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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공광규

향기로운 재스민 2016. 4. 15. 18:01

 

 

욕심/ 공광규

 

 

뒤꼍 대추나무

약한 바람에 허리가 뚝 꺾였다

 

사람들이 지나며 아깝다고 혀를 찼다

 

가지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었나?

과거에 남 모를 깊은 상처가 있었나?

아니면 바람이 너무 드샜나?

 

그러나 나무 허리에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너무 많은 열매를

나무는 달고 있었다.

 

- 시집『지독한 불륜』(실천문학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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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과수는 열매를 솎아주지 않으면 과실이 작아질 뿐 아니라, 이듬해 해거리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되므로 반드시 솎아 주어야 한다. 이 대추나무도 가지치기를 소홀히 한 탓에 열매를 너무 많이 달고 있어 가지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꺾였다. 이런저런 다른 이유를 먼저 찾아봤지만 결국은 욕심 때문임을 알았다. 

 

 톨스토이의 우화에 한 가난한 농부 얘기가 있다. 이 농부는 평소 귀족들처럼 넓은 땅을 갖고 싶은 욕망에 넘쳤는데 어느 날 한 귀족으로부터 제의를 받는다. “여보게 파콤, 내가 그 소원을 풀어주지. 자네 마음대로 하루 동안 달리면 그 만큼의 땅을 자네에게 주겠네.” 다음 날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이 나서 죽기 살기로 넓은 들판을 달렸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게 자기 땅이라니. 마침내 그는 엄청난 거리를 달린 뒤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되돌아오자 곧 지쳐 쓰러져 죽고 만다. 결국 하루 종일 자기의 땅을 위해 달렸지만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스스로 묻혀야 할 두 평 땅 뿐이었다.

 

 욕심이 일을 그르치고 화를 부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한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곳은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가 있는 명당이었다.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퍼주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그네들은 물을 얻어마시고 노인에게 몇 푼의 동전을 건넸다. 노인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겼다. 노인은 돈을 모으는 것에 몰입했다. 그리고 샘물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하여 한 잔에 얼마씩 일정금액을 받았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몽땅 잘랐다. 결국 샘물은 말라버렸다. 야자수가 만들어 낸 그늘도 없어졌다. 그 뒤 아무도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지 않았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끝이 없는 게 인간의 욕심이라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심은 자신뿐 아니라 이웃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욕심은 불만을 낳고 불만은 불행을 지름길로 안내한다. 어느 땐 희망이니 꿈조차도 욕심의 불쏘시개가 될 때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누구라도 욕심 없는 삶을 지탱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제는 늘 분수를 넘은 과욕이며 인본을 벗어난 욕심에 있었다. 남이야 어찌 되든, 설령 남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나만 득이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 집착한 결과로 빚어진 숱한 사건 사고들을 지금껏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2년 전 세월호 참사는 그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우리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린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기도 하다. 괴테는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솟아난다."고 했다. 이때 절제는 억제가 아니라 선량한 양심의 자유요, 축복의 관문인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도 현 정권의 과욕과 실정에 대한 심판이며, 따라서 '정권교체!'라는 분명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열매와 '묻지마'지지가 그들을 망쳤다. 여당에게는 남은 기간 최대한 겸허한 자세로 국정을 수행하라는 뜻이고, 야당에게는 힘을 모으고 전열을 정비해 수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는 주문이다. 특정 대권주자의 과한 욕심으로 인해, 역시 눈에 보이는 열매와 지지 때문에 민의를 거스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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