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스크랩] 갈증을 털어버린 비<디카시집>출간하였습니다,

향기로운 재스민 2016. 6. 7. 07:23























김인태의 작품 세계

희극적 태도와 표층시 그리고 허무주의

-시집갈증을 덮어버린 비를 중심으로-

공재동(동시. 시조시인)

. 머리말

 

김준오는현대시의 방법론과 모더니티에서 모든 시인은 예외 없이 세 가지 문학 양식에 참여한다.’고 하고 그 세 가지 문학 양식을 전통적이고 영속적인 것, 때때로 지배적인 것, 두드러지게 미래지향적인 것이라 했다. 여기서 때때로 지배적인 것이란 시대 상황에 따른 특징을 말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의 삶의 양식이 변하는 만큼 시의 세계도 늘 새롭게 변신을 거듭해왔다. 시라는 예술의 형식은 처음부터 정해진 공식이 없었으므로 시의 변신은 다른 예술을 압도한다.

현대시의 변신은 새로운 사회구조와 표현 방법의 신속한 변화 속에서 빠른 속도로 변모해왔다. 현대시의 변모 중에서도 가장 주목 되는 것은 해체의 징후들이다. '해체시'란 용어를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쓴 사람은 이윤택이다. 데리다의 해제주의 이론을 시에 적용한 것이 해체시다. 이러한 해체의 징후는 1930년대 이상의 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상의 이러한 실험적인 시풍은 한때 잠잠하다가 1980년대에 다시 일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해체시라는 것이다. 70년대의 오규원, 황지우, 박남철, 80년대의 김춘수, 이승훈으로 이어지는 해체시는 표현 매체의 급진적 변화에 따라 시의 구조적 해체는 다양한 방법을 진행될 공산이 크다.

김인태의 여섯 번째 시집갈증을 덮어버린 비는 가장 인간적이고 세속저인 문학형식이라는 희극적 태도와 풍자로 이루어져 있다. 산문정신으로 불리는 이런 희극적 태도가 지배적인 현대시는 과거의 서정시와는 달리 진지하지도 않으며, 시적 미학도 사회적 참여와도 결별한 채 도시적 감수성과 유희성을 지향하는 해체시의 특징을 보여 흥미롭다.

. 김인태의 시 세계

 

새로운 시의 탄생은 새로운 시론을 잉태를 의미한다. 시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체시는 그와는 반대이다. 해체주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산파역을 한 이론으로 '말 중심주의의 잘못된 점을 모두 없애고 언어라는 개념과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시에 적용한 것이 해체시다. 해체시는 언어를 믿지 않는다. 언어는 더 이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불신에서 전통적인 시 형식을 없애려고 한다. 김인태의 시는 이러한 해체주의 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 디카시()

디카는 디지털 카메라의 약칭이다. 촬상소자에 CCDCMOS를 사용하여 빛을 전자적인 신호로 바꾸어 자기매체 혹은 플래시 메모리 등 저장장치에 보존하는 카메라의 총칭이지만 한국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라고 하면 콤팩트 카메라를 의미한다.

디지털 사진은 메모리에 저장하고 컴퓨터로 옮기는 방식으로, 고장이 나지 않는 한 필름을 사는 등의 유지비가 들지 않으며, 가볍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할 수 있다. 막 찍은 사진을 포토샵 같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보정하는 등 전반적으로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36매 정도가 들어있어서 한장 한장 아껴서 찍던 필름 카메라 시절을 생각해보면 메모리 하나에 많게는 1000장도 넘게 찍히는 디카는 실로 사진의 대중화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더구나 이 기술이 휴대폰과 결합함으로써 디카시대는 대중문화의 총아로 자리잡은 것이다.

김인태는 시집 서문에서 시대적 가치의 변화 과정에서 다소 소외됨은 사실. 작품도 변해야 한다는 태동으로 사물을 포착한 디카 영상과 문장이 융합된갈증을 덮어버린 비디카 시를 발표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썼다. ‘영상과 문장의 융합이라는 디카시는 기존의 시의 형식을 완전히 뒤엎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영상이 먼저인지 시가 먼저인지 구분이 곤란할 정도로 화려한 영상에다 시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편집도 직접 소형 컴퓨터를 통해 자유자재도 처리함으로써 종래의 편집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디카시라는 용어는 현대시의 또 다른 변신을 뜻하는 것으로 사물에서 포착한 디카 영상과 문장의 융합이라는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시는 언어 예술이지만 표현 매체를 언어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림, 사진, 도형, 기호 등을 동원하기도 하는 표현 매체의 개방이라는 현대시의 해체적 경향을 그대로 드러낸 새로운 시도다. ‘일률적 텍스트로 구성된 언어의 조합으로 삶의 방향성이나 연목구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현대시의 변형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투명사회에서 디지털 매체는 현존의 매체다. 이 매체의 시간은 즉각적 현재를 본질로 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특징은 정보가 어떤 중개자의 매개도 거치지 않고 생산되고 전송되고 수신된다는 데 있다.’고 한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그대로 시에 도입했다.

2. 희극적 태도

 

희극은 인간의 어리석음, 악행, 사회의 부조리를 대상으로 웃음을 통해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적이며 세속적 문학 양식이다. 김준오는 희극적 태도를 두고 더 이상 울지 않는, 머리로만 반응하는 현대사회의 산물로 보았다.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현대인은 세상일에 좀처럼 공감이나 일체감을 갖지 않는다. 희극은 세상을 우습게 보는 무감동의 지적 현대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문학 양식이다.

어둠을 짊어진/ 가로등/ 우울처럼/ 섧게 비친 소름 위로/ 겨울이 가시같이/ 쪼고 있다. -‘겨울밤전문-

 

현대인의 본질적 성격이 드러난 무감동의 시다. 사물은 객관화되고 시인과의 거리는 멀다. 어둠을 짊어진 가로등, 우울처럼 섧게 비친 소름, 가시 같은 겨울. 이런 풍경들이 거대한 다리 사이로 보이는 광안대교의 밤풍경이 클로즈업 된다.

 

살갗에 기대도/ 좋을 바람이/ 휩쓴 이른 봄/ 촌스런 아우성// 초경 때문일까

-‘꽃샘전문-

 

꽃샘바람을 살갗에 기대도 좋다고 한 것이나, 이 바람이 휩쓸고 간 이른 봄의 모든 현상을 촌스런 아우성으로 본 것이나, 시인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저 우습기만 하다. 현대인의 무감동은 이른 봄의 풍경들이 초경을 맞은 숫처녀의 히스테리로 보이는 것이다.

 

절벽 끝에/ 매달린 이파리 하나/ 그래도/ 이승이 좋은지/ 부끄럼 한 점/ 없이 탈탈 털고 있는 가을을/ 꼭 잡고 있네 -‘나뭇잎전문-

 

나뭇잎 하나가 가을을 잡고 늘어졌다. 부끄러움 투성인 이승이 무에 그리 좋다고 참 딱하기만 하다. 이러한 희극적 태도가 시의 엄숙주의를 무너뜨린다. 냉소와 풍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도시의 경박성 유희성인 것이다.

함민복은자본주의 주련나의 수사에 제대로 속은 자들만이 나의 시를 이해한 것이다.’ 고 했다. 주련을 설명하는 시들로 백과사전을 발췌하기도 하고 신용카드 사진을 조립하기도 하는 함민복의 시가 지닌 해체의 흔적이 김인태에서도 발견된다.

3.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은에로스의 종말에서 가능성이 끝없이 열려있는 세계에서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에바 일루즈는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오늘날 정열이 식어버린 이유를 사랑의 합리화 과정과 선택 기술의 확산에 돌리고 있다. 에로스는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강한 타자를 향한 것이다. 대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에로스의 정념은 더욱 불탄다. 나르시시즘 자기애에 빠진 현대 사회에는 사라진 에로스 대신 포르노가 그 자리를 매우고 있다.

 

겨우내 쌓였던 눈, 봄임을 알고 티끌 하나/ 빠짐없이 말끔히 치운/ 영각 앞마당에/ 살포시 비친/ 초경, 간사한 바람이/ 고쟁이 속을/ 들추고 있네 -‘통도사의 봄전문-

 

홍매화라는 부제가 달린 이 시에서의 성은 하나의 유희에 불과하다. 봄날,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한 영각 앞마당은 이러한 유희를 극적으로 만드는 무대 장치일 뿐이다. 여자 아이의 초경 같은 홍매화, 고쟁이 속을 들추는 간사한 바람에는 진정한 에로스는 없다. 그 자리엔 현대인의 관음증 같은 포르노만 있는 것이다.

 

햇살 안고/ 너울너울/ 바라 춤추더니 오매/ 치마끈까지/ 스르르 푸네 -‘흰구름전문-

 

오랜 동안 구름은 인생의 덧없음을 대변해준 자연물이다. 해체시에서는 이런 고정의 이미지마저 갈가리 쩢겨져 적나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좀처럼 공감할 줄 모르고 일체감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에겐 구름도 강한 타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공개하고 상품화하는 포르노 상품일 뿐이다. 햇살과 어울려 춤을 추고 끝내는 스스로 치마끈을 구름에서 더 이상 자연의 신비는 없다. 공감도 일체감도 찾아볼 수 없다.

 

찢어진 가난에 혼기 놓친/ 옆집 처녀/ 앞섶에/ 허이연 가슴이/ 수북수북 -‘수국전문

 

해체시는 문학의 위기를 대변한다. 문학의 위기는 제일 먼저 시의 위기로 현실화한다. 찢어진 가난과 혼기 놓친 처녀. 이것이 우리의 근대사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역사성마저 현대시에서는 극단적 모순이 아니라 관음의 대상이다. ‘허이연 가슴 수북수북에는 순수한 에로스는 찾을 수 없고 대신 현대인의 관음증만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우둑우둑 씹어/ 뱉은 봄/ 생리처럼 터진/ 바람 꾼/ 봄비에 덜미 잡힌 장작개비처럼/ 피식 거리며/ 잘 타지 않는 나도/ 탄성을 지른다. -‘홍매화전문-

 

오늘의 문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아니다. 자기애를 지닌 주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 타자와의 분명한 경계를 만들지만, 나르시시즘의 주체는 타자와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토록 애태우는 봄도 입속에서 우물거리다 내뱉는 껌보다 더하지도 않다. 생리처럼 터진 바람 꾼은 바로 현대인이다. 봄비에 덜미를 잡혔지만 그는 무감동의 장작개비다. 강한 유혹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어 끝내 탄성을 지르는 향락의 실체가 바로 현대인이며 자기 자신이다. 나르시시즘의 주체인 현대인에게 섹스도 그저 자기 자신의 그림자일 뿐이며 전정한 에로스는 아니다.

파랗게 치를/ 생동 넘치는/ 향연 작렬한 태양보다 더 감당키/ 어려운 열병 한 번/ 앓아봐 야겠다/ 삼베적삼 속/ 은근히 내민/ 탱탱한 유채색 -‘청포도전문-

 

김인태는 아직도 도시인이 되기엔 부족한 것이 많다. 고착화된 어린 시절의 환경이 그를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프로노가 에로스의 비속화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한 가닥 사랑이 잔설처럼 남아있다. 그의 청포도는 삼베적삼 속 은근히 내민 탱탱한 유채색이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아직도 진부한 소비재로 타락하지 않았으며, 벌거벗음 속에서도 에로스 본연의 모습은 남아있다.

현대는 에로스가 사라진 시대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 경향을 강화한다.’고 했다. 자본주의는 성애의 다른 용법을 모른다.

 

탱자 울타리/ 밑에서 햇살을 등진 채/ 세상 살피는/ 새댁 살짝 드러낸 눈/ 풀밭에/ 소피보 다 들킨/ 하얀 속살 같은 수치심 -‘달개비전문-

 

사랑은 강한 타자에 대한 불능으로 더욱 타오른다. 그러니까 사랑은 불능에 의해 만들어지며, 진정한 사랑은 이러한 불능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고의 선물이다. 헤겔은 죽음 속에서도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고 했다.

에로스의 종말은 문학의 종말이며 시의 종말이다. 김인태에게는 그래도 탱자 울타리 밑에서 햇살 등진 채 숨어있는 진정한 에로스가 있다. 소피보다 들킨 하얀 속살 같은 수줍음을 간직한 사랑은 현대인의 마지막 순수다.

 

 

4. 표층시와 허무주의

 

현대시의 새로운 국면으로 우리는 1990년대의 탈 이데올로기탈 중심주의를 들고 있다. 현대시에서 더 이상 형이상학의 깊이를 찾을 수 없게 된 이른바 형이상학의 몰락이 그것이다. 깊이를 상실하고 현상주의를 지향하는 표층시, 표층시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미학으로 자리 잡았. 표층의 현상주의는 의미의 죽음을 뜻하며 이것은 곧 허무주의로 이어진다. 허무주의가 현대시에 재현되면서 의미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더 이상 미학적이지도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는 이 특별한 미혹을 보드리야르는 투명한 허무주의라고 이름 했다.

 

세상을 덮어버린 듯 덜컥대는 창문 틈 새로/ 한 벌 벗는 소리에 손을 꼬집어대며/ 사랑한 다고/ 부른다면 헤프게 잊을/ 너는 얼마나/ 허무할까 -‘첫눈전문-

 

첫눈의 형이상학적 깊이는 이미 없다. 오직 사라지고 그리고 잊혀지는 현상만이 시적 대상일 뿐이다. 세상에 남은 것은 허무 그것이다. 허무는 이 세상의 만사 만물의 본질적 속성이다. 시인의 눈에는 오로지 첫눈의 허무만 보이는 것이다.

 

긴 다리 하루/ 종일 동동 걷어 올리고/ 멀건 강바닥을 바라보는 너/ 때때로 일상이 깊어 가는 병처럼/ 허망한 자맥질로 돌아 나오는 발자국/ 내려놓아야 하나 -‘왜가리전문-

 

표층시는 허무주의가 시에 재현된 시간 양상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왜가리에는 허무를 인식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을 순간적 허무라 부른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투명한 허무주의가 바로 이것이다.

 

기척도 없이/ 엎드린/ 강둑 따라/ 아스라이/ 모래를/ 핥고 있는/ 섬진강을/ 턱 고이고/ 바 라보는/ 풍경일 때가 더러 있다 -‘섬진강전문-

 

탈 이데올로기탈 중심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시는 자신이 하나의 풍경일 뿐이다. 이념도 사상도 무색해지는 강둑 따라 아스라이 모래를 핥고 있는 섬진강은 이 시대 허무의 상징이다. 그 속에서 자아라는 것도 현실주의 앞에서는 먼 풍경일 따름이다. 허무주의는 현대시의 특징을 명료화한 새로운 미학이 되고 있다.

 

. 맺는 말

 

현대시의 해체적 경향은 포스트모던이즘 차원에서 몇 가지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장르의 해체다. 시를 산문화하고 희곡이나 시나리오 기법을 도입하기도 하며,

시 속에 회화나 도형을 삽입하기도 한다. 둘째 표현 매체의 개방이다.

시는 언어 예술이지만 표현 매체를 언어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림, 사진, 도형, 기호 등을 동원하기도 한다. 셋째 규범 문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비문이나 논리적 타당성이 없는 문장을 구사한다. 넷째 몽타주기법의 사용이다. 타인의 글들을 여기저기서 무작위로 끌어다 자신의 글처럼 쓴다든지, 광고나 기사, 사진 같은 것들을 오려 붙이기도 한다. 다섯째 탈이념 현상이다. 주의나 사상에 예속되지 않고 도덕과 윤리의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나고자 한다. 여섯째 시의 저속화 현상이다. 일상의 저속한 것들 속에서 소재를 구한다든지, 속어나 욕설을 사용한다. 해체시의 특징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존의 것들 곧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라고 할 수 있다. 김인태의 시에서 발견되는 문법 체제의 파괴와 전통적 시형태인 행과 연의 불분리 등은 바로 이 같은 기존의 것들,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의 표현일 것이다.

김인태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체시의 특징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의 시는 전통시와 삶의 세계에 대한 부정과 비판에서 시작한다. 부정과 비판을 시정신이 아니라 철저한 산문정신이다. 그의 시가 서사형식의 서술적 문체로 바뀐 것도 이러한 산문정신이 소산이다. 김인태의 독특한 시법을 설명하기 위해 해체주의를 인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시 끝물고추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낮술 걸친/ 고추 홀랑홀랑/ 벗었던 여름 수다가/ 가지에 걸려있는 시월/ 두터운 햇살 아 래/ 얼굴빛이 아직도/ 매운 고통이/ 여실하다.’

 

 

 



출처 : 갈증을 덮어버린 비
글쓴이 : 동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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