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시인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동대학원 졸업
1958년 [현대문학] 등단 [황동규 시 전집(전 2권)]
시집 [어떤 개인 날] [삼남에 내리는 눈]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몰운대행] [풍장]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겨울밤 0시 5분], 시해설집 [시가 태어나는 자리]
산문집 [사랑의 뿌리]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삶의 향기 몇 점] 등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만해대상 수상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황동규 시인 ( 시모음 )
즐거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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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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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風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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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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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풍의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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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견디기 힘든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 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 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들어 가고 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에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
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 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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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하루종일 눈. 소리없이 전화 끊김. 마음놓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음. 길 건너편 집의 낮불, 함박눈 속에 켜 있는 불, 대낮에 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불, 가지런히 불타는 처마. 그 위에 내리다 말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눈송이도 있었음.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비채를 휘두르며 불길을 잡았음. 불자동차는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달려옴. 이하 생략. 늦저녁에도 눈. 방 세 개의 문 모두 열어놓고 생각에 잠김. 이하 생략. "혼자 있어도 좋다"를 "행복했다"로 잘못 씀. |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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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별
천문학자들은 항성을 행성보다 더 큰 일로 다루지만 나는 떠돌이별,
저 차돌 같은 싱싱한 지구 냄새에 끌려 늦봄의 김포와 강화를 떠돌았습니다.
길에는 붓꼿이 필통처럼 모여 피어들 있고 산 밑에는 수국(水菊)이 휘어지게 달려 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마니산 중턱에 올라 모든 별이 폭발하듯 떠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떠돌이별 하나가 광채도 없이 마니산 중턱에서 숨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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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의 불타 - 관룡사 용선대에서
바위에 붙어 있는 풀들도 허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민 팔들이 질긴 것 같지만 허공 쪽에서 잡으면 팔을 탁탁 끊어버린다. 그렇다. 밖으로 내민 것 끊지 않고 허공 앞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저 아래 새들이 날고 그 밑에 바위 그림자 가라앉을 때 등 뒤에서 태양이 머뭇거릴 때 늦가을 산정(山頂) 바람 예리한 칼끝은 줄곧 옷가슴을 들치며 심장이 여기지, 여기지, 묻는다. 불타와 예수의 앞자리치고 위험치 않은 자리 어디 있으랴? 허공에 나앉은 불타, 몰래 밖으로 내미는 인간의 팔 탁탁 끊어주소! 나무뿌리에 되우 낚아채인 다리 후들거림 멎으며 허공이 텅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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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足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팔과 종아리에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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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蘭의 데스마스크
낮에 잠깐 품었던 잠을 깬다. 어디 딴 세상 소리처럼 트럭 경음 들리고 무언가 메마른 것이 몸을 적신다. 우박이 내리는가 모르는 사이 베란다 쪽이 어두워지고 유리창이 자못 소란스러워진다. 베란다 화분에 빈 심지로 꽂혀 있는 며칠 전 죽은 난, 마른 줄기들.
깨긴 깨었는가? 베란다의 소리 적이 가라앉고 소리 줄어든 만큼 주위가 환해지고 화분 위엔 전에 못 보던 다리 긴 발 약간씩 뒤틀린 새들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자코메티 풍의 꼿꼿한 새들, 천천히 고개를 든다.
고개 들면 어디로 가겠는가? 유리창 소리가 가시고 베란다가 환해진다. 햇빛 드는 화분 위엔 꼿꼿이 삭은 심지의 촉루, 그래 어디로 가겠는가? 어디로? 갈 데 없는 난의 얼굴에 갈데없는 인간의 얼굴을 부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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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여울
아주 캄캄한 밤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 마음속이 온통 역청속일때 하늘에 별 몇 매달린 밤보다 아무것도 없는 길이 더 살갑다.
두눈을 귀에 옮겨 붙이고 더듬더듬 걷다
갈림길 어귀에서 만나는 여울물 소리, 빠지려는것 두 팔로 붙들려다 붙들려다 확 놓고 낄낄대는 소리
하늘과 땅이 가려지지 않는 시간 속으로 무엇인가 저만의 것으로 안으려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놓아버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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