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늘

전화/이병초

향기로운 재스민 2015. 8. 5. 10:34

  울밑에선 봉선화 / 김형준 작시  홍난파 작곡  소프라노 김봉임

 

전화
   이병초

 

    날은 저물고 비까지 내리는데
    울 엄니 전화도 안 받으시고 어딜 가셨나
    밑 터진 비료 푸대에 목을 내고
    양팔을 내어 비옷처럼 쓰시고
    청닛날 밭에 들깨 모종하러 가셨나
    고구마순 놓으러 가셨나
    애리는 어금니 소주 한 모금 입에 물고 달래시며
    거미줄이나 마중나온 길 허둑허둑 돌아오시나
    큰아야, 집 뜯기면 어디로 간다냐 보상금 타서
    아파트로 간다냐 제발 물 안 나는 디로
    두어 칸 앉힌다냐, 물으시더니
    하늘님께 물음 뜨러 가셨나 손주 새끼들이랑
    언제나 함께 사냐고 날 받으러 가셨나
    꺽꺽 목이 쉬어
    빗발은 앞뒷발 다 들고 쏟아지는데 

 

  ―시집 『살구꽃 피고』(작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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