미의 만남을

흰 감꽃도 톡 톡 톡 내려와 축하를 했습니다

채송화 봉선화 부러움을 사며

햇볕과 뭉게구름을 나누어 갔던 오후

지나가던 할아버지 손에 끝내 들리어

이 빠진 사발은

장미와 헤어져서

삽살이 밥그릇이 되었습니다

깨갱 깨갱대는 소리에

손톱을 깎던 할아버지 얼른 가 보니

삽살이 코에 피 한 잎 묻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빠진 사발 안에

장미 가시가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심(2015. 6)

 

*

'사람의 마음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夢魂/이옥봉  (0) 2015.06.16
인생은 느리게 지나갔다/이기철  (0) 2015.06.14
"멜팅 몽키' 를 찾아/김방주  (0) 2015.06.04
벼랑에 대하여/김재진  (0) 2015.06.02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도종환  (0) 201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