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안겨주는 음약

[스크랩] 달항아리와 까마귀/ 홍일표

향기로운 재스민 2011. 8. 3. 06:04

 

 

달항아리와 까마귀/ 홍일표

 

 

까마귀가 달을 물고 날아간다

 

입안에서 검은 밤을 뱉어내며

식은 해는 맛이 없네

혼자 중얼거리던 까마귀가 달을 몰래 내려놓는다

 

그 사이 한 여자가 왔다 간 것 같다

가슴 한쪽이 만져지지 않는다

 

달이 항아리 속으로 스며들고

다시 밤이 와도 항아리 속에서 달이 나오지 않는다

두 번 다시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달맞이꽃이 진다

 

까마귀가 저문 산을 짊어지고 날아가는 밤

손가락으로 달을 튕겨보면

잘 숙성된 맑은 울음소리가 난다

 

달과 항아리 사이에 틈이 없다

 

 

- 『현대시학』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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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의 ‘달과 까마귀’란 1954년 작 유화작품이 있다. 보름달이 뜬 맑은 하늘, 검게 세 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까마귀 몇 마리 앉아있고, 달을 가로질러 또 다른 한 마리가 나르고 있다. 얼핏 ‘달을 물고 날아가는’ 모양새다. 그 ‘달이 항아리 속으로 스며들고’ ‘까마귀가 저문 산을 짊어지고 날아가’다니 ‘잘 숙성된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무욕의 미가 절로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까마귀가 아주 날아가 버린 뒤의 달항아리에 있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백자로 꾸밈없는 둥근 모양을 보면 ‘달과 항아리 사이에 틈이’ 보이지 않는다. 볼수록 그 서정의 미에 매료된다.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처럼 넉넉하면서 부드럽고 기품이 흐르는 선은 한국적 전통미학의 상징이라 할만하다. 국보 309호와 310호 연속 지정된 백자 달항아리를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로 치는 데는 그 군더더기 없는 순결함과 순박함에서 빛나는 고귀한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도상봉과 김환기 화백은 ‘내 예술의 모든 것은 조선 백자항아리에서 나왔다’고 극찬하였으며, 수십여 점의 달항아리를 수집하고 화폭에 주제로 담아내었다. 최근 많은 화가들이 달항아리에 천착하는 것이나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이 그것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도 그 기품 있는 선과 온화한 유백색의 빛, 그리고 넉넉한 포용력에 있다 하겠다. 빌게이츠를 반하게 한 그 미학적 오묘함이 바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아름다움인 것이다.

 

 지난 연말 그의 작품 3점이 빌게이츠 재단에 컬렉션 되었다고 해서 ‘빌게이츠가 선택한 작가’로 불리는 최영욱을 비롯해 이우환, 박서보, 김병종 등이 화폭에다 달항아리를 소재로 담아 '달항아리-한여름 밤의 꿈‘이란 타이틀로 지금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전시중이다. 특히 최영욱의 그림은 빙열(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약이 고온의 가마 속에서 구워질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의 가느다란 선을 통해 ’마이크로 소프트‘한 세상사를 구현하고 있다. 사람의 인연, 삶의 편린과 추억, 인생의 여러 갈래들을 ’달과 항아리 사이에‘ 틈이 없듯 달항아리와 그림 사이에도 시공을 넘어 틈 없이 촘촘히 새겨놓았다.

 

 

권순진

 

달빛자락- 김영동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작은 애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