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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에 밤이 드니/월산대군

향기로운 재스민 2018. 8. 16. 14:22

추강에 밤이 드니(월산 대군)의 작품

ⓒ (주)천재교육 | BY-NC-ND

추강에 밤이 드니(월산 대군)의 핵심 정리

[이 작품은] 세속적 명리(名利)를 초탈한 전원생활에서의 여유와 멋을 노래한 시조이다. 넉넉한 자연, 욕심 없는 삶의 태도 등을 중심으로 한가로운 전원생활 속에서 느끼는 한정(閑情)과 풍류가 표현되어 있다.

*갈래 : 평시조, 서정시
*성격 : 풍류적, 낭만적, 탈속적, 한정가
*제재 : 추강(秋江), 가을 달밤, 낚시
*주제 : 가을 달밤의 풍류와 정취
*특징 : 한적한 가을밤의 풍취를 드러내어 물욕과 명리를 벗어난 탈속의 정서를 표출함.
*연대 : 조선 성종
*출전 : “청구영언”


월산대군에게는 2번이나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세상의 일인자가 될 수 있는 임금의 자리는 번번히 그를 비껴갔다.

세조(수양대군)의 맏손자로 태어났으나 세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일찍 죽어 왕위를 잇지 못하고, 그의 삼촌 예종이 임금이 됨에따라 월산대군이 임금이 될 수 있었던 첫번째 기회는 사라졌다.

두 번째 기회는 예종이 즉위2년 젊은 나이에 죽었을 때였다. 그때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겨우 4살이었고, 예종의 조카였던 월산대군은 16살, 월산대군의 동생인 자을산군은 13살이었다.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4살로 너무 어렸으므로 당연히 다음 임금은 월산대군이 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뜻밖에도 그의 동생인 자을산군이 임금이 되었다.

예종이 죽었을 당시 권력은 한명회에게 있었고, 자을산군의 장인이었던 한명회는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와 상의하여 그의 사위인 자을산군을 성종으로 만들었다. 한명회의 권력이 막강함에 따라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가 어쩔 수 없이 한명회의 의견에 동의했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정희왕후의 입장에서도 나이 어린 친손자 3명중 누가 왕위를 계승하던 아무 탈 없이 임금자리를 계속 보전하기위해서는 자을산군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초월한 표정의 문인석
ⓒ 김기동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이 된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는 이번에는 반대로 그녀의 손자들의 삼촌인 구성군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세조의 또 다른 조카인 구성군은 예종이 죽었을 때 벌써 28세로 영의정의 경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왕의 친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는 성종1년 한명회에의해 구성군이 탄핵되어 유배된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는 월산대군은 자연 속에 은둔하며 산천을 벗삼아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월산대군의 묘역에 있는 문인석에서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초월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월산대군의 유언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후세에 월산대군 자손들의 의사에 따른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문인석의 얼굴 모습은 득도의 경지에 다다른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