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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강원 문학상 임영석 시인의 시.../김방주

향기로운 재스민 2019. 12. 11. 19:12

탑 · 2


임영석



무너지지 말라고 쌓는다면 탑 아니다

무너지고 무너져서 무너지지 않는 마음

그 마음 쌓고 쌓아서 높아지면 다 탑이다


*강원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2019년 강원문협 문학상 수상집『문학의 향기』에서



1)

의자 

 

 

물에게 바닥이라는 의자가 없었다면

평등을 보여주는 수평선이 없었을 거다.

물들이 앉은 엉덩이 그래서 다 파랗다.

 

별빛에게 어둠이라는 의자가 없었다면

희망을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을 거다.

별빛이 앉은 엉덩이 그래서 다 까맣다.

 

의자란 누가 앉든 그 의자를 닮아 간다.

풀밭에 앉고 가면 풀 향기가 스며들고

꽃밭에 앉았다 가면 꽃향기가 스며든다.

 

      

    

 

2)

고양이 걸음 

 

 

 

고양이가 살금살금 숨 막히게 걷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 속에 본색(本色)을 감추고서

포획의 사정거리를 좁혀가는 저 고양이.

 

잡을까 놓칠까 내가 더 초조한데

고양이가 걸어갈 때 흐르는 무심지경(無心地鏡),

얼마나 참고 참는지 눈도 깜박 않는다.

 

저 집중의 눈화살이 내 갈 길을 가로막고

덤으로 담아주는 발밑의 민들레꽃

눈화살 천 번을 쏴도 빙그르르 웃고 있다.

 

       

 

 

3)

국화빵  

 

 

 

뜨겁게 달구어진 국화빵의 틀 속에는

뒤집고 뒤집히는 한 생의 몸부림이

걸쭉한 삶의 농도를 달콤하게 구워낸다

 

가야 할 곳, 서야 할 곳, 수없이 반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자가 되는 순간,

국화꽃 문양 하나가 잎도 없이 피어난다

 

세상의 어느 꽃이 잎도 없이 피어날까

잎 없는 상사화는 뿌리라도 뻗었건만,

국화빵 국화꽃에는 만 송이가 펴도 잎이 없다

 

 

  

4)

껍질   

 

 

 

껍질이 단단하면

그 속이 연한 거고

 

껍질이 연하다면

그 속이 단단하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그 껍질이 뭐 다를까?

 

 

 

    

    

5)

꽃불

 

 

 

 

 

이 산 저산

불이 날까

지키는

산불감시원

 

하루 종일

지키지만

꽃불은

못 막는다.

 

그 꽃불

연기도 없어

비가 와도

안 꺼진다.

 

 

 

 

6)

斷想, 다섯 개

 

 

 

1.담배

 

다음 배에 온다고 해서 붙여진 담배란 이름,

얼마나 기다리면 다음 배, 다음 배가

입속에 둥지를 틀어 담배라고 불렀을까

 

2.기러기

 

살얼음에 머리 박고 먹이를 찾는 기러기 떼

추위보다 더 단단한 별빛을 주워 먹고

아무리 머나먼 길도 별빛을 찾아 날아온다

 

3.나의 이름

 

보리쌀 한 말 주고 지었다는 내 이름은

탁발 스님 입속에서 염불처럼 나왔는데

보리쌀 한 말 값만큼 살았는지 궁금하다

 

4.나무 시장에서

 

땅속에 뿌리박고 사는 것은 똑같은 데

어느 잎은 푸르르고 어느 잎은 황금빛이다

나무도 금송(金松)이 되면 대접부터 다르다

 

5.폐교를 바라보며

 

성근 별 만큼이나 많았던 아이들이

세상의 어둠보다 사람의 어둠 속에

그대로 매몰되었다 참, 구조가 더디다

 

 

    

 

 

 

7)

버릇

 

 

 

 

넝쿨장미 줄기들은 버릇이 고약하다

제 화()를 참지 못해 가시가 돋아나고

손 한번 잡으려 하면 독한 독을 품는다.

 

정원사는 그 버릇을 그대로 놔두면서

고독으로 번진 불이 꽃으로 필 때까지

버릇을 부채질하여 활활 타게 만든다.

 

앵무새 같은 버릇, 토끼 눈 같은 버릇,

고약한 줄기속에 폭약처럼 장전하고

그대의 고백과 함께 다 터트리겠다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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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토리 문인협회에서 (스토리 문학지) 부주간을 하셨던

임영석님 시인님, 권순진 부주간님,  지성찬 주간님과 같이

점심식사를 안국동에서 한 날이다

근처 '시가연' 에서 대추차를 마시고 집에 와서

올해 한결 임영석 시인님의 강원 문학상을 타신 시들을 찾아 보았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하신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싶어요.....


2019. 12. 11 향기로운 재스민 김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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