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스크랩] 한 호흡 / 문태준

향기로운 재스민 2011. 9. 1. 20:49

 

 

 

한 호흡 / 문태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 시집<맨발>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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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짧은 시간의 단위를 일상에서는 ‘순간’ 혹은 ‘찰나’라고 흔히 말한다. 순간은 ‘순식간’의 준말로 ‘눈 깜짝 할 사이’와 같은 의미로 이해되지만, '순식'은 그저 막연히 짧은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단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찰나'는 '순식'보다 100배나 더 짧은 시간의 단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번 대구세계육상대회를 통해 이 시간의 단위를 실감하고 있으며, 특히 우사인 볼트가 인간의 반응속도를 넘어선 0.1초 내 부정출발로 인한 실격은 그야말로 찰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순간이나 찰나에 비해 숨 한번 들이쉬는 사이 ‘한 호흡’의 구간은 얼마나 느긋한 시간인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른다 해도 동의할만하다.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사이, 계절이 오고 가는 사이, 우리 인생에서 한 매듭을 짓고 다시 한숨 돌리는 사이를 모두 한 호흡이라 해도 좋겠다. 숨 한번 크게 쉬는 사이 돈도 권세도 영화도 단 한번 왔다가는 것이니라. 눈이 한번 열렸다 닫히는 것보다는 조금 길게.

 

 한 호흡지간에 꽃이 피고 지고 사람도 피었다 지는 것이리. 그 사이 내 눈 앞의 삼라만상이 모두 들고나는 사이, 애면글면 그대와 만났다 헤어지는 사이, 한 해가 시작되고 끝나는 사이, 순환되는 우주원리 속에서 그야말로 한 호흡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이 우리의 삶 아닌가. 그럴 때 하늘 한번 보고 작은 숨 한번 쉬는 여유의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늘에는 왜 별들이 반짝거리는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삶이 한때고 한철이라면 나는 왜 하필 이곳으로 와서 이렇게 머물다 가는지를 말이다.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으로 묵상해보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는 풀과 같아서 금방 시들어 가는데 영원히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아니면 아주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일생이 한 호흡이라면 사람의 생존구간은 숨 한번 쉬는 사이에 있는 것.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진창의 홍역 같은 삶을 다 건너 한 호흡의 여분으로 사는 세상이란 또 얼마나 여유로운가. 다시 한 호흡의 가을바람이 분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노래 가사를 같이 ..... 다시 한 호흡의 가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