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늘

아침/문태준(1970 ~ )

향기로운 재스민 2015. 3. 14. 12:34

 

아침

 - 문태준(1970~ )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 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어둠을 가르며 누리에 빛이 돋고, 잠 깬 생명들이 역동하는 하루를 여는 시각, 아침이다! 어제의 피로, 어제의 슬픔, 어제의

죄는 밤이 다 씻어간 덕에 기진(氣盡)하던 생명들이 소생하고 천지간에 활력은 넘친다. 시인은 새들이 재잘거리는 아침 풍경

을 산뜻하게 소묘(素描)한다. 대개는 아침 기운은 정결하고 신성하다. 문명을 등지고 숲 속으로 들어갔던 헨리 데이비드 소

로는 “아침에 일어나서 연못의 물로 몸을 씻는다. 그것이 종교다”고 말한다. 아침의 정기를 내면에 품고 사는 사람은 무구(無

垢)하다. 아침이 품은 이 정기를, 이 무구함을, 시인은 한 양동이의 출렁이는 물로 은유한다. 아침 누리에 금빛 가득 찬 것은

좋은 징조다. 침상에 누운 자들이여, 벌떡 일어나시라! <장석주·시인>

 

- 출처 :[중앙일보] 입력 2015.03.14 00:02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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