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스크랩] 황금동 연가57-인생人生/ 정삼일

향기로운 재스민 2011. 10. 18. 06:14

 

 

황금동 연가57-인생人生/ 정삼일 

 


살아생전

조그마한 항아리 속으로

못 들어가고


죽어서는

조그마한 항아리

채우지 못 하네


- 시집 <황금동 연가/2009. 도서출판 한글> 중에서 -

................................................................................................................................................

 

 인생, 뭐 있어? 그냥 즐기는 거지 혹은 그냥 살다가는 거지. 요즘 유행하는 이 삶의 전략 안에 녹아내리지 않을 번뇌는 별로 없어 보인다. 쉽게 생각하며 살자는 뜻으로 얼핏 자조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 가벼움 안에는 비움의 철학이 느껴진다. 

 

 한 시골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아름다운 순결을 지켰다. 할머니는 그런 순결한 삶을 스스로 대견해 하며 이웃 장의사에게 자신이 죽으면 묘비에 다음과 같이 새겨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처녀로 태어나, 처녀로 살다, 처녀로 죽다.’ 얼마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장의사는 석수에게 이 묘비를 부탁했다. 그러나 석수는 딴청을 부리다가 이 묘비명이 쓸데없이 길다고 생각하고선 ‘미 개봉 반납’이란 짧은글로 대신했다.

 

 이상은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로 한 여인의 일생을 한 가지 사실에만 주목하여 요약했다. 마찬가지로 정삼일 시인의 인생 역시 몸의 형태 변화에 유념한 삶과 죽음의 짧은 요약본이다. 하지만 이 시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철학이 배어있으며, 동시에 그 대칭에 있는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으리라. 탐욕을 쉬 버리지 못하고 집착을 여의지 못하는 자의 죽음 직전은 더 괴롭고 두려운 법이다. 쌓아둔 물질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즐기지 못하고 버려야한다는 억울한 생각이 미칠수록 그 미련은 죽음을 더 두렵게 할 수 있다. 또한 이승에서 스스로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남을 괴롭혀 내세가 걱정되는 이의 죽음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이승의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쓰고 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욕심을 버리고, 베풀고, 비우고, 양보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죽음의 두려움도 훨씬 경감될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행하기는 어려운 게 또 그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대체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줘 봐도 별 것 아닌데...왜 나누지 못했을까’라는 후회란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라는 후회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 ‘왜 그렇게 팍팍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리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라고 한다.

 

 납골당의 유골단지를 들여다보며 머지않은 훗날 그게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면 후회할 일이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인생 뭐 있어? 에 담겨진 삶의 철학을 좀 더 또렷이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ACT4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오늘은 이 말만 생각하며 지낼 것 같네요. 고마워요.