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뭇국, 이혼, 빵이 시를 보고/김수상

향기로운 재스민 2019. 12. 20. 07:21



뭇국 

김수상


무우를 왜, 무의 잘못이라 했는지


그 내력을 나는 모른다


아침엔 뭇국에


혼자 찬밥을 말아먹었다


무우, 하고 불러보니


무 밑동 같이 쑥 빠져나오는 말이어서


조금은 서럽기도 하였다


나도 누가 내 머리채를 잡고


쑤욱 뽑아 올려주면 좋겠다


슬픔의 밭에 너무 오래 살았다

.........................................................................


이혼


실오라기 하나가 거슬려

힘껏, 잡아당겼더니

옷 하나가 통째 풀려

사라지고 말았다


더 잘해보려고 하다가

오해만 무성해지는

그런 날들 많았다


올무에 걸린 짐승처럼

발버둥 칠수록 더 조여 오는

오해 오해들


동그라미 잘 그리려다

지우개로 공책을 찢은 아이처럼

울고 싶은 그런 날 있었다


무감한 것은 사랑도 아니어라

내 뜻과 상관없이

엉망진창 흘러간 것들이 쌓아 올린

오해의 금자탑들,

아직까지 빛난다

거참, 기가 막힌다


...........................................................................


빵이 시를 보고


빵집 매출이 저조하다고

사장이 범어 뒷동산으로 불러냈다

동산 한 바퀴를 다 걷는 동안

사장은 돈 얘기만 했다

나는 시든 낙엽처럼 예예 하기만 했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도 했고

시 따위는 잊으라고 했다

시 따위라니 나도 빵 따위라고 하려다 참았다

아직은,

빵이 시보다 한참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득하였다


종일을 시 생각만 하며 산 날이 억울하였다

시가 빵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한 날,

엎드려 오래도록 고개 들지 못한 저녁이 있었다



김수상 시집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 에서....


* 한 사람을 다 알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나는 시를 쓴다

  또 실패할 줄 알면서

      _ 김수상_

2019. 12. 20  향기로운 재스민 김방주

'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수유 꽃담/홍준경  (0) 2020.03.24
2020 신춘문예 詩들  (0) 2020.01.03
2019. 강원 문학상 임영석 시인의 시.../김방주  (0) 2019.12.11
시집 '사각바퀴를 읽던 날'/김방주  (0) 2019.11.27
나희덕 시 모음  (0) 201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