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과 장미
석성일
이사 갈 때 데려가지 않아
돌담 옆에 남겨진 이 빠진 사발 하나
매일 밤 가슴에 별빛을 찰랑찰랑 담아
장미에게 바쳤습니다
장미는 모르는 척 빈 집만 바라보다
호젓한 어느 밤
이 빠진 사발을
꽃가슴으로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이 빠진 사발과 장미의 만남을
흰 감꽃도 톡 톡 톡 내려와 축하를 했습니다
채송화 봉선화 부러움을 사며
햇볕과 뭉게구름을 나누어 갔던 오후
지나가던 할아버지 손에 끝내 들리어
이 빠진 사발은
장미와 헤어져서
삽살이 밥그릇이 되었습니다
깨갱 깨갱대는 소리에
손톱을 깎던 할아버지 얼른 가 보니
삽살이 코에 피 한 잎 묻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빠진 사발 안에
장미 가시가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심』(201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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