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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그 사람을 가졌는가

향기로운 재스민 2018. 5. 30. 18:27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시집수평선 너머(한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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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문학사상사에서 문인과 각계 명사들의 애송시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라는 제목으로 8권의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한 표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 인물이 될 수 없다. 시는 모든 예술의 원천이며, 또한 사무사(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순수한 지성과 아름다운 정서의 결정체다. 조선시대의 과거가 시 쓰기 시험과 다를 바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사랑할 줄 모르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제로 손학규 이명박 정동영 등 당시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과 각계 인사, 연예인 등 31인이 좋아하는 시를 소개했다.


 이글의 내용이 별반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시를 사랑할 줄 모르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한 대목이 마음에 좀 걸린다.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시에도 관심을 좀 가지라는 낯간지러운 말처럼 들리고, 큰 인물이 되려면 시를 몇 편쯤 읽고서 아는 체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 정치인 등이 어떤 사안과 결부지어 시 한 두 편을 요긴하게 인용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책을 좀 팔아보려는 마케팅 차원의 수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가 그런 용도로 복무되어야 마땅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시는 간혹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내 삶을 추스르는데 아주 유용하게 기능하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긴 하다.


 책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애송시가 바로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이다. 이 시를 두고 이명박 씨는 ‘그 사람이 되고자’한다며,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물음은 나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되었고, 살아가면서 풀어 가야할 과제가 되었다. 다만 내가 한 사람에게라도 ‘그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 취임 이후 그 신념이 묽어져서인지, 애당초 진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자기편의적 시 해석에서 비롯된 오독의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과는 한참 거리가 먼 행태를 보여 국민을 실망시켰다.


 지난 2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판정에서 자필로 써온 10쪽 분량의 글을 읽으며 불우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동시대를 살아온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 전쟁의 아픔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며 “학교에 가지 못하던 시대에 어머니는 저에게 늘 ‘지금은 어렵지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이 다음에 잘 되면 너처럼 어려운 아이들 도와야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로부터 청렴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은 자신이 뇌물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시와 연결 지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혼란스러웠다.


 많은 정치인들이 좋아한다는 시는 일부에 편중되어 윤동주의 ‘서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정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애송시도 <서시>로 알려져 있다. 솔직히 정서작용이 아니라 작위적 최면이거나 이미지 포장을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함석헌 선생께서 말씀하신 큰 삶과 정신의 ‘그 사람’이 우리 둘레에 있기나 할까. ‘큰 인물’을 꿈꾸는 정치인은 수두룩하지만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우리는 몇이나 가졌을까. 나 자신 발가락 때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을까. 도무지 낯이 붉어져서 <서시>니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애송시라 둘러대지는 못할 것 같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